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새해 벽두부터 위기론이다. 외환위기 20년 차인데, 경제의 지반이 굳건해지기는커녕 20년 전보다 더 불안정하게 흔들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라고 치부하기엔 실물경제의 심각성이 여간 심상치가 않다. 그런데도 국민적 관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것은 최순실 게이트 등 메가톤급 정치이슈에 밀려 작금의 경제상황이 신문 지면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IMF 위기가 외환부족에서 기인한 탓도 있겠다. 넉넉한 외환보유고만 쳐다보면 내심 안도할 만도 하다. 외환규모는 3000억달러 이상이다. 사실상 한은 금고가 바닥나 있던 2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더구나 외환위기 때 앞다퉈 경고등을 켜며 자본의 한국 탈출을 부추겼던 국제신용평가사들마저 한국 경제에 일본이나 중국보다 높은 국가신용등급을 부여했으니 걱정도 팔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는 수치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경제성장률은 2%대마저 무너질 처지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를 견인해오던 수출은 기가 꺾였다. 재작년 충격의 ‘8.0%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수출은 작년에도 5.9%나 후퇴했다. 실업자 수는 작년에 급기야 100만명을 넘어섰고,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해 전체 실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청년들이라고 한다.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20%를 넘겼다는 보도도 있다.

경기 선순환에 기여할 소비는 한껏 위축되어 여지껏 풀릴 줄을 모른다. 일자리나 소득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전세가 고공행진을 피하려고 저금리 주택자금 대출에 몰려간 가계들은 1300조원의 빚을 졌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쯤 되면 정부로서도 관리하기가 힘들다. 경상수지가 흑자라지만, 그 폭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흑자폭 감소는 외환의 감소로 이어진다.

대외환경은 더 큰 불안요소다. 요즘 관가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4각 파도’론이 화두처럼 돼 있다. 비경제부처이지만 윤 장관은 북한의 핵도발·중국의 사드 압박과 경제보복·일본의 소녀상 갈등·美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압력 등을 한국에 닥친 ‘4각 파도’라고 규정해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 경제 전반이 악화되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MF 때는 그나마 세계 경제가 양호하여 한국은 수출증대 등으로 위기탈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은행은 얼마 전 2017년 글로벌 성장 전망치를 2.7%로 또다시 낮췄다. 성장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지뢰처럼 잠복해 있다는 판단에서다.

트럼프가 한국 등 교역상대국들에 대해 비우호적인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한미 FTA의 폐지를 비롯해 언제든 양자 간 무역마찰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게다가 미국 연준은 연내 자국 경제안정화 차원에서 몇 차례 금리를 올릴 참이다.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대책만큼은 세워둬야 한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새해 한국 경제의 화두는 첫째도 리스크 관리, 둘째도 리스크 관리”라고 밝혔다던데, 그것만으로 최악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선은 찾을 수 없다. 최선의 방어는 언제나 공격이다. 이번 기회에 소비 중심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느긋하고 순진한 생각보다는 당장 수출을 늘릴 방법부터 찾는 게 합리적이다.

비록 단기간일지라도 새해 들어 열흘간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7.7% 증가했다는 경제면 한 귀퉁이의 뉴스는 한 가닥 희망의 불빛처럼 보인다. 탄핵정국이지만 정부는 경기하강을 최대한 막아내면서 수출을 뒷받침할 재정·통화정책들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한국 경제의 선순환은 얼어붙은 소비보다는 우리의 장기인 수출에서 추동력을 구해야 한다. 한국은 보기 드문 안팎의 격랑 속에 휩싸여 있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