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3일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갤럭시노트7 발화원인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제품 20만대, 배터리 3만대를 확보해 대규모 충방전 실험을 실시한 결과 자체 배터리 결함이 원인으로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1차 제품에 사용된 삼성SDI의 배터리와 2차 제품에 사용된 중국 ATL의 배터리에서 각각의 문제가 파악되었으며, 추후 재발방지를 위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발화의 원인이 배터리로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업체에 법적인 대응 등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노트7 발화의 진범은 배터리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장(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갤럭시노트7 발화에 따른 단종으로 고객 및 통신 사업자, 유통 및 거래선과 모든 협력업체에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하는 한편 모든 역량을 동원해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19일 출시 후 고작 2주일만에 1차 리콜을 선언했던 뼈 아픈 과거를 반성하는 한편, 96%에 달하는 회수율을 공개하며 갤럭시S8의 상승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갤럭시노트7의 발화 원인은 지난해 1차 발표와 마찬가지로 배터리 결함에 따른 발화로 드러났다. 고동진 사장은 "원점에서 총체적 검수를 실시했다"며 "20만대의 갤럭시노트7과 배터리 3만개를 통해 충방전 실험을 거듭한 결과 자체 배터리 결함이 원인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했던 하드웨어 설계 및 홍채인식기술 등의 탑재, 서든파티 앱 호환성 및 정전기 테스트, 기타 다양한 소프트웨어 의혹을 일축하며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배터리'라고 짚어낸 셈이다.

지난해 1차 발표에서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체 성급하게 배터리 문제로 가닥을 잡아 단종이라는 파국을 불러온 쓰라린 추억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삼성전자는 입장자료를 통해 방수 및 방진 기능에 따른 발화설을 부정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해당 검사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고동진 사장은 "다른 지점에서 어떠한 오류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서 결국 배터리에 집중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배터리 분석 결과 리톤 이윰 배터리 양극판과 음극판을 분리하는 분리막이 손상되어 음극과 양극이 만나 발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고동진 사장은 "A 배터리(삼성SDI)와 B 배터리(중국 ATL)에 각각의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최초 문제가 발생한 갤럭시노트7에는 삼성SDI의 배터리가 들어갔으며, 이후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출시된 갤럭시노트7에 들어간 ATL의 배터리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삼성SDI의 배터리 탑재를 중지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 ATL의 배터리도 문제가 발생해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결국 '양 쪽 모두 문제가 있었다'는 고백이다.

여기에서 외부평가기관으로 갤럭시노트7 문제를 파헤친 사지브 지수다스 (Sajeev Jesudas) UL 컨슈머비즈니스 부문 사장이 나섰다. 사지브 지수다스 사장에 따르면 삼성SDI 배터리의 경우 배터리 위쪽 코너에 눌림 현상과 얇은 분리막에 따라 배터리 내부 단락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 ATL 배터리에 대해서는 비정상 융착돌기, 절연테이프 미부착, 얇은 분리막의 조합이 배터리 내부에서 단락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분석했다.

케빈 화이트 (Kevin White) Exponent의 수석 연구원도 비슷한 결론이다. 삼성SDI 배터리는 음극탭 부위 젤리롤 코너의 눌림 현상을 소손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으며, 중국ATL 배터리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융착 돌기와 그로 인한 절연 테이프와 분리막 파손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삼성SDI 배터리의 경우 음극탭 부위의 젤리롤 코너가 물리적으로 휘어진 상태였으며 중국 ATL 배터리는 융착돌기 및 절연테이프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러한 리스크가 얇은 분리막의 붕괴로 이어져 양극과 음극의 만남을 유도, 갤럭시노트7이 발화됐다는 결론이다. 두 회사 제품 모두 각각의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검인증 기관 TÜV 라인란드는 배터리 물류 시스템과 폰 조립 공정 운영 상의 배터리 안전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나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 안정성 실험. 출처=삼성전자

