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매달 월급을 받아도 통장 잔고는 늘어나지 않는다. 적금을 들고 보험도 가입하고, 주식 투자를 해보지만 수익은커녕 빚만 불어난다. 열심히 돈을 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통장은 말 그대로 ‘텅장’(텅 빈 통장을 이르는 인터넷 용어)이 됐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누구나 걱정하고 있는 재테크 문제에 대해 오히려 ‘재테크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정보를 주는 대상이 금융사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결국 손실을 입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구 소장은 금융상품과 투자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일침 했다.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노동이며,  노동을 배제하고 불로소득에만 기대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당신이 믿고 가입한 보험을 의심하라’, ‘당신이 재테크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등 파격적인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구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짜정보’ 너무 많아…“재테크 맹신 위험”

“20대에는 어떤 재무설계를 하고, 30대에는 투자를 진행하고, 40대에는 부동산을 구매해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 자체가 재테크 이데올로기입니다.”

구본기 소장은 ‘세대별 자산관리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듣자마자 공격적으로 답변했다. 사실상 ‘금융은 사기다’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구 소장은 20대 시절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금융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당시는 2000년대 중반으로 ‘재테크 황금기’였다. 언론사와 매스컴에서는 재테크를 통한 ‘10억 모으기’ 열풍이 불었으며, 직장인을 비롯해 아주머니부터 학생까지 증권사 펀드 상품을 가입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는 본격적으로 재테크 시장을 파헤치기 위해 ‘유진컨설팅’이라는 재무설계 회사를 창업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재테크가 핵심이고, 금융상품을 잘 활용하면 해답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금융에 대해 알면 알수록, 공부를 할수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보험설계를 통해 진행하게 됐으니 상품 판매 위주로 제안을 해서 문제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개인 재무관리 컨설팅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컨설팅 회사는 상품판매 위주에서 소비자 입장으로 철저히 변신했다. 상담수수료만으로 운영됐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는 월급쟁이와 일반 소비자 수준에서는 재테크를 통한 부의 축적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현장에 있다보니 ‘가짜정보’가 너무 많았습니다. 금융을 예로 들자면 정보 생산자들은 대부분이 금융업자들입니다. 뿌려지는 정보를 분석하고 한꺼풀 걷어보면 광고인 경우가 대다수였죠. 일반인들이 쉽게 풀이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실생활 속에서 소비자들이 속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구 소장은 예‧적금과 대출상품을 예로 들었다.

A라는 사람이 7% 금리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운영하고, 5% 이자의 적금을 들었다면 은행 입장에서는 2%의 예대마진이 남는다. A는 2%에 해당하는 이자를 은행에 지불한다. 하지만 적금을 드는 것보다 대출금을 줄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대출 원금을 줄임과 동시에 추가로 나가게 되는 2%의 예대마진(A의 손해)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재테크를 맹신할 경우 이런 단순한 논리 자체가 안통하게 됩니다. 저금리 상황에선 저축이 바보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죠. 투자는 불확실의 영역이고 대출이자는 확실한 영역입니다. 당연히 확실한 영역에서 수익을 챙기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럼에도 금융사들은 환상을 심어줍니다 ‘당신들이 7%로 이자를 지불해도 7%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구 소장은 정보비대칭성 문제를 부동산 분야의 권리금을 통해서도 설명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은 5년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6년차가 되면 얼마든지 내쫓길 수 있지요. 법률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취약점을 파고들어 건물주들은 권리금만 받고 세입자를 내쫓습니다. 이걸 업자들 사이에서는 ‘작업친다’라고 표현하죠. 관련해서 학원도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합법이니까요.”

▲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금융상품 모르면 가입 말라 ‘햄버거 고르기 게임

이런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서라도 연구하기 위해 생활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구 소장의 컨설팅은 30대 친구에게 이야기 하는 수준으로 제공된다. 최근 부동산 관련 서적을 작성할 때도 동생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하는 수준으로 난이도를 맞췄다. 동생이 실제 양복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기 때문이다.

그는 소비자 개인이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해되지 않는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제품을 하나 구입해도 이 제품이 무엇인지, 용도가 어떤건지 알고 사는 것이 상식인데, 신기하게도 소비자들은 금융상품을 모르는데도 가입합니다. 잘 모르는 경우에는 금융상품을 가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비슷한 효용을 가진 기대선택 옵션이 많을 경우, 잘 모르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달라는 요구에 구 소장은 ‘햄버거 고르기 게임’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햄버거 10개가 있다고 칩시다. 모두 다 본인이 좋아하는 맛이라 뭘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A햄버거는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면, 적어도 A는 선택하지 않게 되겠죠. 이런 식으로 수많은 금융상품들이 있는데 뭔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설명이 부족하다면 선택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단순하고 확고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재테크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부의 근원은 노동이지 불로소득이 아닙니다. 재테크 이데올로기는 돈으로 돈을 버는 개념인데, 사실상 계란말이 레시피에 계란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노동에 대한 대가가 적다보니 불안하고, 자꾸 재테크에 기대게 되는 구조입니다.”

구 소장은 나아가 복지 시스템의 개편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현 시스템으로는 실패나 사고시 개인은 회생불능이 될 확률이 높다는 이유다.

“국민건강보험을 예로 들어보죠. 건강보험으로 모두 보장이 되면 실손의료보험이 필요 없습니다. 국민연금 하나로 노후가 보장되면 노후대비 투자비법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죠. 모두 복지가 부족하고 소득이 적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급여 현실화와 복지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럼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없습니까?’라고 묻자, 구본기 소장은 웃으며 답변했다.

“부자는 안됩니다. 하지만 재테크 환상에 시달리며 빚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덜 쪼들리면서 살 수는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