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기자’가 아닌 ‘덕후’의 자존심을 건 진짜 ‘데스’ 매치입니다. 건담 프라모델 대 레고. 키덜트의 대명사인 두 콘텐츠를 가지고 펼쳐지는 데스매치.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건담 프라모델  

“레고와는 다른 겁니다! 레고와는!” 박정훈 기자

이전까지의 데스매치는 그렇게 ‘파이팅’이 넘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사실 그동안은 대결 구도 중 어느 쪽의 편도 들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오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투지’가 솟구치는 데스매치인 것 같습니다. 그간 고이 숨겨왔던 ‘건덕후(건담 프라모델 마니아)’의 본능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입니다!

장난감에 늘 목말라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레고’에 대한 기억은 슬픈 것들만 남아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레고는 참 비쌉니다. 크기가 크지 않은 제품도 몇 만원을 호가하죠. 좀 큰(해적선이나 성(城) 시리즈 레고) 제품들의 가격은 10만원대를 훌쩍 넘어가고요. 어린 마음에 친구들의 집에 큰 레고가 있다고 하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저의 쓰린 속을 달래줬던 존재가 바로 건담 프라모델(이하 건담)이었습니다. 일단, 레고에 비해 훨씬 가격이 쌌기 때문에 접하기가 훨씬 수월했죠. 그래서 지금도 각종 장난감에 열광하는 저지만 레고에 대해서는 확실히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습니다.

건담은 다루기에 따라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되기도 하지만,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어른들의 근사한 취미가 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레고가 부품의 조합으로 여러 가지 창의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다면, 건담 프라모델은 설명서대로 부품을 잘 맞추기만 해도 좋고 거기에 채색용구나 장비를 이용해 색을 입히면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건담도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레고와 다를 게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러나 따져 보면 가장 큰 스케일(PG)의 10~20만원대 건담과 도색(塗色) 장비의 가격을 다 합쳐도 백만원이 넘어가는 레고 한정판 하나의 가격보다 저렴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담 원작이 일본 만화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거부감 때문에 레고가 낫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서구(대체로는 미국) 우월주의로 점철된 헐리웃 블록버스터 콘텐츠들을 자주 활용하는 레고에 대해 드는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거예요.

무엇보다 건담 프라모델은 전 세계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하는 원작들의 감동적 스토리, 뭇 남성들의 피를 끓게 하는 로봇과 메카닉(Mechanic)적 요소가 잘 어우러진 콘텐츠를 제품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레고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취미생활로 생각해도 일단 레고보다 돈도 훨씬 덜 들고요.

<기동전사 건담(1979)> 제12화 ‘지온의 위협’ 편에 나오는 건담의 명대사 패러디로 오늘의 데스매치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레고와는 다른 거다! 레고와는!”

레고

“레고야말로 키덜트 문화의 선봉장!” 강기산 기자

레고는 참 편견이 많은 장난감이죠. 이번 데스매치를 통해 건담보다 나은 점도 나은 점이지만 편견을 바로잡고 싶네요. 우선 가격적인 면부터 말씀드릴게요. 레고가 비싸다는 일부 의견은 웃돈이 붙은 금액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지 절대 소비자 가격이 수백만원을 호가하지 않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밀레니엄 팔콘과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 호가 대표적입니다. 두 제품 모두 해당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치인 만큼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죠. 그만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렸고 밀레니엄 팔콘과 블랙펄 호는 금세 품절됐으며 이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몰리자 자연스레 프리미엄이 붙었습니다. 특히 특정 연도에 생산된 일부 모델은 3~4배가량 가격이 뛰며 레고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레테크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레고가 비싸다는 편견은 고이 접어 두었으면 좋겠네요.

▲ 출처= 레고코리아

두 번째로는 마냥 어린이들의 블록으로 평가절하한다는 것이죠. 레고는 매뉴얼을 보고 만드는 완성품도 재미있지만 창의력을 발휘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내에도 이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런 행위가 이어지고 있는데 유명 건축물부터 로봇까지 다양한 창작물들이 나오며 이목을 사로잡고 있죠. 물론 이런 창작물 중에는 건담은 물론 자쿠까지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어요. 단순히 창작에서 끝나지 않고 제품화로도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모델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월-E라는 캐릭터예요. 월-E는 한 외국인 레고 유저가 매뉴얼을 만들어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했는데 제품화 요청이 끊이지 않아 결국 정식 제품으로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죠. 꿈이 현실이 되는 상황이 된 거죠.

세 번째로는 편견보다는 레고의 최고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바로 컬래버레이션인데요. 영화부터 건축물, 자동차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협업을 선보이며 레고 마니아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죠. 우선 가장 대표적인 컬래버레이션은 단연 <스타워즈> 시리즈입니다. 침체기에 빠진 레고를 다시금 황금기로 올려놓은 컬래버레이션이기도 하죠. 앞서 언급한 밀레니엄 팔콘은 물론 X-윙, 데스스타, 크레닉의 임페리얼 셔틀 등 다양한 스타워즈 시리즈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지갑을 공략했죠.

이뿐 아니라 히어로물인 아이언맨,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역시 레고화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영화 외에도 세계 유명 건축물 역시 레고의 창작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타지마할, 오페라 하우스, 빅벤, 타워브리지가 출시됐고 향후에도 다양한 건축물이 제품화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남대문은 아키텍처 시리즈로 나오며 한국 레고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 최근에는 영국 밴드의 레전드 비틀즈 에디션이 나와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옐로 서브마린 21306이라는 제품으로 노란 잠수함과 비틀즈 미니 피규어가 장점인 모델이죠. 이렇게 레고는 다양한 특장점으로 키덜트 문화를 주도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