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대한민국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 및 사회, 경제, 문화 전 영역에서 '해먹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보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에서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는 갈라파고스에 갇혀 멍청한 눈동자만 껌뻑이고 있다.

▲ 영화 돈의 맛 홈페이지. 출처=홈페이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2012년 개봉한 영화 '돈의 맛'은 임상수 감독 특유의 연극적 기법이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대사다. 돈의 맛에 길들여진 재벌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재벌가의 후계자이자 윤회장의 아내인 백금옥(윤여정 분)은 딸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소회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너희 할아버지, 군인들하고 정치인들한테 돈 뜯겨가며 아득바득 이 자리까지 오신 거야"

이 의미심장한 대사는 정치와 경제의 정경유착을 제대로 설명하면서도, 사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1961년 5월 17일, 박정희 소장이 5.16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날 주요 기업인들 17명이 일제히 붙잡힌적이 있다. 쿠데타 세력은 이들을 모두 모아 이렇게 위협한다. "당신들은 부정축재자들이니 모두 총살할 것이다". 이에 놀란 기업인 일부는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각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삼성을 이끌었던 이병철 회장의 행보다. 이 회장은 쿠데타가 벌어지기전 일본에 있었고, 그를 대신해 조홍제 부사장이 군인들에게 연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의 압박에 이병철 회장은 5월 26일 귀국해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박정희 부의장을 만났다. 부패척결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군부의 입장에서 경제인들은 애증의 대상.

여기서 이병철 회장은 회심의 카드를 던진다. '한국전쟁부터 이어진 지금까지의 경제논리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한 절대 기업을 키울 수 없는 상태였으며, 차라리 경제인들을 활용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에 활용하라'는 주장. 당장 경제 문제가 시급했던 박정희 부의장은 이에 수긍해 경제인들의 연금을 모두 풀어줬다고 한다.

하지만 5.16 쿠데타에 참여했으며, 군사혁명위원회 법무분과위원을 지낸 이석제는 크게 반발했다. 그는 경제인들이 모두 풀려나자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허리에 찬 권총을 책상위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여러분들의 석방을 반대했으나 어쩔 수 없이 풀어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부정축재를 저지르면 그때는 당장 쏴 죽이겠다"

이석제의 행동이 통쾌한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후의 상황.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경제는 이견의 소지가 있으나 나름의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부와 경제의 밀월은 더욱 강해졌으며 이에 따른 부작용은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여기에 대한 가치평가는 후대의 역사가 하겠지만, 공과가 분명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현재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된 전국경제인연합이 당시 박정희 통치 시절 시작되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다음으로는 시스템적 측면이다. 부정축재자를 쏴 죽이겠다는 일갈은 제3자 입장에서 '사이다 발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적일까? 쿠데타 자체에 대한 판단은 차치한다고 해도, 권력을 잡은 주체가 경제인들을 겁박하고 압박하는 장면은 확실히 비정상적이다. 당시에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적 홍길동이 부자집을 털어 보물의 일부를 평민들에게 뿌리면 통쾌한 활극이 잠깐 완성되지만, 중장기적 측면에서 경제는 완전히 파탄난다. 누가 부자가 되겠는가! 누가 투자를 하고, 누가 돈을 굴리겠는가!

시스템의 문제, 독립과 순작용
최근 이슈가 된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논란, 메르스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불편한 진실과 만날 수 있다. 바로 시스템의 붕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차원의 확실한 보완 시스템이 존재했다면 미연에 방지하거나, 혹은 이후라도 그 피해의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귀한 우리 아이들이 허망하게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습기 살균제 논란도 마찬가지다. 살균제의 위험성을 충분히 걸러내기만 했어도, 최초 괴질의 발생 당시 보건당국이 전사적인 태세만 취했어도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이 역시 시스템 붕괴의 문제다. 메르스 사태는 어떤가. 정부의 방역체계가 확실했다면 이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조류독감 사태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문제다. 2015년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신임 국장 배런(리브 슈바이버 분)이 카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는 스포트라이트팀에 주문하는 내용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그는 말한다. "카톨릭 사제의 성추행 사건에만 집중하면 문제의 본질이 사라진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될 수 있다. 진짜는 이러한 악행이 계속 벌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문제삼는 것"

결국 세월호 참사 및 최근의 논란은 시스템의 붕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한 안전 인프라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회와 국가의 약속으로 생겨난 최후의 보루인 시스템.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일각에서는 시스템이 '고루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고루하고 기본적인 것이기에 시스템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얻는 셈이다. 지금 우리를 보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억하겠습니다'며 눈을 뜨고 시스템이 해야할 일들을 하고있지 않는가. 피곤하지 않나?

이 시스템적 담론을 현재의 경제,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대기업 논란으로 가져와보자. '딱' 들어맞는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시스템이 독립되고, 순작용되면 문제가 없었다! 정경유착이 없었고, 기업인은 기업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삼성의 지배구조개선 민원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법리적 공방이 남아있어 예단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삼성의 지배구조개선의 칼자루가 정부와 1%의 인연도 없었다면? 국민연금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그 어떠한 정치적 판단을 고려할 필요가 없이 완전히 독립적 경제 시스템으로 움직였다면? 영화 '돈의 맛'에 등장한 대사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립된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역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와 사회, 문화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의 방향성을 제어하는 주체는 독립된 시스템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며, 시스템 붕괴는 모든 것의 붕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총을 꺼내 기업인들을 겁박하는 통쾌한 장면도, 카톨릭 사제들의 범죄를 까발려 한 방 먹이는 것도 시스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의 마윈 알리바바 회장,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공수표를 날렸다. 각국의 보호 무역주의는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전반적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난세의 시대.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단죄하고 통쾌함을 만끽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한다.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