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유행처럼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저도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만 의외로 제일 많이 의심하는 단어도 바로 4차 산업혁명입니다. 클라우스 슈밥의 입에서 시작된 이 마법같은 단어는 두루뭉실한 미래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확실하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경고로 읽히기도 합니다. 전문가를 만나고 업계 의견을 모아보는 한편 관련 책을 몇 권이나 읽어도 감은 오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관련 기사는 쓰는데, 쓰지 않으면 분명 큰일날 것 같은데, 솔직히 요상한 단어입니다. 뭐랄까. 느낌만 보면 왠지 종교가 되어버린 뉘앙스도 풍깁니다. "여러분! 4차 산업혁명 믿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그러니 십일조 내세요"

 

정치권도 강타했다
국내 정치인들의 입에서 부쩍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최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합리함을 풀어내고 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산업 생태계와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한 스타트업 육성을,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인공지능 시대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말하며 4차 산업혁명을 논하고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을 다룬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를 읽었다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치인들의 주장을 잘 살피면 재미있는 지점이 보입니다. 바로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 일자리 창출과 기업간 불공정 관행, 스타트업 생태계 등은 꽤 오래전부터 나오던 말들입니다. 그냥 이 말들을 4차 산업혁명적 측면에서 풀어내겠다고 포장한 분위기에요.

더 재미있는 지점도 있어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치인들의 발언을 두고 정치인들끼리 막 싸웁니다. 조배순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2일 "문재인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철수 전 대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견제구를 날렸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2일 "문제인 전 대표의 4차 산업혁명 시각을 우려한다"는 발언을 했지요.

뭔가 보이지 않습니까?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아 조기대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은 부동의 1위며, 이를 공격하는 각자의 공세도 파상적으로 집중되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문재인 전 대표만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할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능성은 낮아요.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재인 전 대표'라는 집중포화가 떨어지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공세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4차 산업혁명이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재미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요!

더욱 더 재미있는 장면도 있습니다. 정치인은 무엇으로 먹고 사나요? 임명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 유권자의 지지입니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무엇을 원할까요? 정의, 상식...이지만 우리 솔직하자고요. 경제도 중요한 가치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유권자가 원하는 경제의 핵심은? 바로 일자리입니다.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탄탄한 일자리.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킬러라는 대목입니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해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의 47%는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물론 위대한 대한민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해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활성화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막대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설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자, 정치인들은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요? 조배순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비롯해 몇몇 인사들은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래서 당신은 곤란해!"라고 외치지만 아뿔싸, 그건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원래 있었던 행복한 공약들을 4차 산업혁명으로 포장한 상태에서 "당신은 4차 산업혁명을 몰라!"라고 주장하는 희한한 비극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뭔가 다를까? 전혀요!

4차 산업혁명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레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을 두고 "우리가 3차에 호들갑을 떨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이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 3차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며 말하는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공유경제의 가치를 말하는 겁니다. 용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에요.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의 발전,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및 초연결 인프라를 핵심으로 삼는다고 보는 편이 맞아 보입니다. 네, ICT 기업들이 이미 움직이는 분위기를 보면 뭔가 변화는 올 것 같습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인더스트리 4.0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고 스마트팩토리 실험이 벌어지는 장면은 분명 '뭔가 있다'는 결론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불확실한 미래지만 반드시 불어닥칠 공포를 논하며 의미없는 레토릭은 그만 두자고요. 초연결이라는 패러다임에 집중해 체질개선에 나서면서 파괴적 창조요? 창조적 파괴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2020년을 매우 기다리고 있습니다. 5G가 상용화되고 자율주행차가 막 다닌다고 그래요. 희한하게 정부 발표를 보면 대부분 2020년을 기점으로 삼더군요. 하지만 불확실한 '뻥카'가 난무하고 의미없는 패러다임이 충돌하는 시대. 우리는 유령처럼 4차 산업혁명을 즐기지 말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종교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