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개그맨 박명수는 지난 2011년 10월 아내 명의로 성신여대입구역 부근 건물을 29억원에 매입했다. 다음 해인 2012년 스타벅스가 건물 전층을 임대해 입점한 이후, 2013년 건물을 매각할 때는 46억6000만원을 받아 박 씨 부부는 2년도 안돼 17억6000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대로변도 아닌 대학가 이면도로에 위치한 대지 177㎡, 연면적 474㎡,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중소형 건물이 스타벅스라는 우량 임차인을 맞자 가치가 치솟았던 것. 입주 당시 스타벅스는 2019년 4월을 만기로 7년간 계약했다.

이처럼 건물의 가치를 올려주고 임대 수익까지 견조하게 지켜주는 우량 임차인을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 또는 ‘키 테넌트(Key Tenant)’고 한다. 앵커는 ‘닻’을 의미하며, 테넌트는 임대계약을 맺고 입점해 영업을 하는 임차인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업종과 업태에 따라 앵커 테넌트와 일반 테넌트로 분류하고 있다.

 

상권의 ‘닻’을 올리는 임차인

앵커 테넌트는 집객능력이 있는 큰 규모의 입주업체다. 이들은 자신들이 위치한 쇼핑센터나 상권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 지역 상권이나 대형 쇼핑몰의 대표적인 앵커 테넌트는 백화점이나 대규모 할인점, 영화관, 아쿠아리움 등이다.

또한 앞서의 사례처럼 매각 시 건물 가격을 대폭 올려놓기도 한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삼성에버랜드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입점한 부지면적 670㎡ 빌딩이 1050억원에 팔려 3.3㎡당 가격은 5억1724만원으로 서울 빌딩 매매 사례 중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빌딩에는 이전 소유주가 운영한 뉴욕제과가 2012년 폐점한 이후 ‘에잇세컨즈’가 1~4층에 입점해 현재는 젊은이들에게 ‘강남역 에잇세컨즈’ 건물로 불리고 있다.

이달 초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ZARA)'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이 다른 SPA 경쟁 브랜드인 H&M이 10년 장기로 전층 임대 중인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5층짜리 건물을 325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상무는 앵커 테넌트가 단순히 건물을 크게 쓰는 임차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건물주가 이들을 반길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고 했다.

그는 “상업시설의 경우 임대료의 층별 편차가 심하다. 현재 강남역, 명동 등의 상업용 건물에서 2층은 1층의 층만 30% 수준, 3·4층은 20% 수준 등의 임대료를 측정하는데 앵커 테넌트가 크게 수익이 나지 않는 고층까지 전층을 임대해 쓰게 되면 공실이나 임대료 불안정성도 해소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대형 브랜드 임차인의 경우 큰 면적을 쓰면서 인테리어 공사 등도 자체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이 크므로 임대 기간이 비교적 장기간인 것도 장점이다. 서울의 경우 앵커 테넌트들은 기본 5년 이상부터 보통의 경우 10년 계약으로 입주한다.

 

“스타필드 하남은 ‘걸그룹’이다”… 앵커 테넌트의 진화

이 때문에 기존의 상업 건물은 물론이고 새롭게 개발하는 상업 시설의 경우 앵커 테넌트의 유무가 초기 상권과 경제성을 좌우한다. 실제로 이들은 시설의 임대료와 분양가에도 영향을 주고 후속 임차인의 질을 결정한다. 최근 개발되는 대형 복합 쇼핑몰은 개발 단계부터 엥커 테넌트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박태원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쇠퇴한 상권일수록 집객력을 가진 앵커 테넌트의 역할이 극대화된다”며 “예컨대 강남 센트럴시티 지하상가의 식음시설 ‘파미에스테이션’이 ‘소매 미식 특화’ 전략으로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파미에스테이션은 일본, 태국, 멕시코 등 10여개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20여개 맛집이 모여있는 공간으로 이색 맛집으로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약 100만 명의 유동인구가 유입되고 있다.

그는 신세계가 개발·운영하는 '스타필드 하남’의 예를 들면서 "단순히 앵커 테넌트를 구분할 수 없는 더욱 진화한 형태의 시설"이라고 평했다. 박 교수는 “이 대형 쇼핑몰은 마치 각각의 개성이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룬 ‘걸그룹’과 같다”고 비유했다. “과거 쇼핑몰들이 명품관, 영화관, 호텔 등의 일정한 앵커 테넌트를 가지고 집객력을 모은 반면 신세계 스타필드 하남은 다양한 고객 타겟을 겨냥하는 다극화된 앵커급 테넌트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뜨는 앵커 지는 앵커'

앵커 테넌트는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한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에는 영화관 아쿠아리움이, 1990년대 말까지 TGIF, 베니건스,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등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그 역할을 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유니클로, 자라,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가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뜨고 있는 앵커 테넌트로 유명 식음료 매장과 대형 서점을 꼽으면서 반면 지점 수가 크게 늘어 희소가치가 옅어진 대형 커피전문점이나 IT기술의 발달로 지점들을 축소하고 있는 은행 등은 앵커 테넌트의 역할을 잃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 대형 서점이 앵커 테넌트로 떠올랐다. 대우건설이 분양하는 합정역 ‘딜라이트 스퀘어’ 상가는 교보문고 입점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 4월경 교보문고는 약 2400평(전용) 규모로 입점할 예정이다. 대우건설 측은 서점의 일부 면적은 책과 어울리는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매력적인 복합공간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점의 지역 상권의 ‘앵커’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다. 인터넷 서점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서점은 사양업종이 됐다. 불과 10년 사이에 만여 곳의 서점이 문을 닫았는데도 도쿄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은 전세계적으로도 인기있는 장소 중 한 곳이 된 것은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상무는 “츠타야 서점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겨우 문구류 등을 같이 파는 것에서 더 적극적으로 문화와 생활 관련 제품을 책과 함께 배치해 라이프 스타일 편집샨샵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신종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앵커 테넌트는 건물주나 시설 운영자 입자에서 수익성이 특별히 높은 임차인이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중요한 임차인이다. 상업 시설이 아닌 오피스 빌딩의 경우에도 이미 입주한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앵커 테넌트로서 다른 임차 기업을 유치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새롭게 앵커 테넌트 역할을 하고 있는 대형 서점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만나고 문화를 즐기고 시간으로 보내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크게 인정받는 것이다.

신 교수는 “대형 쇼핑몰이 아닌 가두 점포 위주인 상권들에서는 대기업 브랜드의 플래그샵이 앵커 테넌트 역할을 하는데, 임차기업들도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큰 면적의 대형 플래그샵 매장을 빌려 영업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