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아무런 조건도 없었고, 그런 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2004년 12월, 수화기 너머로 “LG생활건강을 맡아 달라”는 LG그룹 관계자의 제안에 당시 해태제과 사장이었던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영광입니다”라는 짧은 답변으로 이를 수락했다.

그렇게 2005년부터 차 부회장과 LG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연봉이나 근로환경 등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조건들은 출근 후에 알게 되었는데, ‘LG의 정도경영과 인재중심주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차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렇게 믿음 하나로 ‘LG맨’이 된 그는 자신의 경영 방침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를 기억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과 배고픔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교만하게 과도한 자신감을 갖지 않으려고 하며 몸을 낮추는 자세로 경영에 임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차 부회장의 ‘우직한 갈망’은 13년째 LG생활건강을 이끌면서 그룹 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서, 매출과 영업이익 등 실적 규모 면에서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는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LG생활건강의 2016년 연간 매출 규모는 6조94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4% 증가했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과 당기 순이익도 8809억원과 5792억원으로 각각 28.8%, 23.1% 늘었다.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LG생활건강의 연간 실적은 차 부회장이 CEO로 부임한 첫 해인 2005년부터 11년 연속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실적 성장세를 두고 ‘차석용 매직이 통했다’라는 업계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2005년 매직 스타트, 창의력 강조

차 부회장은 2005년 1월 취임 이후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등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그려 나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게 최종 소비자와의 접점을 찾는 ‘마케팅’이었다. 차 부회장은 “마케팅이란 차별화되고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며 “그 핵심 요소는 ‘창의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차 부회장의 집무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임원이나 팀장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필요하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차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LG생활건강 부회장실의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차 부회장의 이러한 경영 방식은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내가 도와주겠다’는 CEO 리더십 철학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적 경영 스타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LG생활건강의 고유한 기업문화로 정착된 ‘정시퇴근제’와 ‘유연근무제’ 역시 직원들의 창의력을 일깨워 주기 위한 일환으로 꼽힌다.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승부사’ 기질은 ‘인수합병(M&A)의 귀재’, ‘미다스의 손’ 등 차 부회장을 대표하는 수식어로 연결된다. 실제로 2005년 LG생활건강 CEO 취임 후 그가 보여준 M&A 행보 역시 그랬다.

코카콜라음료를 2007년 말에 사들여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2009년에는 다이아몬드샘물, 2010년에는 더페이스샵과 한국음료, 2011년에는 해태음료, 2012년에는 바이올렛드림(구 보브)와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스테파니를, 2013년에는 일본 건강기능식품 통신 판매 업체 에버라이프를 인수했다. 또한 영진약품 드링크사업부문을 인수해 성장하고 있는 건강음료 및 기능성음료 시장 확대에도 나섰다.

2014년에는 차앤박 화장품으로 유명한 CNP코스메틱스 인수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코스메슈티컬 시장을 선점하고, 화장품 사업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썼다. 2015년에는 유망한 색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색조화장품 전문 OEM·ODM 업체인 제니스를 인수했다.

2007년 말 코카콜라음료를 사들이면서 음료 사업부를 새롭게 추가했고, 2010년 더페이스샵의 인수로 화장품 사업부가 커지면서 LG생활건강은 현재의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 3개 사업부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차 부회장은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지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며 “기존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 사이에는 교차점이 한 개뿐이지만 음료 사업의 추가로 교차점이 세 개로 늘어나면서 회사 전체에 활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 부회장의 과감한 도전으로 인해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 각각의 사업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통해 서로의 사업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전통적으로 여름에 약한 화장품 사업과 여름이 성수기인 음료 사업이 서로의 계절 리스크를 상쇄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LG생활건강이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후’는 국내 화장품 단일 브랜드로는 최단 기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했고, 매분기 최고 실적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업계에서 LG생활건강의 역사가 ‘차 부회장의 전과 후로 나뉜다’고 이야기할 만큼, 그가 일궈낸 도전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적이다.

차 부회장은 미국 P&G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한 장본인으로, 직원들에게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 벌을 줄 것”이라며 변화를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하라고 당부한다.

올해도 차 부회장의 도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후’를 비롯해 ‘숨37’과 ‘오휘’ 등 알짜 브랜드의 성장은 물론, 차 부회장이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브랜드로 알려진 ‘VDL’, ‘빌리프’, ‘CNP차앤박’ 등을 필두로 차세대 포트폴리오가 강화되는 해가 예상된다. 특히 제품 연구개발과 마케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등 늘 그래왔듯이, 올해도 차 부회장이 이끄는 LG생활건강은 도전의 해를 통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