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버지라면 어땠을까.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라면, 임기 절반을 넘긴 대통령의 출연 강요(?)를,  차기 정권의 실체가 가시화하지 않은 시점에, 돈 제공 사실이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받아들였을까.

그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하자마자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매출 300조원의 삼성그룹 총수 이 부회장이 구속 위기에 몰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면,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총수로서는 처음 구속된다.  삼성 내에선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짙게 깔리고 있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맞춰 하나씩 복기와 전망을 해보자.

사건의 본질이 뒤바뀌었나

첫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본질은 어디가고, 압박 받은 재벌총수의 구속 사태가 오게 됐을까.

경실련 활동을 하는 박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인의 대표 · 사업연수원 33기)는 “이 사건의 본질을 사람들이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건 초기에 다수의 사람들은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사건인 줄 알았다. 과거에 흔했던 대통령의 측근이 저지른 비리, 즉 `게이트 수준`이라고 봤다.

하지만 수사는 흐르고 흘러, 돌고돌아 박근혜 대통령 자체를 겨냥하게 된다. 최순실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헌을 문란하게 하고, 경제질서를 뒤흔든 행위로 특검이 정리했다.

때문에 최순실에서 이재용으로 본말이 전도된게 아니라, 박 대통령의 국헌 문란사태 안에  여러 범죄가 포함된 모양이라는 것.  측근 비리를 뛰어넘은 탄핵사태 본질과 관련됐다는 게 박 변호사의 해설이다. 

반면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다른 언론 매체에서 "특검이 공을 법원에 던졌다"면서 "법원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검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면피성이 아닌가 싶다"라고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특히 최 교수는 “주범(받은 사람) 조사 없이 종범(준 사람)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수사 실무와 적법절차에 맞지 않다”면서 “특검이 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고 또다른 매체에서 말했다.
 

"뇌물죄 형평성 고려하면 영장 발부" vs "유무죄 다툴 여지...영장 기각"

둘째, 18일 예정된 법원의 피의자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지금 당장에는 국민의 시선이 법원에 집중해 있다. 법원이 구속 영장을 발부하면 곧바로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삼성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의 보석허가를 재빨리 신청할 것이다. 보석허가 가능성은 높지만 지금 중요치 않은 얘기다.

반대로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면, 특검은 다시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기각되면 그대로 불구속 기소로 갈 것이다.

기각되면 특검이 입는 피해는 특검수사 전체에 50%이상 영향을 주게 된다.  이 부회장에 이어 `돈을 주도록 지시한 이`, 즉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고, 특검은 힘이 죽 빠질 것이다. 

그런데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까.

최준선 교수는 법원이 신중하게 판단해야한다고 했지만, 형평성을 생각하면 이 부회장의 영장기각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노희범 변호사는 “예단하기 매우 어렵다”며 “발부 가능성을 반반으로 본다”고 말했다.

발부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소명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 특검의 주장대로, 430억원의 뇌물을 제공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분명히 받았다는 것이다. 받는 대가는 국민연금의 찬성표 덕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이 부회장이 1조원 가까운 이득을 봤다는 주장이다.

대가가 없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대측 논리도 강하다. 우선 시점상 뇌물을 제공한 후에 대가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찬성은 그 이전에 이미 이뤄져서 대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지원이 미흡하다`며 역정을 낸 것은, 명백한 강요죄인 만큼 뇌물죄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면전에 두고 역정을 내면 얼마나 위협적이었을까. 지킬 게 많은 총수로선 충분한 위협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법적으로는 엇갈린다.

박경준 변호사는 “시점이 뒤집어진 것은, 사후 수뢰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리 찬성해서 이득을 주고서, 뇌물을 수뢰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 노희범 변호사는 “역정 정도가 강요일까 하는 것도 논란이 된다”며 “통상 협박, 위협 정도를 강요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단은 형평성을 감안한 얘기다. 공무원들도 1천만원이상 수수하면 구속되는데, 수백억원을 제공한 피의자를 구속 하지 않는게 말이 되냐는 논리다.  뇌물죄는 대부분 구속 수사했던 점과도 대비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 변호사는 "통상의 상황이었다면, 법원이  기각했을 사안"이라면서 "그러나 탄핵정국에서 법원이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조심스런 입장이다.

현실은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다. 한국 정치에서 국내 재벌 1위 삼성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반드시 `부러뜨리려` 했을 것이다. `제일 센 놈을 부러뜨려야 그 다음들이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삼성이 부러지지 않고 버텼다면 어디로 갔을까. 수년전, 삼성이 본사를 옮기는 걸 고민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던 일이 생각난다.

나머지, 위증 혐의는 큰 관심사안이 아니다.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사장 불구속 기소가 이 부회장의 구속여부에 따라 추가 영향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더기 有故, 삼성 경영 공백 커질 수도"

 

다시 첫번째 의문으로 돌아간다. 그의 아버지는 정권의 요구에 말려들지 않았을까. 반대로 이재용 부회장은 왜 독이 든 과일(毒果)을 주웠을까.

이에 대해 `생각하는 깊이가 차이난 것`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박경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임기후반 정권의 요구를 거절하는 노하우가 생겼을 것"이라며 "특히 정권이 바뀌더라도 노출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진리(?)는 오래전에 터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이 부회장은 급할 수 밖에 없어 이 점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했는지 모른다"며 "아버지인 이 회장이 갑자기 몸져누우면서 경영권 승계를 빨리 마무리짓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삼성 에버랜드 사건 등에서 법망을 피했던 이 부회장이 앞으로 훌륭한 경영자가 되려 한다면, 이번 일로 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바른 길을 가는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있는 상황에서 그의 아들 이 부회장을 구속 처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경영 공백도 실제 이상으로 클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내부 상황이 심각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모습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미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신기술 경쟁력과 투자는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에게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기업인이 가야할 곳은?

기업인만 애궂은 피해자가 되고있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전날 구속영장이 청구된 직후, 기업들의 곤혹스런 입장을 냉소적으로 비유한 글이 SNS상에 돌기도 했다. 이를 소개하면, <대통령이 돈 요구할때 기업인은 어떡해야하나?>라는 제목 아래에,

(1) 액수 절반 깎고 계열사 50군데 검찰 압수수색 후 오너 불구속당한다(롯데)

(2) 거절하고 면세특허 뺏기고 1년에 3번 세무조사 당한다 (SK)

(3) 거절하고 블랙리스트 오르고 해외추방 당한다 (CJ)

(4) 거절하고 올림픽 조직위원장 박탈당하고 해운회사 공중분해당한다 (한진)

(5) 수락하고 돈뜯기고 나중 특검한테 걸려 감빵간다 (삼성).

라고 하면서, 이 나라 기업인의 선택지는 어딘가라고 묻는다.  기업인은 강요된 선택지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오너의 구속과 전문경영인 2명의 불구속 기소는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점이 간과되어선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기업인들이 일할 곳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