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4세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시스템 / 출처 = 한국토요타

일본의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와 스즈키가 손을 잡았다. 양사는 기술 개발 및 부품조달 등 포괄적 업무제휴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6일 전해졌다. 니혼게자이등 일본 언론들은 이날 “양사가 업무 제휴에 거의 합의했고 향후 주식 보유 등 자본 제휴까지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직 구체적인 제휴 세부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스즈키는 도요타의 첨단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도요타는 인도 시장에서 강점을 지닌 스즈키의 유통망을 활용해 신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을 높였다.

맞잡은 두손, 키워드는 ‘생존’

도요타는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생산·판매 업체다. 하이브리드 기술을 필두로 미래 친환경차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소전기차 양산에 성공했다. 2020년 자율주행 자동차를 상용화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가지고 있다.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탄탄한 제품 라인업을 갖췄다. 미국, 일본 등 선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스즈키는 이륜차로 유명한 회사다. 소형 엔진 관련 기술력이 뛰어나 경차 시장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일본 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도요타-혼다-닛산에 이어 4위 수준. 특히 신흥 시장인 인도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2위인 현대차와는 판매 격차가 두 배를 넘어간다.

양사는 이미 지난해 10월 제휴발표를 통해 손을 잡고 대화를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이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술 표준’ 선점을 위한 전략이라는 뜻이다. 자율주행과 친환경으로 대표되는 미래에 대비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 자료사진. NX300h 하이브리드 시스템 / 출처 = 한국토요타

내연기관차가 한창 발전하던 시절 완성차 업체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더 적은 연료를 사용해 멀리 가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 훌륭한 승차감과 운전의 재미 속 균형이 맞추는 것, 사고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것 등이다. 브랜드들은 저마다 기술 개발에 매진했고 각자의 강점을 키워나갔다.

미래 자동차 시장은 다르다. 불확실성 탓에 쉽게 방향성을 수립하기 힘든 것이다. ‘자율주행’과 ‘친환경’이 자동차 업계 메가 트렌드라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에 대한 완전한 ‘기준’은 없다. 커넥티드 카가 어떤 주파수를 사용할 것인지를 통일하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표준이 없는 만큼 브랜드 입장에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술을 주도하는 회사가 기술표준을 확립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기도 한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자동차 업계가 ‘표준 전쟁’에 돌입한다면 선두권 업체들은 세력을 넓히는 데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추격하는 회사에는 유연성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판매량 의미 없다”

도요타 입장에서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완성차 업체간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다임러, BMW, 폭스바겐 등 독일 회사들은 저마다 이해관계를 내세우며 힘을 모으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 관련 기술력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도서비스 업체를 공동 인수하며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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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는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들과 교류가 적은 편이다. 자국 회사를 맹신하고 특정 협력업체만 고집하는 일본 기업의 특징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 도요타와 스즈키가 손을 잡았다. 스즈키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스즈키는 그간 업계의 변화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해왔다. 포괄적 업무제휴에 따라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관련 선진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연비조작 사태도 큰 타격을 입은 마당에 분위기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날의 회사를 일군 스즈키 오사무 회장도 열린 마음의 소유자다. 스즈키는 이미 198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GM과 자본제휴를 이어왔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5년까지는 폭스바겐과 자본제휴를 맺었다. 지속적으로 큰 파트너를 찾아온 셈이다.

도요타는 인도 시장 공략에 강점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스즈키는 인도에서 ‘자동차 혁명’을 일으킨 회사다. 현지 점유율이 40%에 달할 정도다. 양사가 제휴를 통해 부품 공동 조달을 할 경우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을 일정 수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사의 합종연횡이 당장 글로벌 자동차 시장 판도를 뒤흔들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기업이긴 하지만 스즈키의 판로가 상당히 한정적이고 그 양도 미미하다. 판매국가도 일본, 인도, 헝가리 등으로 제한돼있다. 자국 내에서는 경쟁이 심하고 점유율이 고착화한 상태라 큰 시너지를 내기 힘들 전망이다. 양사가 경차 등 주요 모델이 일부 겹친다는 점도 아쉽다.

단기적으로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시장 판도를 뒤흔들 만한 이슈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일본 자동차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휴를 통한 가격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이익이 초과 발생하고, 이를 미래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자료사진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일본 닛케이신문은 앞서 양사의 제휴 사실을 두고 ‘박력있는 결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스스로의 기술로 미래를 대응하는 한계를 인식하고 마음을 열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