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花落香留, 130.3×162.2㎝ Acrylic on canvas, 2016

 

불애 손동준(不涯 孫東俊) 작가의 최근 작품은 담대한 역동성을 품고 있다. 마치 인생의 온갖 욕망과 격정을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으로 함축해낸 듯하다. 그렇다면 손동준의 작품은 서예일까, 회화일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호적(戶籍)은 변하지 않듯, 불애 손동준은 분명 태생부터 서예가이기 때문이다.

 

▲ 100×200㎝, 2010

 

손동준(SON DONG JUN)은 어려서 큰집에 양자로 들어가 줄곧 조부모님과 살게 된다. 마침 조부께서 서예학원을 운영한 덕에 자연스럽게 한문과 서예를 접하게 되었고, 중학교 3학년에 첫 번째 스승인 창석 김창동(菖石 金昌東) 선생을 만난다. 이때부터 줄곧 서예장학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당시 국내의 학생서예대전 중고등부에서 대상 혹은 1등상을 15회 정도 수상했으며, 군 입대 후엔 모필병(毛筆兵)생활, 대학교는 한국 최초의 서예학과 입학, 결혼도 서예 제자와 한 이후, 중국의 서예유학 등 인생 자체가 서예인의 숙명이나 마찬가지이다.

 

▲ 30×90㎝, 2011

 

손동준의 고등학교 시절 별명은 ‘서예자전(書藝字典)’이었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힌 덕분에,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전문을 서체자전을 보지 않고, 안진경 해서법첩에서 직접 집자할 정도였다. 심지어 ‘어느 책 몇 페이지에 무슨 글자가 있는지’를 꿰뚫고 있었다. 또한 당시 우리나라 서예가들의 고향과 출생년도, 특성까지도 줄줄 외웠다.

 

▲ 38×58㎝, 2015

 

결국 담임선생님의 권고로 한국에 처음 신설된 원광대학교 서예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서예학과 입학시험에서 실기점수 만점으로 입학한 손동준에게 대학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술가로서의 인생에서 가장 부유했던 시기가 서예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모든 생활비를 해결했던 대학시절이었다고 할 정도이다. 서예가의 길에 접어든 불애 손동준(Bul-Ae Son Dong-Jun)에게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대학 1학년에 받은 서예공모전 수상이었다. 당시 KBS와 국제서법연맹이 공동주최하고, 한국서예계의 거봉이던 여초 김응현(1927~2007, 如初 金膺顯) 선생이 주관한 ‘제6회 KBS전국휘호대회’에서 처음엔 1등상을 받았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연유로 아쉽게도 2등상을 수상한다.

 

▲ 140×170㎝, 2010

 

이 대회는 서예계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던 서예공모전이기도 했기에, 대학교 1학년생으로서 서단(書團)에 입문한 것 자체가 굉장한 뉴스거리였다. 여담으로 시상식에 간 손동준에게 직원이 행사도우미로 잘못알고 심부름을 시키는 바람에 정작 시상식에 좀 늦었던 일화로도 당시 반응을 짐작할 만하다. 이후에도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을 시작으로 월간서예대전 대상(2000), 제1회 서예문화대전 대상(2005) 등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이며 젊은 서예가의 열정을 이어오고 있다.

△글=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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