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견기업 및 스타트업, 벤처기업은 애증의 관계다. 동일한 시장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냉혹한 게임의 플레이어지만 한편으로는 상생의 가능성을 찾기도 하며, 때로 창조경제로 대표되는 관 주도의 국정철학에 기대어 어색하게 손을 맞잡은체 화합을 강제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알고있다. 누구나 대기업이 될 수 있고 기업의 사이즈가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 및 스타트업, 벤처기업의 애증은 때로 격렬한 파열음을 일으키며 심각한 후폭풍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안다. 그 전쟁의 끝에는 승자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것을 잃은 중견기업의 눈물만 가득하다는 것을.

노조파괴가 연상된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 사측의 부당한 조치에 반발해도 그 법리적 판단과는 별개로 사측은 가혹한 인사조치와 무지막지한 소송전으로 노동자의 정신과 가족을 파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피해자는 언제나 힘없는 자다.

▲ 출처=옐로모바일

지식재산권 문제, 뜨거운 감자
대기업과 중견기업 및 스타트업, 벤처기업의 충돌은 계약 및 수주, 기타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질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이 화두로 부상해 눈길을 끈다.

당연히 대기업의 특허 침해 사례가 심각하다. 특허청이 실시한 국내 지식재산권 분쟁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지식재산권 분쟁의 최대 피해자는 중소기업으로 알려졌다. 지식재산권 분쟁 370건 가운데 무려 65.1%가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벤처기업의 피해사례로 알려졌다. 지식재산권 침해 비율 자체가 2012년 4.3%, 2013년 5.6%, 2014년 6.0%, 2015년 5.7%로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민사소송의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현황은 어떨까. 일단 대기업의 경우 특허 침해 사례가 감지되면, 정식 공문을 보내거나 경고문을 보내는 것으로 상호 합의를 도출하는 경우가 73.3%에 달했다. 다만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의 대다수는 소송이나 법률 기관의 구제 이전에는 실질적인 침해 행위를 중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에는 자사가 기존에 보유한 브랜드나 상표권에 대해 타 브랜드가 베끼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보전 성격의 분쟁이 다수였으며, 벤처 기업으로 갈수록 독자적인 기술에 대해 직접 침해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식재산권 분쟁이 벌어지는 순간, 중소 및 벤처와 스타트업이 상대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는 대목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이 경험한 지식재산권 분쟁 370건 중 중소 및 벤처기업이 지재권을 침해당한 사건이 241건으로 65.1%에 달했으며, 대기업은 25건 으로 6.8%에 불과했다. 피해규모도 차이가 난다. 손실액 평균으로 중소기업은 4억4600만원, 벤처기업은 1억4900만원으로 높게 나타난 데 비해 대기업은 600만원에 불과했다. 당연히 중소 및 벤처, 스타트업은 심각한 매출저하를 겪기도 한다.

분쟁이 장기화되는 부분도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소 및 벤처기업, 스타트업은 지식재산권 분쟁이 소송까지 연결되는 경우가 최대 60%에 달하는 등 해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대기업은 경고장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비율이 73.7%에 달했다.

결론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지식재산권 분쟁은 법적인 판단을 차치해도 '필연적으로 대기업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분쟁의 장기화 및 이에 따른 피해의 크기가 중소기업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대목도 문제다. 이는 역으로 대기업 입장에서 '한 번 해볼만한 분쟁'으로 여겨진다.

▲ 지식재산권 침해 비율. 출처=통계청

문제해결의 방법은 없나
해석하기에 따라 대기업의 갑질이 법적인 테두리 내부에서 횡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해결의 방법은 없을까. 국회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이현재 의원은 특허청 국정감사를 통해 “중소기업은 특허 관리의 전문성과 자금력이 열악해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 피해 소송을 제기해도 승소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특허침해 소송에서 유전승소, 무전패소의 규칙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16년 6월부터 시행된 개정 특허법도 의미가 있다. 이에 따르면 침해와 손해액 입증에 필요한 증거는 당사자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라도 열람 제한을 조건으로 제출을 강제할 수 있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용할 시, 올 4월부터 최대 4년 이하의 형을 가중할 수 있게 된다. 특허청 박성준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이번 법개정을 통해 지식재산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벤처 창업과 창조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처가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지는 미지수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도 '동등한 전사의 싸움이다'고 주장하면 딱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식재산권 분쟁의 특성상 힘의 우위는 처음부터 대기업이 점하고 있다. 일각에서 사측의 노조파괴와 대기업의 횡포를 동일선상에 두는 이유다.

