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胡蝶之夢(Celadon butterfly), diameter121㎝, Oil & Acrylic on Canvas, 2014

 

휘몰아치는 강풍에 휘청거리는 눈발이 마른가지와 키 작은 집들의 지붕위로 무질서하게 쌓이던 새벽이었다. 거세게 수직으로 꽂히듯 퍼붓는 골목길을 잰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내만이 유일한 움직임인 때, 솜털 같은 눈(雪) 위를 뭔가가 허우적거리며 가까이 조금 멀어지다 다시 반복하며 발자국을 뒤따라가고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기보다 순전히 육감 같은 것 이였으리.

불현 듯 휙 뒤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눈을 뒤집어 쓴,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든 건 놀랍게도 가늘게 떨며 응시하는, 눈보라 속 희미한 가로등에 드러나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새끼고양이었다. 처절하고도 절박하면서 간절한 눈빛….

어린것의 해맑고 보드라운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말이 필요 없다’라는 순간이 꼭 그랬다. 그가 자신의 가슴으로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꺼냈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었을, 거라고 짐작되는 자그마한 식빵 같은 봉지였다.

눈보라 속에서도 허기진 고양이의 후각을 강렬하게 이끈 것은 그 냄새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존재가 한참을 쏟아지는 눈 속에서 고정되어 있는 풍경을, 수명을 다한 전구가 낡은 테이블위에 은밀하게 뒹구는 어두운 방, 창밖을 바라보다 우연하게 목도 되었던 것이다.

 

▲ diameter84㎝, 2013

 

◇그리움, 치유의 흔적

균열도 선(線)이다. 흔들리며 나아간다는 것은 눈발과 닮았다. 순식간에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듯 출렁이는 물결과 언덕을 넘어오는 바람은 소리를 만든다. 칙칙 잡음이 절반인 낡은 라디오에선 내일도 폭설주의라고 반복해서 예보가 흘러나왔다.

점점 바람이 거세지며 눈발은 공중에서 회오리를 만들어 윙윙 제 멋대로 공포의 결을 만들었다. 광기어린 음성으로 마구 내달리다 되돌고 다시 수직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종잡을 수 없는 눈발엔 그러나 상처를 치유한 시간이 녹아있는, 고독한 독백의 파편들이 함께 부유한다는 것이다.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장석남 詩, 옛 노트에서, 시인생각 펴냄>

 

▲ 千年之愛, diameter98㎝, 2012

 

◇날개를 펴라, 나비여

그리고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눈부신 햇살이 연초록 잎들 위로 은구슬처럼 쏟아지던 날이었다. 소리 없이 팔랑팔랑 나비 한 마리가 내게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움 이상의 감정을, 뭐랄까 잠깐의 멍함, 마음의 해묵은 짐이 단숨에 풀어지는 듯한….

언제였던가. 출구가 보이지 않던 황야에 갇힌 듯 멀고도 지루했던 때, 햇살 가득한 낙원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라며 다독이던 그대여. 이 겨울밤, 가없는 유리창은 자꾸만 덜컹이며 아우성인데 밤하늘 말갛게 떠있는 저 달이 비추는 길을 따라가며 외치노라. 오오 이제 진정 나를, 나타나게 해다오!

△권동철/경제월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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