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스타터 크라우드펀딩으로 무려 402억원을 조달해 관심을 모았던 드론 스타트업인 릴리로보틱스가 폐업을 선언했다. 15일(현지시각) 포브스 등 외신은 이 소식을 전하며 약 6만개의 선주문을 받아 관심을 모았던 릴리로보틱스가 실제 제품도 양산하지 못하고 아예 문을 닫았다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검찰청이 허위 및 과장, 불공정 거래 혐의로 제소했다고 밝혔다.

▲ 출처=릴리로보틱스

릴리로보틱스, 시작과 끝
릴리로보틱스는 UC 버클리 출신 5명이 공동으로 설립한 업체로 셀카 촬영이 가능한 드론을 개발하는 곳이다. '던지면 뜨고, 촬영하는 드론'으로 유명했다. 리모컨을 사용하지 않아도 드론이 사용자를 따라오는 신선한 방식과 뛰어난 기술력으로 호평받기도 했다.

2015년 5월 유튜브에 제품 광고영상을 올려 많은 이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으며, 이후 전 미식축구 쿼터백인 존 몬타나, 스파크 캐피탈 등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기도 했다. 500대를 먼저 생산해 베타 테스트를 거치기도 했으며 액션캠 시장보다 펫, 즉 애완동물 촬영 시장을 노리는 영악한 스탠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 당시 2016년 2월 첫 제품이 출시된다고 홍보했으나 기대했던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최적화 과정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으나 자연스럽게 업계의 의구심이 커진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1년을 질질 끌던 릴리로보틱스는 결국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설비도 마련하지 못했고, 배송비 등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정식 개발 중단 선언은 12일(현지시각)이다.

릴리로보틱스는 '환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사태진화에 나섰지만 샌프란시스코 검찰청이 허위 및 과장, 불공정 거래 등의 혐의로 제소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줄소송의 가능성도 열려있다.

▲ 출처=릴리로보틱스

왜 무너졌을까?
릴리로보틱스의 비극은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퍼즐을 분리해 하나씩 살피면 사태의 근원적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먼저 크라우드펀딩의 구조적인 약점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바람이 불며 나름의 동력이 감지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신뢰'의 문제가 항상 화두였다. 크라우드펀딩 자체가 제품이 먼저 나온 상태에서 투자를 받는 구조가 아닌, 온디맨드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신뢰도를 참고로 펀딩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펀딩 플랫폼 입장에서 최대한 정교한 검수를 거쳐 기업을 선정한다고 해도 '틈'은 보이기 때문이다. 센트럴스탠더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0.8mm 스테인레스 팔찌로 무장한 스마트워치 생산을 목표로 킥스타터에서 야심차게 펀딩에 나서고 1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모으는데 성공했으나 제작 과정에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한 때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트리톤의 인공 아가미 호흡기도 크라우드펀딩의 대표적인 흑역사다. 산소통이 없어도 호흡기만 입에 물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제품이며 SADI 출신의 한국인 디자이너 연제변(Jeabyun Yeon) 씨가 개발에 참여해 더욱 큰 화제를 몰고온 바 있다. 인디고고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진행되었으며 레저는 물론 군사, 학술, 건설 등의 영역에서 일대파란을 예고했다.

▲ 출처=트리톤

하지만 현재 트리톤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품 개발이 요원한 상태에서 사실상 프로젝트가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사례를 무리하게 크라우드펀딩에 올려 씁쓸한 헤프닝의 역사만 남겼다.

이렇듯 찾아보면 크라우드펀딩의 부작용은 심심치않게 살펴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부가 직접 규제에 나선 사례도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개입이 대표적이다. FTC는 2012년 더포킹패스라는 회사를 설립해 '애틀랜틱시티에 운명의 날이 다가온다'는 보드게임을 만들어주겠다며 킥스타터에서 모금을 시작한 에릭 슈발리에에게 11만1793달러의 벌금을 매긴 바 있다. 에릭 슈발리에가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인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몇 차례의 변곡점을 거쳐 실제 보드게임이 구매자에게 제공되는 등 나름의 합의점을 찾았으나 소위 신용불량자가 된 에릭 슈발리에가 벌금을 낼 사정이 되지 못해 찝찝함을 남겼다.

