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및 전자업계 시장을 관통하는 중국의 존재감은 오성홍기의 붉은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는 극적인 장면으로 연출된다. 정부의 공격적인 육성정책과 민간 중심의 생태계 구성, 나아가 풍부한 내수시장과 재기발랄한 투자 플랫폼은 그 자체로 중화제일주의의 완성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실용주의(實用主義), 그리고 관 주도의 민간 생태계

현재 ICT 및 전자 시장에서 중국이 보여주는 기본적인 스탠스는 실용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정부의 힘으로 이견의 여지가 없는 권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민간 플랫폼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중국이 과거 역사를 보면 이러한 실용주의를 가장 극대화시킨 시절이 종종 있었다. 다만 송나라의 무역제일주의와 당나라의 국제정치주의도 훌륭한 사례지만, 역시 삼국지의 영웅들이 난립하던 후한시대를 빼먹을 수 없다. 바로 간웅 조조가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이다.

2006년 리 아오가 쓴 <조조의 윈윈경영>은 일세의 영웅으로 난세를 풍미했던 조조의 경영철학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실용주의적 측면이 눈길을 끈다.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나 허례허식을 증오했으며, 인재를 포용하는 데 있어 출신가문을 고려하지 않고 능력 위주로 선발했다. 심지어 한때 적이었던 사람도 인재라고 판명되면 과감하게 기용하는 것이 조조 경영의 핵심이다.

그중에서 진시황과 한무제가 올랐던 갈석산에 올랐던 조조의 일화는 그의 실용주의적 측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과 흉노족을 몰아낸 대업을 완수한 한무제는 각각 기원전 215년과 기원전 110년 갈석산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며 신선이 되기를 희망했으나, 조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원소를 몰아내고 하북을 통일한 상태에서 갈석산에 올라 하늘에 예를 갖추며 자신을 진시황과 한무제의 반열에 올리는 영리한 마케팅 전술을 보여줬지만, 불로불사의 신선이 되기를 희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인 조조에 있어 신선은 바람에 휘날리는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그가 갈석산에 남긴 ‘관창해’의 숨은 뜻이기도 하다.

현재의 중국은 후한의 조조와 닮았다. 위대한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깃발을 들면서도 결코 현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강력한 사회 장악력과 집단지도체제는 스스로를 절대적 지위로 격상시켜 ‘구름 위에서 노니는 신선’이 아니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러한 자신감이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러에코, 비보, 오포, 화웨이, 샤오미 등을 품어낸 중국의 진짜 실력이다. 막강한 권력을 철저하게 민간에 집중시켜도 순기능만 발생하는 일사분란한 사회 인프라. 21세기 비선실세와 개헌정국 논란에 휘말린 대한민국의 경제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도 강력한 국가지도체제가 나서 민간에 자신 있게 개입, 필요 없는 규제 따위 팍팍 풀어버리고 철저하게 판을 깔아줬으면.’

자신감 넘치는 21세기 중국의 쇄국정책

지난 2015년 중국에서 열린 제2회 세계인터넷대회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아젠다를 다수 남겨 눈길을 끌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이 “현재의 사이버공간을 지배하는 규칙은 대다수 국가의 의도와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터넷 국제규칙 제정을 희망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인터넷 주권’을 한 국가가 스스로 사이버공간에서 나아갈 방향과 규제의 범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한 셈이다. 이는 인터넷 시대의 규제를 정당화하는 방법론이다.

놀라운 것은 대형 중국 인터넷 사업자들의 동조다. 세계인터넷대회에 참석한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우리가 인터넷의 발전경로에 체계적인 지배구조 체제를 적용하지 않으면 인류에 큰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현재 중국에서 목격되는 다수 인터넷 기업의 등장과 수많은 혁신은 국가의 관리가 반드시 혁신을 옥죄는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도 “세계 사이버공간의 지배구조에는 현재 아무런 국제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사이버공간의 국제규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강력한 ICT 육성정책을 펴면서 철저한 규제 일변도로 나서는 아이러니한 장면을 묘사한 극적인 장면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파괴적인 역량을 집중해 ICT 및 전자시장의 부흥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상회하는 무거운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중국의 천안문 민주화 요구 시위 27주년인 지난 2016년 6월 4일을 앞둔 2일, 중국이 텀블러의 차단을 실시하는 한편 관련 SNS 계정의 검열에 착수한 배경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강력한 규제 및 보안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테크크런치>는 중국 정부가 현지에서 ICT 사업을 할 경우 데이터를 반드시 중국에 저장해야 하며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 실명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등록하도록 하는 등 더욱 까다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도 마찬가지다. 내부 검열 방침에 따라 특정 키워드가 막히는 경우가 다반사며, 그런 이유로 웨이보를 통해 통용되는 콘텐츠를 보면 중국 당국의 복심을 읽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얀마 내 중국계 소수민족 반군인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의 자치 요구를 주장하는 웨이보 공식계정이 여전히 활동하는 것을 두고 중국 정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이유다.