최근에도 이러한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옐로모바일 쿠차와 버즈빌의 분쟁이 대표적이다. 형사소송과 특허심판원을 종횡무진하며 진검승부를 벌였던 양사가 최근 상대를 향한 공세의 수위를 바짝 끌어올려 눈길을 끈다.

논란의 핵심은 슬라이드 리워드 비즈니스 모델의 원천기술이다. 최초 분쟁이 불거졌을 당시 버즈빌은 쿠차가 자사와 협력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다가 돌연 협상을 중단, 버즈빌의 기술을 대부분 차용한 쿠차 슬라이드를 런칭했다고 주장했다. 버즈빌이 잠금화면 서비스 출시 초기인 2013년 4월 '어플리케이션 잠금화면을 탑재하여 광고 및 컨텐츠를 노출하고 리워드를 생성 및 앱 내 사용을 가능케 하는 광고 모듈 삽입형의 잠금화면 광고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상태에서 쿠차의 쿠차 슬라이드는 이를 온전히 카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옐로모바일의 쿠차는 발끈했다. 쿠차는 당시 쿠차 슬라이드의 기술을 두고 버즈빌의 기술이 아니라 NBT의 캐시 슬라이드 기술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캐시 슬라이드의 기술은 오픈소스로 풀려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후 양사는 몇차례의 변곡점을 돌았다. 지난해 10월 버즈빌이 검찰에 제기한 특허침해 고소 사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기각되며 쿠차가 웃었으나, 11월에는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는 쿠차가 버즈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심결이 나왔으며 지난 16일에는 특허심판원이 쿠차슬라이드 서비스가 버즈빌 특허의 모든 구성요소를 그대로 실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실시 형태도 동일하기 때문에, 쿠차가 버즈빌 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하는 발명을 실시하고 있다고 판결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쿠차는 검찰의 불구속 기소를 이유로 '의미가 없다'고 재반격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양쪽의 주장을 따져보는 것에서 풀어갈 수 있다. 먼저 오픈소스로 풀려있는 캐시 슬라이드의 기술을 차용했기 때문에 버즈빌의 원천기술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쿠차의 주장. 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캐시 슬라이드의 기술이 오픈소스로 풀렸다는 주장은 오로지 쿠차의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아가 캐시 슬라이드와 버즈빌의 기술도 엄연히 다르다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버즈빌 기술은 잠금화면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잠금화면 앱이 아닌 앱을 버즈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SDK와 연동하는 방식”이라며 “반면 캐시 슬라이드는 그 자체로 잠금화면 앱”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캐시 슬라이드의 기술이 원천기술이라는 주장과, 이를 활용한 버즈빌의 기술을 활용한 것이 문제없다는 쿠차의 논리는 무너진다. 이에 쿠차가 소속된 옐로모바일은 "논란 초기 캐시 슬라이드 이야기를 한 것은 일종의 예시를 들었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쿠차는 입장자료를 통해 검찰의 불구속 기소를 들어가며 법적 공방을 예고하는데 그쳤다.

여기에서 쿠차 슬라이드가 버즈빌의 방식을 온전히 카피했다는 주장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슬라이드 비즈니스 모델의 3개 특성을 앱, 광고, 리워드로 분류하면 쿠차 슬라이드는 버즈빌 서비스의 대부분을 카피했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지식재산권 분쟁의 특성상 아직 명확한 시시비비는 가려지지 않았다. 쿠차의 주장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충분히 있다. 최근 SK테크엑스와 모 스타트업 분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분쟁의 특징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계열사의 숫자와 임직원 인프라, 상장까지 준비하는 옐로모바일은 이미 대기업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거운 얼라이언스의 그림자'는 스타트업 버즈빌의 존재감을 충분히 압도한다. 싸움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이미 기세가 눌리는 상황에서, 버즈빌이 온전히 버티기나 할까? 업계의 관심은 양사의 분쟁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명확한 힘의 차이를 실감하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