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은 작지만 대신금융그룹의 지주회사로서 투자은행(IB)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대신증권의 과거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4년 대신증권의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고(故) 양회문 회장의 별세 소식에 전 직원이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며 이후 대신증권은 업계 상위 증권사로서의 위상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신증권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증권업의 주수익원인 브로커리지 수수료에서 벗어나는 등 꾸준한 노력을 지속했다. 현재 ‘대형사’라는 타이틀은 달 수 없지만 수익원을 다각화한 만큼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대신증권을 과거 양 회장의 대신증권과 비교해보면 지배구조, 사업구조 등에서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양 회장이 증권업계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현재 대신증권도 ‘효율성’의 맥락은 계승하고 있다.

‘단독 증권사’이자 ‘큰 대’(大) ‘믿을 신’(信)을 강조했던 대신증권이 이제는 새로운 모습과 희망의 날갯짓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모습이다.

'단독증권사', 단독을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국내 증권사들은 외형 축소는 물론 수익성까지 동반 폭락했다. 한편, 2000년 초 국내에서 활동하는 증권사들은 약 30개사였으나 2008년에는 두 배 넘게 늘어 60개사로 증가했다.

아울러 증권 IT 발달은 증권사들의 주수입원인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준을 하향 평준화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증권사들의 거래수수료는 오프라인 거래 기준 0.5%에서 점차 하락해 온라인 거래 기준 0.015%까지 주저앉았다.

이렇듯 증권업 내 경쟁심화와 증권 IT의 발달은 결국 증권사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증권사들의 브로커리지 수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업종들이 그렇듯 수익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금융업은 자기자본을 활용하기보다 타인자본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거래수수료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탈피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특히 증권사의 주역할은 ‘거래’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하더라도 수수료 부분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에 자산관리 등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말 그대로 수수료는 받되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그러나 증권업 내 ‘수수료 떼기’식의 관행은 여전했고,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점은 동양·STX그룹 계열사 채권 및 일반 금융상품의 부실판매로 이어졌다. 좋은 서비스 제공이 아닌 높은 수수료를 수취에 의존한 참혹한 결과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국내 증권업은 물론 금융업 전반에 불신의 목소리를 높였고 금융당국과 업계는 신뢰회복을 위해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국내 금융업계는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역량 강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증권사 대형화는 한국형 투자은행(IB) 출범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그 속도가 더욱 가속화됐다.

 

M&A, 종합금융사로의 탈바꿈

코스피 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900포인트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양적완화(QE)에 힘입어 점차 회복되기 시작해 2011년에는 금융위기 전 수준인 2000포인트를 상회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국내 증시는 모멘텀의 부재로 거래량은 전반적인 감소 추세를 보였고 브로커리지 의존도가 높은 증권사들은 허덕이기 시작했다.

2009년 말 기준 대신증권의 계열사들을 보면 고(故) 양회문 회장의 별세 직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수익구조 측면에서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외부의 환경은 변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증권사의 주수익원이라 할 수 있는 거래수수료는 점차 하락하고 거래량마저 줄어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모든 증권사들에게 똑같이 적용됐지만 ‘단독 증권사’ 대신증권에게는 ‘단독’이라는 단어가 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대신증권의 2012년 매출액(연결 기준, 당시 3월 말 결산)은 1943억원으로 직전년도 3103억원 대비 37.3%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9.5% 폭락했다.

대신증권의 2012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은 차치하더라도 2004년 양 회장의 별세 당시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만큼 대신증권은 성장정체가 아닌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격이었다.

대신증권 내부에서는 브로커리지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점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단독 증권사’라는 타이틀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님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신증권은 ‘단독’이라는 단어를 버리기 시작한다.

대신증권 여의도 사옥(좌)과 지난 1월 이전한 명동 신사옥(우)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확대되자 대신증권은 중앙부산·부산2·도민저축은행 등을 100% 출자해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고객 및 우량자산의 선별 인수를 거쳐 대신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당시 대신증권은 대신저축은행을 두고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 걸친 불신과 영업의 지역적 제한, 단순한 영업구조, 과도한 규제 등은 물론 저축은행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인지했다. 또 기존의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을 인수해 설립했기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우려는 있었지만 대신증권의 저축은행 인수는 증권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과정의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대신증권은 2012년 한국창의투자자문을 인수했다. 당시 창의투자자문은 업계 5위의 중견 투자자문사였으며 대신자산운용과 합병된다. 이는 운용사와 자문사의 업계 최초 인수합병(M&A)이었다. 대신증권은 대신자산운용과 창의투자자문의 합병을 통해 대신금융그룹의 리서치 역량과 창의투자자문의 뛰어난 운용 및 리스크 역량의 결합을 노렸다. 이를 통해 여러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랩 등의 다양한 상품을 출시,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취지였다.

대신증권 최고의 M&A를 꼽자면 단연 대신F&I를 빼놓을 수 없다. 대신증권은 지난 2014년 우리금융 계열사인 우리F&I 인수에 성공, 사명을 대신F&I로 변경했다. 대신F&I의 주업무는 NPL(Non Performing Loan) 투자다. NPL이란 은행 등이 개인이나 기업에게 대출을 한 상황에서 채무자가 이자상환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 수익을 얻지 못해 부실채권으로 분류된 채권을 말한다. 따라서 불황기에는 NPL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NPL투자의 과정은 우선 부실채권을 보유한 채권자(예: 은행 등)가 해당 부실채권을 싼값에 여타 투자자(NPL업체: 유암코, 대신F&I)로 넘기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100% 발생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여기서 NPL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저축은행, 캐피탈, 증권사 및 대부업체 등에 다시 되판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부실채권 가격은 점차 상승하고 이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쉽게 말해, 할인된 가격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경매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NPL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즉,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반면 부실채권을 통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대신F&I는 NPL투자를 주업무로 삼고, 자회사인 대신AMC가 다양한 방법으로 기초자산을 회수하면 유동화사채의 원리금 및 유동화출자지분에 대한 배당금, 감자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금융사들은 경기가 좋아야 수익성이 높아진다. 반대의 경우는 단연 수익성이 악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신증권은 대신F&I 인수를 통해, 불황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익구조를 확보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