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교육기업의 지사장 A씨는 강남 테헤란로 이면에 있는 6층짜리 빌딩에 지난 2014년 사무실을 입주했다. 2년여만에 계약 갱신기간을 맞은 그에게 건물주는 재임대 시 ‘렌트프리(무상임대)’ 기간을 제시하는 등 붙잡기에 나섰다. 사실 A씨는 주변 중소형 빌딩들에도 공실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떨어지자 비슷한 임대가격의 신축 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려던 참이었다.

#테헤란로 이면로의 다른 빌딩에 사무실을 입주해 있는 세무사 L씨는 “입주해 있는 빌딩은 건물 관리가 잘된 편이라 현재 공실이 없는 상태인데도 3년째 임대료를 전혀 올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입주 대기수요가 많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명실상부 한국 오피스 시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 온 서울 강남 테헤란로 오피스 시장이 여전히 ‘공실앓이’ 중이다.

강남역에서부터 동쪽 종합운동장역 근방까지 이어지는 4.1km의 왕복 10차선 테헤란로는 과거 벤처1세대의 본거지. 최근 ‘대한민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며 IT기업, 게임 개발업체 등 첨단 스타트업들이 모여 든 상업지역이다. 그런데 지난 2010년 이후 사세를 키운 IT업체들이 판교 테크노밸리나 도심지역 신축 빌딩으로 떠나기 시작하면서 테헤란로의 공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1일 부동산 투자자문사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테헤란로 등 강남권역 (연면적 1만㎡이상 또는 10층 이상 기준) 빌딩의 공실률은 9.0%에 달한다.

10.0%를 기록한 전분기에 비해 공실이 다소 해소됐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의 공실률 8.20%보다 0.8%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과거 2013년 중반까지도 강남권역의 공실률은 다소의 부침이 있더라도 6%대를 유지해왔다.

대치동 D부동산중개업체 관계자는 "테헤란로 건물들의 공실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14년말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의 나주 이전이 기점"이라고 말했다. 한전과 관련된 하청업체 등 많은 업체들이 한전을 따라서 테헤란로 사무실을 비웠던 것.

이어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서초동 사옥을 떠나 수원 영통구 디지털시티 본사등으로 모두 옮겨가면서 강남권역의 오피스 공실은 더욱 늘었다. 테헤란로의 기업들은 인근의 교통요지인 강남역과 삼성역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고, 지하철 9호선 개통 이후에는 언주역과 봉은사역 일대의 신축 빌딩도 저렴한 임대료로 테헤란로 기업들을 유혹했다.

이창준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선임상무는 "테헤란로 빌딩들이 이면로, 삼면로 등과 임대가격이 비슷해지다보니 최근 대로변 공실은 사라지고 있다"면서 "대신 이면로 빌딩들의 공실은 여전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또 “현재는 교통망 발달로 입주할 건물의 선택지가 많아져 도심지역이나 경기권 지역의 신축빌딩이나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빌딩들로 이동하는 것이 많은 반면,  과거와 같이 유사 업종끼리 모여 있는 현상도 차츰 흐려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면로 빌딩에 있던 소규모 입주사들의 '전면 진출'이 빨라진 것은 공유 오피스라는 오피스 트렌드와도 무관치 않다. 

전면로 프라임급 빌딩의 일부층이 비즈니스센터 등 공유 오피스로 활용되면서 스타트업, 1인기업 등 중소업체들의 프라임 빌딩 입성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역삼역 3번출구 현익빌딩에는 국내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역삼역인근 아주빌딩에는 '스파크플러스'가 생겼고, 강남파이낸스센터에는 홍콩계 서비스드오피스 ‘TEC’가 들어섰다. 

외국계 비즈니스센터 임원 A씨는 “과거 테헤란로 등의 프라임 빌딩 소유주들이 비즈니스센터 입주를 꺼려왔다면 현재는 거꾸로 반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유는 "대형 입주사들이 빠진 자리에 공간을 같이 쓰는 비즈니스센터가 입주하면 이면로 빌딩의 중소 입주사들까지 자신의 건물로 끌어올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근 중개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후반을 기점으로 테헤란로의 2층 이상 오피스의 임대료는 전용면적 기준 평(3.3㎡)당 10만~20만원대였다면 지금은 이보다 20% 낮아진 수준이다. 또한 이면로 빌딩들은 일면로 빌딩들에 비해 약 20% 저렴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역 한전 부지에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완공되고, 38층짜리 쌍둥이빌딩으로 복합개발이 예정된 옛르네상스 호텔(현 벨레상스 서울 호텔)이 들어서면, 공실은 더 늘어나더라도 다시 테헤란로의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