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요즘 와인문화를 보면 허세의 거품이 조금은 빠진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비쌀수록 좋은 술, 비싸야 맛있는 술이란 공식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최근 ‘먼 나라 이웃나라’로 잘 알려진 이원복 교수가 와인 소믈리에로 변신, LG상사 트윈와인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원복 와인’을 출시해 가격 대비 품질 좋은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와인문화의 허세거품이 많이 빠졌다곤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한번 생각해봐요. 우선 비싼 와인이라고 하면 내 입에서 떫던 말던 맛없는 와인이라 느껴도 우선은 맛있다고 말하잖아요.

그래야 자신이 고급와인을 느낄 줄 아는 수준은 된다는 거니까.” 지난 8월 LG상사 트윈와인과 함께 ‘이원복 와인’을 출시한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그가 몸담고 있는 덕성여대 캠퍼스를 찾았다.

“와인은 쉬워야 한다 편하게 마셔라” 지론
“마트에 가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 많잖아요. 우리가 와인을 배우는 목적도 와인을 몰라 무조건 비싼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 대비 질 좋은 밸류와인을 찾기 위해 포도 품종과 지역별 특징을 익히는 것 아닌가요.”


교수이자 만화가로만 알던 이원복 교수의 와인지론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미 50만권 이상 팔린 와인입문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2008)>을 발행하기도 한 와인 애호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와인뿐 아니라 모든 주종을 가리지 않는 애주가다. 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 교환교수로 갔던 그가 창고형 리커 스토어(Liquor Store)를 보고 “모든 와인들과 주종이 쌓여있던 그곳은 마치 천국 같았다”고 표현한 것만 봐도 그의 취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가 트윈와인의 ‘와인 대중화’를 모토로 한 ‘이원복 와인’ 출시 제안을 반갑게 맞은 이유 역시 ‘와인은 쉬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책을 보면 ‘ 잔을 어떻게 잡든, 잔을 돌리든 말든, 마시다 춤을 추든, 생쇼를 하든 마시는 사람 마음이지 소위 정설(定說)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식으로 마시면 되는 거야’ 라는 구절이 보인다.

한창 한국과 일본의 베스트셀러였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역시 못마땅한 그다. 와인은 고급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한국문화에 ‘12사도의 와인을 찾는 줄거리나 와인 한 모금에 원시림이 펼쳐지는 등의 현란한 맛의 묘사는 와인에 대한 정보가 없던 한국 와인 문화에 와인의 신비감만 부추기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와인에 대한 허례허식을 버리고 편하게 마시자고 주장하는 그와 와인의 대중화를 화두에 둔 트윈와인측이 고심해 고른 ‘이원복 와인’의 첫 번째 셀렉션은 칠레의 ‘비냐 마이포(Vina Maipo)’와 스페인의 ‘리오하 베가(Rioja Vega)’ 와인이다.

가격 대비 저렴하면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잘 어울린다는 특징을 가진 칠레와 스페인산 와인이라는 이유 외에도 이 교수는 “ 두 지역의 와인이 지역성과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특별하다” 고 말한다.

그는 “두 지역 모두 1860년대 전 세계 와이너리를 덮친 포도뿌리 해충(필록세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지역으로 옛 포도 품종 고유의 맛과 향을 지키고 있는 정통성이 있다” 며 “마이포나 리오하 등 특정 지역명을 브랜드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와인”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역시 2만~3만원대가 주류로 비냐 마이포의 경우 이미 국내 와인대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해 그 퀄리티를 인정받은 와인이기도 하다.

“10년 독일 유학생활 도움 보답하고 싶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건 ‘이원복 와인’을 출시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장학사업을 위해서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이 교수는 35년 전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유학을 했다. 당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학교는 국립이라 등록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9년 넘게 독일에서 공짜로 받았던 그는 생활비 역시 종교기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그는 “독일 정부가 가난한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준 것은 ‘후진국 학생 지원’이라는 명분뿐 아니라 ‘친독(親獨) 인사’를 양성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 내가 받은 혜택을 돌려줄 차례”라고 말을 이었다. 그 대상은 독일이 아닌 우리나라보다 더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 나라의 미래 지도자가 된다면 자연히 ‘친한파’가 되지 않겠냐고 웃는 그다.

장학사업이 퇴임 후의 꿈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이 교수의 계획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장학사업을 위해 장학법인 ‘꿈 나눔터 먼나라 이웃나라’를 설립 중에 있고, 장학법인 기금 조성을 위해 영리법인인 ‘꿈 놀이터 ㈜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다양한 수익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와인 출시도 그 수익사업 중 하나다.

앞으로 ‘이원복 와인’의 수익금은 전액 영리법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장학법인 ‘꿈 나눔터’는 벌써 장학금 혜택을 받을 첫 대상자로 아이티 학생을 선정했다. “ 2명을 뽑는 장학생에 900여명의 고등학교 최우수 졸업자들이 지원을 했다고 해요. 지난 8월 12일 등록금과 기숙사 제공을 약속한 덕성여대 측과 학생들을 데리러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아이티에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정이 늦춰져 10월에 가서 데려올 예정입니다.”

국민에게 친근한 이원복 교수의 이미지를 빌려 와인을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선 보이려는 트윈와인은 ‘체험’이 중요하다는 이원복 교수의 뜻을 살리고자 ‘이원복 와인’ 체험단을 운영한다. 매월 트윈와인 공식 블로그를 통해 와인 체험단 신청을 받고, 신청을 통해 체험단에 선발되는 사람들에게 이원복 와인을 무료로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