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컬러와 관련한 회사의 이름을 떠올린다면 아마 제일 먼저 팬톤(Pantone)이 생각날 것이다. 팬톤은 원래 화장품 색 견본 제조회사에서 출발했는데, 최근 매년 화제가 되는 ‘올해의 색’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올해의 경우는 노란 빛이 도는 녹색인 ‘그리너리(Greenery)’가 선정됐다. 싱그러운 녹색이 주는 자연의 휴식, 활력, 편안함 등이 연상되는 힐링 컬러라는 것이 팬톤의 설명이다. 이 올해의 색은 벌써부터 화장품, 패션 등에 발 빠르게 사용되고 있다.

팬톤의 영향력은 이미 여러 번 증명된 바 있는데, 지난 2015년에는 짙은 갈색 계열의 ‘마르살라’를 올해의 색으로 추천해 특히 패션 쪽에서 큰 유행을 일으켰다. 또한 작년 봄에는 옅은 분홍빛의 ‘로즈쿼츠’와 마찬가지로 연한 하늘색의 ‘세레니티’를 지목해 색조 메이크업과 패션 아이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유행의 흐름과 더불어, 컬러는 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멜라니아 트럼프는 영부인으로서 첫 패션으로 하늘색 재킷과 원피스를 보여줬다. 투피스뿐 아니라 손에 낀 긴 장갑까지 하늘색 한 가지 톤의 색상으로 통일된 패션에, 사람들은 평온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재클린 케네디의 스타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잔상이 주는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주어진 역할에 전념할 것을 선언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미국 언론은 평가했다.

겉옷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속옷에서도 읽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사람들의 취향과 속옷을 선택하는 태도에 있어서 변화의 메시지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비비안에서 지난 2016년과 그보다 5년 전인 2011년 남녀 속옷에서 판매량 10위를 기록한 컬러들을 살펴봤다. 우선 남성 속옷부터 살펴보니 2011년에는 블루, 네이비, 블랙 등 어둡고도 남성성이 강한 컬러들이 10위 안에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2016년에는 10위 안에 와인, 오렌지, 핑크 등의 여성스러운 컬러들이 속속 눈에 띈다. 남성 속옷의 컬러가 다양해지고 패션화되는 것은 남성들이 몸매나 패션에 관한 자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성 속옷에 화려한 컬러나 프린트가 강조되는 트렌드는 해가 갈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비비안

그렇다면 여성 속옷의 컬러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11년에는 누드, 소프트브라운, 핑크 등의 옅고 비침이 없는 컬러들이 10위 안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2016년에는 퍼플, 바이올렛, 와인 등의 농밀한 컬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만큼 여성들이 속옷을 선택할 때 예전에 비해 더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컬러를 고른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해가 다르게 다양해지는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속옷업계에서도 컬러 선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많은 양의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 해외 출장을 통해 컬러 트렌드 동향을 살피고, 현지에서 개최되는 란제리 페어에 참석해 전시된 제품과 원단 등을 통해 다양하게 자료를 수집한다. 또한 국내에서 주최하는 트렌드 컬러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수시로 시장조사를 통해 국내의 컬러 트렌드도 연구한다. 이러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와 최신 트렌드에 맞는 컬러를 바탕으로 시즌제품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에서는 브래지어를 기준으로 살펴봤을 때 매해 시즌마다 30개 정도의 컬러 톤을 사용한다. 가령 핑크 톤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파생되는 인디언핑크, 핫핑크 등 그 톤에 해당하는 컬러를 평균 5~6개 정도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속옷에 적용되는 색상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해지는 셈이다.

속옷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기만족의 성격이 강한 아이템이다. 필요에 의해 구입하기도 하지만, 기분전환을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속옷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행 컬러, 팬톤이 제안하는 올해의 색도 좋지만 자신을 만족시킬 컬러의 속옷을 찾아보는 것도 기분전환을 위한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