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박사 박용현은 시계 수집 25년차의 베테랑 시계 애호가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시계 수집 25년차. 소장한 시계가 무려 160여 점에 달하는 그에게선 달관의 경지가 느껴진다. 의학박사이자 시계 애호가인 박용현의 애장품 중 압권은 역시 7점의 파텍필립이다. 파텍필립은 시계 애호가들이 ‘시계의 황제’ 혹은 ‘시계의 종착역’이라고 입을 모으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평생의 드림 워치로 손꼽는 파텍필립을 칼라트라바, 노틸러스, 아쿠아너트부터 각종 컴플리케이션 모델까지 종류별로 소유하고 있는 그는 국내 유명 시계 커뮤니티에선 이미 우상과 같은 존재다. 시계 전문 웹진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이 그를 만나 파텍필립을 포함한 시계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시계 컬렉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최근에는 파텍필립만 모으고 있다. 오메가부터 시작해서 롤렉스, 브레게, IWC, 바쉐론 콘스탄틴, 율리스 나르덴, 랑에 운트 죄네, 예거 르쿨트르, 글라슈테 오리지널, 블랑팡, 오데마 피게, 까르띠에 등 거의 모든 명품 시계 브랜드의 제품을 섭렵했지만 현재는 파텍필립이 7점으로 가장 많고, 다른 시계는 브랜드당 한두 점씩 갖고 있다. 이외에도 에포스, 융한스, 티파니 등을 포함해 현재 소장하고 있는 시계는 총 160점 정도다.

 

파텍필립이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내 인생 첫 파텍필립은 15년 전, 소공동 롯데호텔 1층 보난자 매장에서 구입했던 애뉴얼 캘린더 5035R이다. 그 후 정식 부티크를 통해 파텍필립을 모은지는 7~8년 정도 됐고, 첫 타자는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월드타이머 5130R이었다. 그 이후로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마르코폴로를 제외하고 파텍필립만 수집 중이다. 2000cc 자동차를 타던 사람이 3000cc 자동차를 타면 절대 다시 2000cc를 타지 않듯 시계도 똑같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갔지 후퇴는 어려운 법이다. 시계 브랜드 중 최고인 파텍필립을 경험하고 나면 이후 다른 브랜드의 시계를 살 땐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기다렸다 파텍필립을 살 걸 그랬나’하고, 결국 그런 시계는 처분하게 되더라.

 

파텍필립 시계를 모으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

최대한 기능이 겹치지 않게 모으려고 노력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파텍필립 시계들도 월드타이머, 퍼페추얼 캘린더(월, 날짜, 요일, 윤년 주기까지 알려주는 기능), 애뉴얼 캘린더(월, 날짜, 요일 정보 제공), 컴플리케이션(시, 분, 스몰 세컨즈, 날짜, 문 페이즈,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탑재) 등 기능이 모두 다르다. 시, 분, 초, 날짜만 간결히 담은 시계는 소재와 컬렉션이 모두 다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파텍필립에 대한 오해와 (당신이 아는) 진실은?
많은 시계 애호가들이 파텍필립은 소위 ‘넘사벽’이라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브랜드의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살 정도면 얼마든지 파텍필립에 범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오해가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파텍필립 엔트리 모델로 칼라트라바를 꼽는데 사실은 아쿠아너트가 가장 저렴하다. 입문용 아쿠아너트가 2700만원대고, 칼라트라바의 엔트리 모델은 3000만원이 넘는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

 

▲ 7점의 파텍필립과 각종 파텍필립 관련 소장품.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파텍필립 VVIP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파텍필립으로부터 받는 특별한 대우가 있나?

신제품 시연회는 물론이고,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이나 미닛 리피터와 같은 초고가 시계가 입고되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한정판이 나왔을 땐, 부티크 측에서 구매 의사를 먼저 묻기도 한다. 매달 스위스로부터 파텍필립 매거진을 받고 있으며 간혹 파텍필립 회장의 서신이 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매년 파텍필립 지갑, 벨트, 브리프케이스 등 각종 프로모션 제품을 받아보고 있다. 최근에는 14박 15일 일정의 파텍필립 스위스 본사 방문 행사에 초청받기도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시계를 꼽는다면?
원래 아내가 선물한 파텍필립 월드타이머 5130R에 가장 애착이 갔는데, 희한하게도 이 시계만 차면 꼭 아내랑 다투곤 했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눈물을 머금고 월드타이머 5130R은 처분했고, 현재는 파텍필립 월드타이머 5131R에 가장 애착이 간다. 5131R은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파텍필립 본사에서 고객 심사를 거쳐 판매하는 극한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심사 기준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파텍필립은 돈보단 컬렉터의 인격 소양이나 학문, 학식, 사회 공헌도를 더 고려하는 듯하다. 부티크에서 고객에 대한 평가서를 써서 스위스 본사로 보내면 이를 바탕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아마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 시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의학박사라는 배경이 컸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니 어찌 파텍필립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있겠나.

