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지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순실-박근혜 대통령(직무정지)으로 이어지는 뇌물죄 성립 로드맵을 밟아가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용 부회장을 노린 셈이다.

당장 삼성은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 등 핵심인력에 대한 불구속 기소에는 한 숨을 돌리면서도 이건희 회장 와병 후 경영일선에 나서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조치에는 반발하고 있다. 이에 삼성은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며 “특히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은 대가성이 없었으며, 지원금은 권력의 요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논리다. 특히 후자에 시선이 집중된다. 정경유착의 오래된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엄중한 시대정신을 따라야 한다는 전제로, 비슷한 비극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왕자표 고무신의 신화 국제그룹 해체사건이 최근 재계에서 회자되는 이유다. 1981년 국산 신발 브랜드인 ‘프로스펙스(PRO-SPECS)’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던 국제그룹은 1980년대 21개 계열사를 두며 재계 서열 7위에 올랐으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국제그룹 정상화 방안’을 통해 사실상 해체한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무리한 기업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 등이 거론됐지만 그 이면에는 양정모 회장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전두환 정부의 정치 지원금 모금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미운살이 박힌 상태에서 그룹 해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논리. 1993년 7월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정부가 국제그룹 해체를 지시한 것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주기도 했다.

모두 정경유착의 질긴 고리가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21세기 대한민국도 아직 과거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정경유착의 끈적한 싸움터에서 우위에 선 것은 대부분 정치권력이였으며, 언제든지 비극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삼성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엄정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국제그룹 비극의 재연도 21세기 비선실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