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체제전환과 북한> 강성진·정태용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이 책은 매우 뜻깊다. 그간 국내외 정치경제 학자들이나 정책담당자들은 북한의 레짐체인지(Regime Change, 체제변경) 이후 새로 이식될 체제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지금의 미국 등 선진국 체제, 지금의 중진국들이 지향하는 체제, 지금의 후진국들에게 국제기구들이 강요하는 체제를 고스란히 북한에 옮겨와 단계적으로 적용해가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북한의 체제전환에 관한 괄목할 만한 이슈 제기는 거의 없었다. 저자들은 이처럼 도식화되어 버린 북한 체제전환론에 반기를 들고 있다.

물론 저자들은 ‘북한이 스스로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다면’이라는 가정하에 북한 체제전환론을 다룬다. 이들은 북한의 붕괴로 남한에 흡수되는 독일식 통일 상황에서는 통일독일의 정책에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취약성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체제가 내부 혹은 외부충격으로 일시에 붕괴되어 독일식으로 흡수통일이 이뤄질 개연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대북 선제타격론은 남한에게도 치명상이 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개입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극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전체주의적 체제가 무너지는 레짐체인지의 경우도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군부 중심의 집단지도체제의 등장과 같은 소프트랜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이런 상황이라 더욱 빛난다고 생각된다.

저자들은 우선 중앙집권 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41개의 경제체제전환국을 대상으로 체제전환의 과정, 전환정책의 내용 및 성과를 비교한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 중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체제로서 나름의 민주화를 추진하고, 경제체제로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과 결과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저자들은 환경과 사회발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차원에서 정책성과를 평가한다. 북한 체제전환에 대한 시사점은 그 이후 제시된다.

책 내용은 쉽지 않다. 강의시간에나 읽을 연구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간의 체제전환 사례와 함께 체제전환의 핵심 키워드로 작동해온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이해하고 나면 이 책의 골격은 한결 쉽게 파악될 수 있다.

‘워싱턴 합의’로도 알려진 이 정책은 북한에 이식될 것으로 당연시하고 있는 체제의 또 다른 이름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 남미 국가들이 잇따라 경제위기에 직면하자 미국 정부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워싱턴 소재 국제기구들이 다양한 경제처방을 내놓았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은 이를 10개 항으로 정리했는데, 이를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른다. 대략 긴축재정, 외환시장 개방, 시장자율 금리, 변동환율제, 무역자유화, 외국인 직접투자 자유화, 탈규제,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재산권 보호 등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구조조정방안은 남미뿐 아니라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 등 국가들에도 강제적으로 시행된 바 있다.

저자들은 북한의 자발적인 체제전환의 경우 안정화, 세계화, 민영화, 자유화를 중심으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식 처방을 권하지 않는다. 북한의 특성에 맞게 시장과 정부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모색하고 경제적 성과 이외에도 사회와 환경까지도 아우르는 지속가능발전 차원에서 정책수립과 성과 파악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다만, 북한 편의 내용이 부족한 감이 있다. 보다 심도 있는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