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7과 함께 처음 등장했을 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안 팔릴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지난해 12월 정식 출시된 이후 한달 만에 미국 무선 이어폰·헤드폰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애플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 이야기다.

한국에도 기존 애플 제품들과 달리 주요 국가와 같은 시점에 출시됐다. 다만 시장 반응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음향기기 업계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머뭇거리고 있다. 비싼 가격이나 분실 위험 등의 우려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에어팟과 다른 매력을 지닌 무선 음향기기들이 소비자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 출처=애플

에어팟 기대 이상 흥행, 무선 음향기기 시장 상승세

“에어팟은 엄청난 성공작입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연말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허풍이 아니었다. IT 전문 미디어 폰아레나는 애플이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에어팟 증산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주문이 밀려 기존 생산 속도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조사 보고서에서도 에어팟의 흥행이 드러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슬라이스 인텔리전스는 지난해 12월 에어팟이 미국 무선 이어폰·헤드폰 시장에서 매출 점유율 26%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에어팟 출시를 기점으로 상위권에 자리하던 비츠, 제이버드, 플랜트로닉스 등은 하향세를 보였다.

에어팟은 다양한 혁신을 구현해낸 제품으로 평가된다. 일단 케이블이 아예 없는 코드-프리 형태다. 기존 무선 이어폰의 경우 일반적으로 2개의 이어버드를 연결하는 선이 존재하지만 에어팟은 분리형이다. 제품을 귀에 꽂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들어온다. 애플 인공지능(AI) 비서 서비스 시리(Siri)와의 연동으로 음성 조작도 가능하다.

▲ 출처=애플

애플이 자체 제작한 W1 칩을 탑재해 더 향상된 무선 사운드를 제공한다. 실제로 에어팟을 구입한 유저들이 음질에 만족한다는 반응이 다수 확인된다. 배터리 지속시간은 연속 재생 기준 5시간가량이다.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38g짜리 제품 케이스에 에어팟을 연결시키면 충전이 가능해 불편함을 줄여준다.

에어팟이 등장한 이후 무선 음향기기 시장 자체가 비중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슬라이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된 이어폰·헤드폰 중 75%가 무선 제품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에는 그 비중이 50%였으니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

계속되는 의구심, 기회 엿보는 오디오 브랜드들

물론 등장 시점부터 따라붙은 의구심은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모양새다. 특히 소비자 가격 저항이 국내에서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 판매가는 159달러(약 18만원)인데 국내 출시가는 21만9000원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출중한 여러 이어폰 사이에서 20만원대 가격은 분명 매력이 반감되는 포인트라고 유저들은 입을 모은다.

분실 위험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지적이다. 에어팟은 분리형 이어버드 제품인 까닭에 다른 유·무선 이어폰에 비해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이어버드를 한쪽만 재구매할 수 없다. 애플은 최근 배포한 iOS 10.3 베타 버전에 ‘에어팟 찾기’ 기능을 추가해 분실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 출처=애플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에어팟의 디자인을 비판하기도 했다. “에어팟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착용한 이용자의 모습이 촌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라며 “자신이 남들에게 '하얀 보청기'를 낀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블랙 색상 출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려의 시선들 사이에서 국내외 오디오 브랜드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7에 이어폰 단자를 없애 무선 음향기기 생태계 확장에 나선 가운데 주요 브랜드들은 경쟁력 있는 무선 제품을 앞세워 에어팟에 대항 중이다. 일정 부분에서는 에어팟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제품들이 소비자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산코가 최근 선보인 미미핏(Mimi-Fit) GO는 에어팟과 같이 좌우 독립형 무선 이어폰이다. 가격이 4980엔(약 5만원)으로 에어팟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토종 브랜드 캔스톤어쿠스틱스도 경쟁력 있는 무선 이어폰 ‘캔스톤 LX-3050 젤러시’를 지난 1일 출시했다. 가격이 인터넷 최저가 기준 4만원대에 불과하다. 목에 걸쳐 착용하는 넥밴드 타입이라 분실 걱정도 덜어준다.

▲ 출처=비츠바이닥터드레

귀에 걸쳐 착용하는 인이어 타입 무선 이어폰도 이 같은 장점을 지닌다. 2014년 첫 무선 이어폰을 선보인 비츠바이닥터드레는 최근 신형 제품 ‘파워비츠3 와이어리스’를 선보였다. 땀과 수분에 강하며 착용감도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최대 12시간 연속 재생이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배터리 수명이 에어팟 대비 2배 이상 긴 셈이다.

제이버드도 인이어 무선 이어폰 ‘프리덤’을 선보였다. 이 제품도 에어팟보다 음악을 오래 들을 수 있게 해준다. 기본 연속 재생시간은 4시간이지만 초경량·초소형 충전 클립을 장착해 4시간 추가 재생이 가능하다. 최대 8시간까지 연속 재생을 보장한다. 인터넷 최저가 기준 16만원대로 에어팟 대비 저렴하다.

덴마크 브랜드 자브라의 ‘엘리트 스포츠’는 에어팟과 같이 좌우 독립형이면서도 피트니스 기능 특화로 차별화를 꾀한 제품이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해 개인 맞춤 피트니스 코칭을 제공한다. 고급 기능인 노이즈캔슬링을 지원해 주변 소음을 차단해준다. 이 부분에서도 에어팟에 앞선다.

▲ 출처=자브라

무선 헤드폰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에어팟 대체품을 만날 수 있다. 뱅앤올룹슨, 비츠바이닥터드레, 젠하이저 등 유명 브랜드들이 해당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이어폰 대비 더욱 풍부한 사운드와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한 제품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소니의 ‘MDR-1000X’의 경우 노이즈캔슬링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노이즈컨트롤’ 기술을 구현했다. 주변 소음을 선택적으로 차단해주는 기술이다.

국내 음향기기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아이폰7에 이어폰 단자를 없애 무선 음향기기 시장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며 “에어팟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면서 업계에 자극을 준 건 사실이다. 음향기기 업체들은 기존에 보유한 기술력을 살린 제품을 출시해 경쟁에 나서면서 무선 음향기기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과 반(反)애플 전선의 경쟁이 첨예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소비자 선택에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