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제조사의 디스플레이 전투는 TV의 영역에서 벌어진다.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SUHD TV를 넘어 올해 CES 2017을 계기로 QLED TV를 내세웠으며, LG전자는 꾸준히 OLED TV를 출시하고 있다. 다만 중소형의 경우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 상황에서 LG디스플레이는 LCD 기반의 포트폴리오를 착실하게 다지며 일발역전을 꿈꾸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대형과 중소형 시장에서 정반대의 판세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러한 전투의 이면에는 공급망 관리에 대한 담론도 덧대어진다. LG디스플레이가 픽셀을 내세운 구글의 간택을 받았음에도 무리하게 중소형 OLED 패널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디스플레이 전쟁은 사이니지 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사이니지의 특성상 대형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관계로 대형 시장에서 벌어지는 각축전이 재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CES 2017에서 TV전쟁이 벌어졌다면, 7일부터 10일(현지시간)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Integrated Systems Europe) 2017에서는 사이니지 시장 쟁탈전이 예고되고 있다.

▲ 출처=삼성전자

삼성, QLED 사이니지 전개
삼성전자는 ISE 2017에서 QLED 기술을 적용한 Q 사이니지 2종(55·65형)과 LED 사이니지 IF시리즈 3종을 공개한다. 삼성전자가 CES 2017에서 공개한 QLED TV의 신소재 메탈 퀀텀닷 기술을 그대로 적용한 제품으로, 사용 환경의 제약 없이 100%의 컬러볼륨을 구현한 세계 최초의 상업용 디스플레이라는 설명이다.

QLED 사이니지는 퀀텀닷에 최적화된 패널과 영상 기술을 활용해 일관된 색상과 화질을 전달해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세로형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다양한 상업 환경에 맞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이니지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사용자 경험으로 보인다. 또 입체감에 방점을 찍은 상태에서 1000 니트(nits)의 최고 밝기를 구현하기도 한다. 실물과 동일한 수준의 화질 구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타이젠 OS를 탑재해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타이젠은 삼성전자 사물인터넷 전략의 심장이며, 최근 타이젠 3.0 버전의 등장이 예고되기도 했다. 주로 웨어러블에 탑재되며 Z 시리즈 등 일부 스마트폰에서 간헐적인 테스트를 거치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삼성전자는 스마트 사이니지의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타이젠을 활용하고 있다.

생생한 명암비도 눈길을 끈다. 최근 디스플레이 시장의 트렌드인 HDR 영상 구현이 가능하며 화질영역, 깊이, 시야각 등을 모두 개선했다는 평가다.

LED 사이니지 IF 시리즈 3종(P1.5·P2.0·P2.5)도 공개된다. IF 시리즈는 LED 사이니지에 HDR을 적용한 첫 제품이며 QLED 사이니지와 별도로 공개되는 제품이다. 공장 출하 시 각각의 캐비닛과 모듈에 대한 색상 조정과 화질 검사를 거쳤으며, 균일한 컬러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설치 후에도 DSLR 카메라를 활용해 화질 조정이 가능한 캘리브레이션 기술도 들어갔다.

기존 LED 사이니지는 제품의 후면에서만 설치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신제품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디자인을 완전 변경했다는 후문이다. IF시리즈는 전면과 후면에서 설치·서비스가 모두 가능하고, 슬림한 디자인을 지원하도록 꾸며졌다.

삼성전자는 이번 ISE 전시회를 통해 “Your Future. On Display”라는 신규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이니지의 전체 산업군 활용 기준을 제시한다는 설명이다. 리테일, 대형 마트, 레스토랑, 기업, 공공기관, 공항, 영화관, 호텔 등 B2B 8대 대표 산업군의 다양한 전시 부스를 꾸며 상업용 사이니지의 미래 활용 모습을 선보인다는 각오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김석기 전무는 “이번에 공개하는 사이니지 신제품은 사이니지의 미래와 가능성을 한 눈에 보여준다”며, ”앞으로도 최고의 화질을 구현하는 혁신적인 사이니지 제품과 솔루션을 선보여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을 선도하고 기업 고객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출처=삼성전자

LG전자, 역시 OLED가 답이지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 TV를 전개하는 LG전자는 사이니지에도 동일한 방법론을 시도했다. 플렉서블 및 양면, 인글래스(In-Glass) OLED 사이니지와 울트라 스트레치 LCD 사이니지, LED 사이니지 등이 핵심이다.

