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갤럭시노트7 발화사건의 진범을 공개했다. 외부조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밝혀진 진범은 1차 발표와 마찬가지로 배터리였다. 그 의미심장 포인트를 짚어보자.

▲ 출처=삼성전자

1. "갤럭시노트7 자체는 문제없어"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배터리라고 단언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던 설계 및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일부 앱 구동상의 의혹을 일축한 셈이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기기에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고동진 사장은 현장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배터리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갤럭시노트7 자체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배터리는 발화의 희생자'라는 주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결과론적으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만약 배터리 외 문제로 가닥이 잡힐 경우 갤럭시노트7을 넘어 모든 갤럭시 시리즈에 대한 의혹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일정정도 빠르게 문제를 수습하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보도자료에도 삼성전자의 이러한 시각이 잘 보인다. 23일 기자회견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는데, 이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다름아닌 '갤럭시노트7 발화의 원인'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했지만 보도자료의 행간을 잘 읽어보면 재미있는 점이 보인다. 발화의 원인보다 추후 사고의 재현을 방지하기 위한 수습책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기의 결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추후 스마트폰 동력을 살려 배터리 논쟁과 분리시키며, 강력한 재발방지책을 내세우고 싶은 열망이다. 8단계에 달하는 엄청난 안정성 프로세스는 그 자체로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영상을 통해 캠브리지대학교 클레어 그레이 (Clare Grey) 박사, 버클리대학교 거브랜드 시더 (Gerbrand Ceder) 박사 등의 영상 인터뷰를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과 일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 "삼성의 배터리 검수는 대단한 일"이라는 멘트가 마치 리더스 다이제스트 인터뷰처럼 나왔다.

'소손(燒損)'이라는 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사실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 불에 타서 부서진다는 명사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를 갤럭시노트7 소손으로 칭해왔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문자가 주는 파괴력을 다소 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2. 삼성SDI와 중국 ATL의 문제가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SDI와 중국 ATL 배터리의 문제가 달랐다는 결과발표다. 삼성SDI 배터리의 경우 배터리 위쪽 코너에 눌림 현상과 얇은 분리막에 따라 배터리 내부 단락이 발생했고, 중국 ATL 배터리에 대해서는 비정상 융착돌기, 절연테이프 미부착, 얇은 분리막의 조합이 배터리 내부에서 단락이 발생했다는 것이 골자다.

삼성전자는 최초 갤럭시노트7을 삼성SDI의 배터리로 출시했는데, 발화가 되자 중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국에는 ATL의 배터리가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1차 교환을 선언하며 모든 갤럭시노트7을 중국 ATL의 배터리로 채운 바 있다. 결론적으로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3. 배터리가 문제라면서...너무 관대하다?
결국 배터리가 문제로 결론난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굉장한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줬다. 배터리 제조사에 어떠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것. 모든 문제의 책임은 검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삼성전자에 입다는 취지지만 이는 상당한 리스크를 감내한 것이다. 협력사를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주주들 입장에서는 배임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왜?'라는 의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협력사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한편, 최종 잘못은 삼성전자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내한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또 다른 무엇이 있는것 아닌가'라는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양산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기자회견장에서 굳이 삼성SDI를 A사로, 중국 ATL을 B사로 지칭하기도 했다.

4. 시간이 오래걸린 이유
결과만 보자면, 23일 기자회견에서 밝혀진 내용은 지난해 1차 발표와 내용이 다르지 않다. 삼성SDI와 중국 ATL 배터리의 문제가 제각각이라는 점이 밝혀진 부분은 성과다. 다만 외부기관이 집중적으로 검증했다는 점을 비롯해 8단계에 이르는 방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는 후속조치를 차치해도 '발화의 원인' 그 자체에만 집중하면, 1차 발표와 달라진 것은 없다. 시간이 오래 필요했을까. 물론 20만대에 달하는 기기를 직접 구동시켜 테스트하는 등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결론 자체는 허망해서 문제다.

5. 중국시장은 더 어려워진다?
최초 삼성전자는 중국 ATL 배터리를 탑재한 갤럭시노트7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성급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2차 리콜 전 중국향 갤럭시노트7에서 발화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무시했던 역사도 있는데, 블랙컨슈머의 소행으로 밝혀지기는 했으나 브랜드 이미지 자체에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1차 리콜 당시 "ATL은 문제가 없어, 그러니 중국은 리콜하지 않는다"는 성급한 결론이 삼성전자를 중국에서 더 멀어지게 할 전망이다.

고동진 사장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해 "삼성 브랜드를 아끼는 중국인들에게 진성있는 사과를 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6. 갤럭시S8 출시 늦어진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이 발화되어 단종되는 순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크게 주춤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갤럭시S8을 MWC 2017에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기회가 될까, 위기가 될까. 시장에서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는' 삼성전자의 행보에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장 자체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갤럭시S8의 등장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으나, 반면 '소비자 신뢰를 쌓는 것도 좋다'는 긍정론도 나온다. 인공지능 빅스비를 만날 시간을 다소 미뤄야겠다.

일각에서 갤럭시노트7의 경우 아이폰7을 의식해 출시를 서둘렀고, 이 과정에서 꼼꼼한 검수를 거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참고로 LG전자는 LG G6을 MWC 2017에서 공개한다.

7. 최순실 논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발화원인 발표 후 온라인에서는 어떤 반응일까. 삼성전자를 '순실전자'로 칭하거나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라는 격한 단어도 보인다.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해 광범위하게 퍼진 반삼성 기류가 원인으로 보인다. 가치판단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러한 접근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