 

파텍필립 월드타이머 5131R의 주인이 되자마자 유혹이 있었다고 들었다
모르는 번호로 여러 통의 전화가 왔다. 시계를 받자마자 케이스도 뜯지 않은 채로 넘겨주면 소비자가에 3~4000만원 정도의 웃돈을 얹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것도 현금으로. 나도 사람인지라 돈 욕심이 있지 왜 없겠나. 몇 초만에 앉은 자리에서 몇 천만원을 버는 건데. 그러나 유혹은 짧았고 5131R은 보다시피 지금 내 손목 위에 있다. 이 시계는 극한의 한정판인 만큼 레퍼런스 넘버가 내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이걸 누군가에게 팔면, 파텍필립이 갖는 나에 대한 신뢰도는 완전히 떨어지는 것이다. 아내에게 우스갯소리로 ‘이거 넘길까?’ 물었더니, 아내가 단호하게 ‘당신의 명예가 몇 천만원 밖에 안되냐’라고 하더라. 실제 파텍필립 월드타이머 5131R을 받은 날, 영원히 소장하겠다는 의미로 곧바로 손목에 차고 나왔다. 많은 컬렉터들이 이런 리미티드 에디션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전시해 놓거나, 자녀에게 물려줘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팔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물건은 자기 본연의 모습일 때 아름다운 것이지, 그 의미가 변질돼 사람 위에 군림하면 제멋을 잃는 법이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비싸고 귀한 것이라도 시계는 사람이 찰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시계를 모으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내 생애 첫 시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 생일 선물로 받은 카시오 시계다. 태양열 전지로 구동하는 전자시계였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심지어 플라스틱 밴드도 아니고, 케이스부터 브레이슬릿까지 전부 스테인리스 스틸이었으니 거의 반에서 스타 대접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 덕에 시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로 시계를 모으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엔 학교 앞 좌판에서 팔던 특이한 시계들도 모아봤고, 1996년 서울에 올라와 인턴을 시작하면서 까르띠에, 불가리, 베르사체 등 패션 시계부터 시작해 오메가, 롤렉스, 태그호이어 등 좋은 시계를 차기 시작했다. 1000만원대가 넘는 시계를 구입하기 시작한건 2000년대 초반, 전문의가 되고 난 이후다. 처음으로 산 하이엔드 시계는 브레게 클래식 모델이었다.

 

▲ 파텍필립 월드타이머 5131R(좌)와 퍼페추얼 캘린더 5159G.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예물 시계는 어떻게 골랐나?

예물 시계는 티파니 아틀라스 워치로 했다. 결혼반지를 티파니 아틀라스로 고르면서 아내의 의견에 따라 시계도 같은 컬렉션으로 맞췄다. 어차피 나는 시계가 많았으니까.

 

혹시 최근 사정권에 들어온 시계가 있나?
얼마 전 부티크에서 보고 온 시계가 있다. 파텍필립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5270G와 5270R. 퍼페추얼 캘린더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담은 시계로 화이트 골드(5270G)와 로즈 골드(5270R) 모델 중 고민 중이다.

 

사고 나서 후회한 시계가 있는지?
딱 하나 있다. 크로노스위스의 미닛 리피터. 15분마다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쿼터 리피터 모델로, 당시 크로노스위스 시계 중 가장 비싼 시계였다.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였는데도 가격이 5700만원대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매료돼서 들어오자마자 구매했는데 결국엔 되팔았다. 차임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계 수집 과정 중 난관은 없었나?
시계 애호가들이 토로하는 고충 중 하나가 바로 ‘기변증’이다. 시계를 바꾸고 싶은 욕구가 불일 듯한 증상을 뜻한다. 마음에 드는 시계를 하나 사면 그 기쁨이 1년, 2년 가면 좋은데 얼마 못가 더 좋은 시계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심지어 시계의 끝판왕인 파텍필립을 사도 마찬가지다. 파텍필립 내에서도 더 복잡한 기능의 시계를 계속 노리게 되니까. 이건 스스로 욕심을 다스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목표로 했던 시계를 대부분 모았기 때문에 이제는 소장하고 있는 시계를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 파텍필립 칼라트라바 5117R과 커프스 링크, 라펠 핀으로 수트 스타일을 완성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스타일링 센스도 대단하다.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독자들을 위해 워치 스타일링 팁을 조언한다면?

시계는 크게 두 가지 종류만 있으면 모든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다. 화이트 골드와 골드가 그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깔 맞춤을 좋아했다. 예를 들어 화이트 골드 시계를 차면 안경부터 벨트, 반지, 커프스 링크, 라펠 핀까지 모두 화이트 골드로 통일하는 편이다.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벨트의 색까지 맞추는 건 나만의 만족이랄까. 이처럼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평소 즐겨 입는 옷 스타일에 맞춰 시계를 고를 것을 권한다. 매일 수트를 입는다면 드레스 워치를, 캐주얼룩을 선호하면 스포티한 느낌의 시계를 마련하는 게 좋다.

 

시계 갯수만큼 관리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시계를 꺼내서 부드러운 천으로 닦는다. 오토매틱 시계 같은 경우는 닦으면서 자연스럽게 와인딩도 되고. 매뉴얼 와인딩 시계는 차지 않는 경우엔 굳이 와인딩을 해놓지 않는다. 오버홀은 브레게, 예거 르쿨트르, IWC 이상의 하이엔드 시계만 하는 편이다. 그리고 부티크에서 산 시계들은 모두 스위스 본사를 통해 오버홀을 받고 있다. 종로나 기타 사설 시계 수리점에서 오버홀을 받으면, 이후 본사의 A/S 서비스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뭐든 편법을 쓰기보단 정통한 길을 가는 게 답이다.

 

파텍필립 혹은 명품 시계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첫째, 차 보지 않은 시계는 사지 말라. 자고로 시계는 차 봐야 아는 법이다. 아무리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시계라 해도 내 손목 위에 올려보기 전까진 절대 그 시계를 단정할 수 없다. 둘째, 사고 싶은 시계를 사라. 마음에 드는 시계가 따로 있는데, 경제적 여건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한 시계는 결국 손이 안 가기 마련이다. 차라리 (시간이 걸릴지라도) 돈을 더 모아서 사고 싶은 시계를 사는 게 만족도가 훨씬 높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에게 시계란?
인생동반자. 시계란, 내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평생 같이할 수 있는 동반자이다. 더 나아가 내 자손들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시계의 진짜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