“그는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끊임없이 무대 위를 어슬렁거렸다.” 작년 말 <워싱턴포스트>는 CNN 2차 대선토론에 나선 트럼프를 이렇게 묘사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이 발언할 때 바로 뒤에 서 있기도 하고, 청중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이 모습을 두고 ‘半연예인의 무례한 행동’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요즘도 트럼프의 언행은 세계 최강 미국의 파워를 함부로 휘두르고 있는 ‘초보 대통령’처럼 보인다. 그런데 협상 전문가인 안세영 서강대 교수는 트럼프를 사자처럼 거칠고 끈기 있는 최고의 협상가라고 평가한다. 대선토론 때의 행동에 대해서도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가 뒤에 서면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므로 클린턴도 트럼프에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트럼프는 언론에 의해 회화화되거나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그는 미국 언론 전체가 1년 내내 비난·비판기사들을 쏟아내고, 심지어 공화당 수뇌부마저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기존 노선을 고수하며 단기 필마로 승리했다. 취임 이후에도 반기를 든 법무장관 대행을 즉석에서 해고하고, 대선 공약대로 중국과 유럽연합, 멕시코, 이슬람국가들에 대해 잇따라 포문을 열고 있다. ‘反이민행정명령’ 발동으로 전 세계를 벌집 쑤신 듯 해놓고도 한 발자국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여타 정치인들처럼 여론의 향방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 달려들고 여차하면 물어뜯는 굶주린 사자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트럼프가 태평양 건너 미국 땅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곧 우리에게도 닥칠 냉엄한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 경제·외교안보상황이 비상한 국면이다. 트럼프가 타깃으로 거론한 한미 간 이슈는 하나같이 우리 경제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그는 이미 주한미군의 주둔비 추가 부담, 한미 FTA 재협상 등을 거론한 상태다. 여기에 자칫 미국 수출 시 징벌적 관세를 물어야 할지 모르는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낯설고 예측하기도 힘든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안 교수는 사자 다루는 법을 원용한다. 사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한 번 노린 먹잇감은 놓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수밖에 없다. 둘째, 일단 배를 채우면 낮잠을 잔다. 일단 원하는 것을 내준 다음에는 주고받기 식 협상이 가능하다. 셋째, 패자를 해치지 않는다. 종종 백지수표를 내밀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안 교수는 이런 특성을 근거로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단독 북진통일’ 카드로 미국을 압박해 한미동맹 체결을 성사시킨 것처럼 ‘함께 으르렁거리는’ 파이트백(Fight Back) 전략을 구사하거나, 한미 FTA 체결 당시 중국 카드를 사용한 것처럼 지렛대(Leverage) 전략을 사용해보라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먼저 맞서 싸울 생각이 없고 잘 협력하겠다는 ‘소프트 시그널(Soft Signal)’을 서둘러 보내면서 윈-윈할 방안을 찾아내라고 강조한다.

다행히, 우리 외교안보팀도 대미 협상의 중요한 팁을 찾은 것 같다. 청와대를 비롯 외교부 국방부는 트럼프 신 행정부를 상대로 민감한 주한미군 주둔비용 등 이슈는 제쳐놓고 한반도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데 주력해왔다. 특히 내한한 매티스 신임 국방장관을 헬기에 태워 해외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로 조성 중인 평택기지를 둘러보게 했고,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도 나서 사드 배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이를 통해 한국이 주한미군에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으며,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억지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그래서일까, 틸러슨 국무장관은 인준청문회에서 “한국은 이미 방위비를 많이 부담하고 있다”며 “점증하는 역내 도전과제(중국 이슈)에 대처하기 위해 이런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미 협상 전초전에서 분담금의 ‘100% 한국 부담’에서 ‘분담비율 조정’으로 미국 측의 눈높이를 낮추는 성과를 낸 것이다.

대미 협상의 또 다른 팁도 나왔다. 최근 엘살바도르는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촉발시키는 자국 내 폭력 문제와 경제난 등을 해결하겠다며 미국 원조를 요구했다. 자체적으로 갈등의 근원을 해소할 테니 수익자 부담 차원에서 미국이 돈을 대라고 한 것인데, 미국이 흔쾌히 1억달러를 내놓았다고 한다. 사업가 출신 트럼프로서는 ‘비용 대비 효과’ 측면의 이득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일본에서도 참고할 만한 팁이 나올 수 있다. 미국을 방문한 아베가 사자에 던져준 고깃덩이는 ‘일자리 창출’이다. 향후 10년간 미국의 철도 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4500억달러 규모의 시장 조성과 70만명 미국인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패키지 카드다. 과연 이 먹잇감에 환율이나 무역 압박에 대한 트럼프의 기세가 누그러질까.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언제든 닥칠 수 있는 트럼프의 강력한 앞발과 송곳니 공격에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먹잇감도 마련해두고, 윈-윈할 협상방안도 강구해놓아야 한다. 최악의 경우 함께 으르렁 댈 만한 카드도 찾아놓아야겠다. 정신부터 바짝 차려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