먹튀에 대응하기 위해 펀딩 플랫폼이 기자에게 사건을 알아볼 것을 제안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14년 손바닥에 올라갈 수 있는 작은 드론을 만들겠다는 자노 프로젝트의 토킹 그룹이 2015년 11월 돌연 문을 닫아버리자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가 마크 해리스는 프리랜서 기자를 투입, 사건의 진상을 파헤진 일이 있었다.

펀딩 플랫폼의 문제도 있다. 아무리 좋은 기업을 소개해도 신뢰를 담보로 한 펀딩 플랫폼이 흔들리면 그 후폭풍은 기업과 구매자들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1호인 한국금융플랫폼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아직 크게 부각될만큼 이슈가 된 상태는 아니며,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의 진격이 막 시작된 국내에서는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여기서 릴리로보틱스의 문제로 돌아가, 그 비극의 역사를 '드론'이라는 아이템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크라우드펀딩의 문제이면서 드론 시장의 과열에 따른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먼저 릴리로보틱스의 태생적 한계다. 릴리로보틱스가 처음 대중에 공개되었을 무렵 드론의 발전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던지면 날아가는' 릴리로보틱스의 강점은 충분히 어필될 수 있었다. 그런데 DJI가 매빅프로 시리즈를 출시하며 1가구 1드론의 기조를 바탕으로 삼아 더욱 정교한 '트래킹 기술'을 공개하자 상황은 급변한다. 참고로 DJI는 지난해 3월 팬텀4를 발표하며 특정 피사체를 자동으로 추적하는 액티브 트랙 기능을 공개한 바 있으며 이후 매빅프로를 발표하며 단순히 따라가는 트랙킹이 아닌, 평행비행과 후진비행 등 액티브 트랙 기능을 추가해 외연을 크게 넓힌 바 있다.

▲ DJI 마빅.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릴리로보틱스의 강점을 현실적으로 체화한 DJI의 매빅프로는 대중의 시선을 화끈하게 사로잡았다. 결론적으로 각광받는 드론 시장의 쏠림현상이 벌어지며 DJI의 브랜드 가치를 내세운 매빅프로의 가능성이 예리해진 대목은, 분명 릴리로보틱스의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력의 간극이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시간을 두고 하나의 장점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스타트업의 비애다.

드론 시장 자체가 혹독한 검증의 시간을 겪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프랑스 드론의 자존심인 패럿이 매출 부진을 이유로 290명의 직원 중 3분의 1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에 돌입하기도 했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업의 중심을 산업용 드론으로 바꾸겠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액션캠의 대명사 고프로는 야심차게 카르마를 출시했으나 리콜 사태를 겪으며 주춤하기도 했다. 액션캠의 발전을 하늘, 즉 드론의 비전에서 찾았던 고프로의 위기다. 카르마 출시로 고프로는 인수합병 매물이 될 것이라는 업계의 비관적인 주장도 나온다. 여담이지만 구글도 프로젝트 타이탄 중지에 돌입했다.

드론 시장의 혹독한 검증이 스타트업의 위기로 번지며, 자연스럽게 크라우드펀딩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시도도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액션 캠 고프로를 장착할 수 있는 스마트 드론 헥소 플러스(Hexo+)는 130만 달러의 자금을 모았으나 이제는 사실상 폐업이다. 비행기형 FPV(First Person View)드론 '파워업 FPV'도 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출처=헥소

크라우드펀딩의 흑역사를 보면, 위기의 시장이 보인다
크라우드펀딩은 증권형의 발전으로 엄연한 수익 모델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어져 눈길을 끈다.

이런 상황에서 릴리로보틱스의 비극과 드론 시장의 가열, 이에 따른 풀뿌리 스타트업의 위기는 재미있는 키워드를 보여준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자금 모금을 일종의 온디맨드 사업의 연장선에서 살핀다면, 펀딩 플랫폼의 실패 사례가 혹독한 검증을 거치는 사업 아이템과 연결되는 부분이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해당 사업의 진출에 있어 고작 하나 정도의 강점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 혹독한 검증의 첫 타깃임도 확실하다. 펀딩 플랫폼의 실패는 곧 수요중심 관점에서 해당 시장의 위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척도라는 해석이다. 그 후폭풍은 스타트업에 먼저 닥쳐오는 법이다. 집단지성의 힘이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