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2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공장을 건설할 장소와 투자금액 등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삼성전자는 최근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에 있는 오스틴 공장 설비 확장을 발표하는 등 현지 투자에 전향적인 분위기를 숨기지 않은 바 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는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1라운드는 자국 기업, 2라운드는 외국 기업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에 거주하는 블루컬러 백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기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천명한 바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흔들며 남중국해의 긴장도를 끌어올리는 초강수도, 알리바바를 짝퉁으로 지정한 미국 상무부의 견제구도 모두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적 측면에서 보호 무역주의 기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라운드는 자국 기업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 아이폰 생산 시설의 미국 이전을 집요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공은 아이폰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에게 넘어간 상태며 일단 전향적인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폭스콘의 모회사 홍하이가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며 나아가 투자계획을 미국 관련 기관과 상호 이익 원칙에 따라 가다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미국 CNBC는 1월 22일(현지시간) 테리 궈 폭스콘 CEO의 말을 인용, 폭스콘이 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건설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자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기업에는 세금 폭탄을 운운하며 압박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이에 포드는 멕시코 공장 건립 계획을 철회했고 GM은 멕시코 생산 물량에 떨어질 관세폭탄을 각오하며 살 떨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2라운드는 미국에서 장사하는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삼았다.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트위터를 통해 도요타가 멕시코 신 공장에서 코롤라를 생산해 미국에 팔려면 큰 관세를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한 지점이 단적인 사례다. 도요타가 멕시코 과나후아토주(州)에 연산 20만대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겠다고 선언하자 트럼프 당선인이 강하게 압박한 모양새다. 일단 도요타는 그대로 계획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만 그럴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보복론'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상황이 거칠게 돌아가자 아시아 대표 기업가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당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그를 만나 500억달러를 투자, 일자리 5만개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무려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떠나자 이례적으로 1층 로비까지 배웅하며 "난 마윈 회장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마윈 회장의 약속이 '공수표'라는 지적도 있지만, 두 사람의 회동은 얼어붙은 미중관계를 해소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후한 평가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CES 2017 기간이던 지난 1월 6일 조성진 부회장이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며 그 진척도에 대해"80%는 정리가 되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발언은 그 다음이다. 조 부회장은 "현재 상황으로 보면 수입해 판매하는 사람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미묘한 뒷맛을 남겼다.

삼성의 표정관리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미국에서 장사하려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라"는 주장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상승에 따라 제품의 가격까지 올라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스마트팩토리 방법론으로 접근해도 일자리 창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위 외통수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마냥 뒷 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 이미 잽을 한 방씩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0일 중국에서 생산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정용 세탁기가 미국에서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을 것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가 단적이다. 이에 삼성과 LG-판다가 쑤저우와 난징에서 만든 세탁기는 미국에서 각각 52.51%, 32.12%의 반덤핑 관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중국산 세탁기가 미국 산업에 피해를 끼쳤다고 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판정은 시장 상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으며 LG전자도 "매우 유감"이라며 "미국 상무부의 중국산 세탁기 부품 가격 책정 방법이 실제와 큰 차이가 있고, 미국 내 산업에 끼친 피해가 없음을 지속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5년 월풀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내 판매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월풀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이 알려지자 '즉각 환영'의 입장을 표명하며 "3000명 월풀 공장 직원들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여기에서 '3000명 월풀 공장 직원들의 승리'라는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국 기업의 보호, 나아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특단의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결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미국 현지 가전 공장 설립을 반기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묘한 표정관리에 전력하는 분위기다. 분위기를 타는 속도로만 본다면 삼성전자는 손정의 회장과 마윈 회장보다 늦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 멘션이 아닌 육성으로 "난 삼성을 아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들어도 문제, 듣지 못해도 문제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