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살이 돋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소름이 끼치거나 무서울 때, 우리는 닭살이 돋는 기이한 경험을 하지요. 고등학교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원펀맨을 닮은 선생님이 저보다 점수가 높은 친구에게 체벌하고 노려볼 때. 기자라는 이유로 밤 새 술 퍼마시고 입맛 쩝쩝 다시며 새벽 첫차 알람과 함께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치는 아내의 눈빛. 우리는 닭살이 돋습니다.

 

닭살이 돋는 이유는 뭘까요? 피부의 모공을 둘러싼 털세움근이라는 작은 근육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여기가 수축하면 털이 서는 원리라고 하네요. 네, 사실 별 필요가 없는 근육이에요. 원펀맨 선생이 제 엉덩이를 후려쳐도, 와이프의 "오늘 아침은 없다"는 냉혹한 멘트가 심장을 후려쳐도 막상 닭살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인류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털세움근 덕분에 위협을 받으면 몸을 더 크게 만들고, 추운 날씨에는 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좋았던 기능이지만, 이제는 별 필요가 없는 일종의 진화 흔적입니다.

자.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합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타 등등 복잡한 용어들이 난무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엄청 편리한 시대가 온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기들이 알아서 연결되어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니 인간은 할 일이 없어진다. 이런 개념이니까요.

물론 간단한 일도 아니고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생태계 구성과 플랫폼 작동, 각자의 합종연횡과 사용자 경험의 연결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요. 뻔합니다. 초연결의 시대가 오면 인간이 일일히 챙기고 처리할 것들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아마존고 보세요. 초연결 시대가 오면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인간의 생산적 역할은 조금씩 축소될 것이 뻔합니다. 이건 아무리 낙관적인 전망을 깔아봐도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자위하지 말자고요.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며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입니다. 인류 최고의 콘텐츠라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방향성은 공유경제의 등장도 보완재로 삼켜버리는 블랙홀입니다.

다만 일자리는 기계적인, 그러니까 숙련된 일자리를 먼저 빼앗을 것이 확실합니다. 처음에는 저임금에 속하는 직업군을 빨아들이고 1차 산업혁명 당시 기계가 삼켰던 영역을 더욱 넓힐 겁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강 인공지능을 넘어 초 인공지능으로 치닫으면 우리 모두는...? 닭살처럼 필요없어진 과거의 흔적이 될 겁니다.

원래 기술의 발전은 '어렵고 힘든 일을 기계에 맡기고 잘 살아보자'는 취지로 진화를 거듭했는데..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좋겠죠. 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프라에 속한 절대다수는 지옥의 부익부 빈익빈을 겪을 겁니다.

맞습니다. 고민해야할 순간이 왔어요. 방법이 있을까? 진부하지만 창조적인 인재가 되어야죠.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기술을 습관적으로 체화해 장인의 길에 들어서는 것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도자료 기사 쓰면서 갑질에 취해 살면 끝. 기계적인 무언가를 뛰어넘는 인사이트의 힘을 보여라.

그런데 그 인사이트도 조만간 인공지능의 것이 될 판입니다. 그럼 무엇을? 이런 말도 있더군요. 인간과 인간의 교류에 능한 자가 4차 산업혁명을 지배할 것이다. 맞는 말입니다. 기기와 기기의 연동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시대. 인간과 인간의 원초적인 교감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자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산업용 로봇과 더불어 인간형, 서비스형 로봇의 발전이 신경쓰여요. 물론 시간은 벌 수 있을 겁니다. LG전자가 CES 2017에서 공개한 가정용 로봇. 아이들에게 동화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준다고 하는데, 생김새는 따스함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완벽한 인간형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시기는 그리 빠르게 오지 않을 것. 물론 10년 정도의 기간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변수도 있지요. 특수효과 업계 전문가는 이런 말을 했어요. "불꽃이나 홍수같은 자연물은 이제 어느정도 CG로 할 수 있지만 인간의 피부는 어렵다. 할 수 있지만 진짜 어려운 일" 여기에 걸어 보렵니다. 누구나 '나'를 카피한 또 다른 '나'는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그 기술도, 시간도 따라잡힌다면?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않는 인프라를 만들거나, 다른 방법을 찾거나. 전자의 경우 구글이나 MS 정도는 되어야 하는 일이니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후자인데. 뭐가 있을까?

질문을 하는 법입니다. 인공지능은 똑똑해요. 빠르고 정확한 답을 찾지요. 하지만 최초 인공지능에게 무언가를 의뢰하는 창조적 방법론은 아직 인간의 것입니다. 질문. 질문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육을 보면 답답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주입식 교육의 폐혜에 젖어 '답'을 찾는 것에만 아이들을 내몰고 있으니까요. 이런, 인공지능님이 다 해주실 일을.

▲ 자율주행차. 출처=우버

물론 이 분야도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할 겁니다. 그러나 장담해요. 아마 인공지능이 창조적인 질문을 할 정도의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반란군이 되어 싸우고 있을 겁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최근 방한한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 교수는 인류를 공룡이 겪었던 '멸종'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설명했습니다. 운석이 떨어지면 미사일이라도 쏘거나, 지하로 파고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 기술이 하는 일이며, 인류의 최종무기라는 점에서 '만약 뚫리면 망하는' 아슬아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처음부터 다뤄가는 법 외에는 없겠죠. 무책임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4차 산업혁명의 공포가 이렇게 선명한데...대한민국 정부는 꽃놀이패에 취해 사는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말들이 많은데,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프로젝트는 어김없이 일자리 창출이 달려 있어요. 이러한 허례허식을 걷어내는 것.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진짜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