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이자 사진강사이다. 좋아하던 모형을 찍으려고 아버지의 카메라를 빌려 사용했다가 카메라라는 기계장치에 매료되어 결국 전공을 했다. 사진은 카메라와 작가의 협업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면서 아마추어 사진가의 전시를 기획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가져온 시각문화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사람과 카메라의 작품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일 수 있지만 사진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한 것은 카메라이다. 최종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람은 점 하나도 직접 찍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단지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카메라에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자 내가 여기까지 데려다 주었으니 이제 네가 멋진 그림을 그려 내놔 보거라’라는 듯이 말이다. 명령을 받은 카메라는 초점을 맞추어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고, 셔터와 조리개를 움직여서 적당한 분위기가 나도록 만든다. 그리고 제조사가 만들어 넣은 센서의 성능에 따라 깊은 계조와 색상을 입힌다. 그것을 우리는 그것을 그림이라고 하지 않고 사진이라고 부른다. 사진은 찍으라고 명령한 사람과 그 명령을 수행한 카메라의 협업 즉 컬래버레이션과 같다.

최초의 카메라는 꽤 오래 전에 이미 쓰이고 있었다.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가 그것이다. 르네상스 이후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한 그림들이 지속적으로 그려져 왔다. 19세기에 이르러 화학기술이 발전되어 보이기만 했지 사라지고 없어졌던 이미지를 유리판에 고정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 최초의 사진이다. 단순하게 보면 카메라는 결국 ‘빛을 받아들이는 어두운 상자 안에 그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기능이 달린 검은 상자’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포획’하는 데 성공한 이후 사진은 카메라의 발전과 더불어 시각적인 확장을 키워나갔다.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고 이름 붙여진 19세기 사진처리 방식의 노출시간은 대낮에도 4~5분에 이르렀다(지금은 ND필터라는 필터를 써야만 낮에도 찍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어두운 방’에 렌즈가 끼워지면서 더 선명해지고 노출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긴 시간 때문에 움직이는 대상을 찍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1839년 제작한 다게레오타입 카메라(출처 : 위키피디아)

그 카메라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당시에 찍을 수 없었던 순간포착은 19세기 후반에 성공했고 20세기에 이르러 컬러 필름이 발명되었다. 컬러사진을 찍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른 세상을 컬러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970년대에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오늘날까지 오게 되면서 지금은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라이카 카메라는 집 한 채 값이었다지만 지금은 라이카가 아니더라도(물론 라이카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산되지는 사진의 양은 이제 누구도 집계할 수 없게 되었다. 지구상의 사람의 수보다 사진의 수가 훨씬 많아진 것이다.

신문에 실린 보도사진, 블로그의 여행사진, 학술적으로 쓰인 사진, 과학자에 의한 과학 사진, 잡지의 광고사진, 그리고 예술사진까지 모든 사진들이 찍은 사람의 온전한 능력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사진은 카메라가 가진 힘에 의존하고 있다. 사진은 카메라라고 하는 기계장치가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사진 한 장에는 찍은 사람의 의지뿐 아니라 카메라 기술의 발전에 공을 들인 사람들의 의지도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고 쓰여 있다. 카메라에 빗대어 보자면 ‘사람은 카메라를 만들었고 카메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카메라가 인공지능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그녀의 저서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1977)에서 ‘이미지의 생태학’의 필요성을 말한 지 40년이 지났다. 오늘날 사진은 마치 아마존 유역의 빼곡한 식물 같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정작 그 식물들을 분류하고 연구하는 생태학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관심이 많지 않은 것도 있겠고 카메라가 가져온 인간 생활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진은 아마존의 식물이 아니라 후덥지근한 공기 같다는 생각도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