강력한 후속대책
고동진 사장은 갤럭시노트7 발화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안정성을 최우선에 둔 로드맵을 중심으로 비슷한 사고의 재연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터리의 안전과 내구성을 검사하는 주기와 횟수를 확대하는 안정성 검사와 배터리 외관의 이상여부를 표준 견본과 비교 평가하는 배터리 외관 검사, 배터리 내부의 극판 눌림 등을 사전에 발견하는 X-레이 검사, 배터리 누액이 발생할 경우 이를 감지해 내는 TVOC(Total Volatile Organic Compound) 검사 상온에서 배터리 전압의 변화가 있는 지를 확인하는 ΔOCV(Delta Open Circuit Voltage), 완제품을 대상으로 소비자 조건에서 충전과 방전을 방본적으로 시험하는 충방전 검사, 소비자 사용 환경에 맞춰 집중 검사인 사용자 조건 가속 시험 검사를 제품 출고 전 실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소위 8단계 안정성 검사다. 이를 위해 고동진 사장은 "갤럭시S8의 MWC 2017 공개를 미룰정도로 안정성 확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차기 프리미엄 라인업의 브랜드 가치를 확실하게 잡아내기 위해 출시일을 미루는 초강수를 선택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캠브리지대학교 클레어 그레이 (Clare Grey) 박사, 버클리대학교 거브랜드 시더 (Gerbrand Ceder) 박사, 스탠포드대학교 이 추이 (Yi Cui) 박사, 아마즈 테크컨설팅 CEO 토루 아마즈쓰미 (Toru Amazutsumi) 박사 등 리튬 이온 배터리 관련 전문가들을 자문단으로 위촉해 다중 안전 설계와 검증 프로세스 등을 탄탄하게 꾸린다는 뜻도 밝혔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관련 단체에 무상으로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고동진 사장은 "혁신적인 노트7을 만들기 위해서 배터리 사양에 대한 목표를 제시했고, 배터리 설계와 제조 공정 상의 문제점을 제품 출시 전에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경영 전반에 걸쳐 품질 최우선의 경영 체제를 강화해 제품 안전성에 있어서도 새로운 혁신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출처=삼성전자

의문은 남는다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이 배터리로 좁혀지며 관련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은 여럿 포착된다. 먼저 에너지 밀도다. 삼성전자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발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더 얇은 배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무리한 에너지 밀도가 발화의 원인 중 하나라는 의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갤럭시노트7 발화의 핵심인 배터리 제조 업체에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입장도 미묘하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발화 사건으로 갤럭시 브랜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으며, 막대한 유무형의 피해를 입은 상태다.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 IM부문이 영업이익 1000억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은 배경에는 이러한 리스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고동진 사장은 "갤럭시노트의 경우 1000개의 부품이, 범위를 좁혀도 400개의 부품이 들어가며 이를 수급하려면 450개의 1차 협력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협력사들과 많은 일을 했으며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전망인 가운데 최종적으로 배터리 문제를 검수하지 못한 삼성전자의 책임이 제일 크기 때문에 따로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리하자면 협력사의 잘못은 확실하고 갤럭시노트7 자체의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의 협력관계와 최종 결과물의 책임은 삼성전자가 오롯이 감내하겠다는 뜻이다. 그 뜻은 고귀하지만,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의 지나친 저자세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러한 논란을 감수하면서 '내 탓이오'를 자처하는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배터리 외 문제 가능성을 일축한 대목과 '아이폰7을 의식해 무리한 출시 일정으로 화를 자처했다'는 지적에 대해 고동진 사장은 "모두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갤럭시S8을 비롯해 '하반기 새로운 갤럭시노트 시리즈에 대한 고객들의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700명의 연구원들이 열심히 연구에 매진했다"며 "각오를 다지며 주말없이 일해온 결실을 믿어달라"는 다소 서정적인 답변을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