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의 시대> 김진영 지음, 영인미디어 펴냄

격(格)의 시대가 무엇인지 저자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나무를 잘라 목재로 만들거나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파는 시대가 양(量)의 시대라면, 그 목재에 불경이나 성경을 새겨 넣거나 그릇에 음식을 담아 파는 시대가 질(質)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격의 시대는 같은 불경 중에서도 팔만대장경, 음식에서 ‘불도장’ 같은 엄청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불도장(佛跳牆)은 30가지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 중국의 최고급 보양 음식으로, 음식 향기를 맡은 승려가 참선을 포기하고 담장을 넘는다는 뜻을 지녔다.

저자는 산업의 발전으로 우리는 양의 시대, 질의 시대를 거쳐 격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격’은 금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쟁우위의 원천이자 창조사회의 도래와 함께 고상하고 수준 높은 취향과 품격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더욱이 격은 단기간에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랜 기간 일상생활에서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형성되기 때문에 모방이 불가능하므로 더욱 차별적인 경쟁우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에 격을 느끼는가? 첫 번째는 ‘숙성 시간’이다. ‘혼이 있는’ 숙성 시간의 차이는 똑같은 재료나 소재로 치장을 하더라도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격이 만들어진다. 두 번째는 ‘태도’다.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격이 다른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의 태도 즉 태도에서 나타나는 자신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절제된 행위’로 달리 표현하면 ‘센스’다. 같은 곳에서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격이 달라진다.

저자는 격을 만들어내기 위한 요건들을 제시한다. ‘격’은 인간, 시간, 공간이라는 3간에서 발생하므로 공간 디자인에 빛, 소리, 공기(향기)까지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인 조화로 다차원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보아도 격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경쟁우위이자 차별전략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격은 우직함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평소 습관 등 장기적인 축적이 중요하다. 작은 부분까지 철저하게 챙기는 섬세함도 격의 필수 요건이다.

책에는 호텔이나 병원뿐만 아니라 자동차, 책방, 옷집, 카페, 빌딩관리, 쇼핑센터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격’을 보여주는 창조적 혁신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병원 환자식은 원래 맛이 없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환자 스스로 ‘치료의 일환’이라는 이유로 맛없는 환자식을 용인할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도쿄 인근 가메다 병원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 측은 ‘환자는 원래 입맛이 없기 마련이라서 일반식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병원에서는 환자식으로 모두 16가지의 메뉴가 번갈아가며 제공된다. 이 병원의 서비스는 호텔 수준을 넘어서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국숫집 ‘오와리야’는 일반 소바집들이 상상 못 할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최고의 질과 맛이 비해 가격이 저렴하여 매출 대비 이익이 몇 %에 지나지 않는다. 고객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박리다매의 경영철학, 오와리야가 550년간 장수한 비결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흥미로운 혁신의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의 다채로운 현장경험이 녹아 있어 설득력이 있다. 어떠한 현업에 있든 현실 속에서 적용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