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통해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상태에서 최초 타깃은 자국 기업으로 좁혀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자국 기업의 해외공장 시설 이전을 줄기차게 요구한 바 있다.

단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법인세 인하라는 당근을 흔들기는 했으나 사실상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으며,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는 일정정도 먹힌 분위기다. 미국 CNBC는 1월 22일(현지시간) 테리 궈 폭스콘 CEO의 말을 인용해 폭스콘이 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건설한다고 보도했다. 포드는 멕시코 공장 건립 계획을 철회했고, GM은 멕시코 생산 물량에 막대한 관세폭탄을 각오하고 있다.

다음 타깃은 해외 기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트위터를 통해 도요타가 멕시코 신 공장에서 코롤라를 생산해 미국에 팔려면 큰 관세를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나아가 "미국에서 장사하려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라"는 압박이 해외 기업에 전방위적으로 '투하'됐다.

삼성전자는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는 멘션을 남겼기 때문이다. 최근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에 있는 오스틴 공장 설비 확장을 발표하는 등 현지 투자에 전향적인 행보를 보였던 삼성전자지만, 아직 구체적인 공장 설립 투자계획도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심스럽게 부지를 탐색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땡큐!"가 튀어나온 셈이다. 사실상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 건설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영악한 승부수라는 말도 나온다.

LG전자도 움직였다. 지난 1월 6일 조성진 부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그 진척도에 대해"80%는 정리가 되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수입해 판매하는 사람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미묘한 찝찝함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대기아차도 미국 투자를 타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17일 중장기 투자계획을 밝히며 향후 5년간 31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보호 무역주의를 타고 태평양을 넘어오자 국내 기업들은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세계 최대 구매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을 포기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공장 건설 등 막대한 투자를 감행할 경우 기존 생산라인과의 중첩문제 및 비용상승 리스크 등이 뻔하지만, 그렇다고 투자를 거부하면 관세폭탄과 같은 심각한 보복을 감당해야 한다. 2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멘션이 유난히 살벌한 이유다.

이 지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현재 중국과 트럼프 대통령 체제의 미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대립관계'다. 당장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외교원칙을 보란듯이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경제전쟁은 벌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중국의 알리바바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로 부터 짝퉁 판매 악덕 시장으로 지정되고, 중국 정부가 미국 GM 합작법인인 SAIC GM에 2억100만 위안, 우리돈으로 약 348억원의 과징금을 매기는 등 서로를 향한 펀치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1월28일 미국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기고를 통해  “중국은 지속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지지하고 자유무역을 추진, 세계 경제의 안정과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국 지정 등과 같은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마냥 중국을 견제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G2 수준으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은 여전히 미국에게 매력적인데다, 북한 문제 등 외교적 공조를 통해 풀어야 할 현안도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이 북한의 핵 야망을 꺾는데 일조하고, 동북아 지방 평화를 유지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과 날을 세워봤자 장기적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공감대가 있다.

이러한 물 밑 유화 분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중국 기업의 애정공세로 읽을 수 있다. 먼저 알리바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그를 만나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상인들에게 중국 시장으로의 판로를 열어주는 방법으로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골자다. 일각에서 공수표라는 지적이 있지만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은 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자신과의 회동을 마치고 떠날 때 이례적으로 1층 로비까지 동행하는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또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장녀 이방카의 남편인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만났으며, 100여개 달하는 중국 기업들은 지난 2일 뉴욕 한복판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대형 광고판을 전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祝特朗普和美國人民新春快樂)’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에는 중국 부동산기업 뤼디그룹, 거란스 등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중국을 맹비난하며 날을 세우고 있으나 정치 및 경제, 안보적 차원에서 나름의 접점을 찾는 유화 제스처를 동시에 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꾸준히 교집합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이 부럽다?
한국의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벌벌 떨면서 '공장 설립은 곤란한데'라며 눈물을 머금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보란듯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달려가 막대한 투자를 미끼로 끈질긴 구애를 보내고 있다. 뉴욕 광고판이 공개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등 '밀당'을 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강온전략을 번갈아 사용하는 분위기다. 한국 기업의 좌불안석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왜 중국 기업처럼 막강한 투자를 시원하게 단행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도 좋아서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아니며, 여기에는 미래수익에 대한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위 리스크 테이킹을 한다는 뜻이지만 한국 기업들은 공포만 느끼며 울며 겨자먹기로 공장 설립 카드를 만지작거릴 뿐이다. 여기에는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전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깔려있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해석이다. 규모의 경제, 즉 체급 자체가 다른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처럼 전방위적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렵다.

차라리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면 정치의 영역을 탓해야 한다. 이유가 뭘까? 미국 대선,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중국의 기업들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비선실세 논란에 휘말려 임원인사도 단행하지 못하는 등 악습의 고리에 묶여 신음해야 했다. 당연히 중장기적 전략도 짜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 체제의 미국에 대한 진지한 숙의도 없었다.

물론 정경유착의 원죄로 봐야 하지만, 부당한 정치권력의 쓸데없는 경제논리 훼손이 얼마나 끔찍한 나비효과를 일으키느냐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비선실세 탓만 하며 계속 미지근한 대응만 보이다가 막판에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만 끄덕여야 할까?  마윈 회장은 100만개에 달하는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일종의 '프로세스'를 제공한 바 있다. 즉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일종의 프로세스를 제공한다고 밝힌 셈이다. 미국의 상인들에게 중국 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과 100만개의 일자리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곧 자신을 당선시켜준 러스트 벨트의 블루컬러 백인 일자리 창출을 의미하며, 프로세스 방법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업체의 특성상 공장을 건설할 필요도 없고 매력적인 중국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기에 '프로세스'를 팔아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훔쳤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방식도 차선책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의 지배자는 아니어도 우리에게 미국은 필요하며, 철저히 경제적 관점에서 기회비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단을 내려 후일을 도모하며 뭐라도 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양한 차선책을 고려하며 속도라도 끌어 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