OLED 사이니지는 백라이트가 없어 기존 LCD에 비해 두께가 얇고 곡면 형태의 조형물 제작이 가능하다. OLED TV의 강점을 설명하며 반드시 거론되는 '백라이트가 없다'는 강점이 그대로 체화됐다. LCD와 달리 빛샘 현상이 없고, 어느 각도에서 봐도 정확한 색을 구현하기 때문에 사이니지 제작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자신감이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플렉서블 OLED 사이니지다. 잘 휘어지는 OLED 사이니지의 특성을 활용,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휘어짐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한번 설치한 구조물도 재차 곡률 변경이 가능하다. 디스플레이의 변형을 사이니지 시장에 접목할 경우 다양한 활용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런 이유로 LG전자는 이번 전시회에서 플렉서블 OLED 사이니지의 곡률을 바꿀 수 있는 특수 구조물을 별도로 설치, 그 형태가 오목과 볼록을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55인치 플렉서블 OLED 사이니지 8장을 사용한 구조물이다.

한편 LG전자는 지난해 선보인 58:9 화면비율의 86인치 LCD 사이니지인 울트라 스트레치 외에도 32:9 화면비율의 88인치 울트라 스트레치도 새롭게 선보인다. 울트라 스트레치는 가로 혹은 세로 방향으로 길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공항, 지하철, 은행 등의 안내판, 매장의 디지털 광고판 등 한 번에 많은 정보를 표시해야 하는 곳에 적합하며 최근 LG전자가 CES 2017에서 공개한 로봇 기술력과 묘한 접점을 보여준다. 연계 플레이가 가능한 지점이 많다는 뜻이다.

LED 사이니지 기술력도 선보인다. 1mm 조밀한 간격의 LED소자로 구성된 173인치 대형 울트라HD LED 사이니지와 투명 LED 필름을 공개한다는 설명이다. 권순황 LG전자 ID사업부장 부사장은 “압도적인 화질과 뛰어난 공간 활용성을 갖춘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고객들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한편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출처=LG전자

사이니지의 정체성, 비전과 한계
사이니지 시장은 당연히 B2B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며, 이런 상태에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미국 LED 사이니지 전문업체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는 등 나름의 공을 들이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전 인포콤 2016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TV 시장에서도 거론된 것처럼, QLED 라는 명칭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엄밀히 말해 삼성전자가 말하는 QLED는 진짜 QLED가 아니기 때문이다.

TV 시장의 역사를 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퀀텀닷 SUHD TV를 밀었던 역사가 있다. 퀀텀닷은 빛을 정교하게 만들어 낼수 있는 나노 크기 반도체 입자며 에너지 효율이 100%에 가까워 추가로 전력 사용량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획기적인 화질 개선이 가능하다.

문제는 퀀텀닷 자체가 LCD에서 시작된 기술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디스플레이 진화의 틀에서 포스트 LCD로 불리는 OLED를 빠르게 장악한 LG전자와 비교해 '급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경쟁자인 LG전자가 OLED라는 완전히 새로운 자체발광 기술을 선보이는 상황에서 자사 프리미엄 TV의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할 필요를 느꼈고, 이런 상황에서 2세대 SUHD TV까지 LCD 기반의 퀀텀닷 기술을 활용했으나 이제 한계에 봉착, QLED라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삼성전자는 QLED TV에 LCD 패널을 사용하면서 퀀텀닷 재료로 빛을 표현하는 방식을 차용, 자발광을 포기했다. 하지만 원래 QLED TV는 전기신호로 퀀텀닷 물질을 발광하게 만드는 구조며 자발광이 존재하기에 별도의 백라이트가 필요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QLED TV를 보유하지 않은 셈이다. 물론 LG전자의 OLED TV도 완벽하지는 않다. WOLED 방식의 LG전자 OLED TV는 컬러필터를 통해 나름의 보완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QLED TV 정도의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삼성전자가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QLED 사이니지를 구축한 것은, TV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소위 '마케팅적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 사이니지의 방법론과 B2B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탁월하지만, QLED에 대한 논란은 삼성전자가 꾸준히 따져야 할 지점이다.

LG전자의 사이니지 전략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이를 통한 연계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지 못한 점이 약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OLED를 중심에 둔 상태에서 TV 시장에서 감지되는 고비용 문제 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