중국 정부의 빅브라더 시도도 눈길을 끈다. 금융정보 및 대중교통 이용현황, 심지어 SNS의 개인적 멘트를 모아 사회적 신용평가점수를 매기는 것이 골자다. 현재 중국 항저우에서 시범운영되고 있으며, 이렇게 모인 사회적 신용평가점수는 취업 및 여행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누구보다 강력한 ICT 발전을 꾀하는 중국이다. 하지만 강력한 규제로 그 이상의 체제 불안 가능성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매서운 칼날을 드리우는 중국이다. 우리는 로마제국의 전설이 다양한 생태계의 여러 객체들이 로마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알맞게 끓어올랐기에 가능했다고 배웠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부상을 바라보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배웠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픈소스의 위대함은 영원할 것으로 안다. 그런데 중국은 별나라에 있는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사정과, 비전과, 전후맥락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강력한 육성정책을 주도하며 그 과실을 철저하게 민간 중심 플랫폼에 밀어줄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글로벌 ICT 기업들의 공세를 막아내며 자국 기업을 육성하고, ‘화끈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체제의 기본적 본질에 접근할 경우. 최근에는 잠잠하지만 중국에서 종종 경제인 숙청 소식이 들리는 이유다.

중국의 한계도 있다

중국 ICT 존재감이 날카로워진 배경에는 중국과 시장, 그리고 기업의 삼위일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융합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매력적인 내수시장을 내세운 중국의 ‘배팅’도 과감하게 전개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자국 서비스를 막거나 일부 허용하면서도 강력한 규제를 덧대는 방법론이다.

자연스럽게 몸이 달아오른 글로벌 ICT 기업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철저히 따르며 일종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자기 검열이 가능한 페이스북을 개발한 마크 저커버그, 대규모 연구개발 단지의 중국 설립을 추구하는 애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상황에 따라 막대한 세금 및 규제를 통해 이들을 ‘조련’한다. 물론 내수시장을 매개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인, 콘텐츠와 플랫폼 융합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스킬’도 보여준다.

내수시장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 그리고 뛰어난 기업의 등장으로 중국 ICT 업계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 O2O 및 스타트업, 결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빅데이터 로드맵 등 연결고리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전기차 및 드론, 인공지능 등 그 영역도 다양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위일체의 핵심인 중국 정부의 의지가 ICT 발전을 위한 순수한 목적이라기보다, 일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말도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중산층이 많은 사회(샤오캉사회)를 구현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인 경제정책 골자며, 이는 결국 체제의 안정을 위한 집념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ICT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며,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ICT 발전 로드맵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중국은 글로벌 ICT 업계의 ‘뜨는 해’이자 삼위일체를 바탕으로 무서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위한 환경적 토대도 잘 구비되어 있으며 스펙트럼도 넓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ICT 발전의 과실을 일부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체제의 안정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분위기도 풍긴다. 그 가이드라인은 외국의 기준보다 더 까다롭고, 난해하다.

시간을 돌려 19세기 아편전쟁으로 가보자. 당시 아시아의 패자 청나라는 왜 영국군에게 대패했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시대를 읽지 못한 거인의 표정으로 스스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중국은 글로벌 ICT를 잘 알고 있으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내수시장 덕분에 협상의 우위에도 섰다. 하지만 스스로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청일전쟁 당시와 유사하다. 물론 지금의 중국은 당시의 청나라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폐쇄적이면서 영리한 21세기의 중국이 자신의 방식대로 패권주의를 중심에 두고 중화일통을 무난하게 끌고 갈 수 있을까? 영원한 의문점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