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은 기술기업이며, 언론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페이스북이 사실상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11일(현지시각) 페이스북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쉽게 말하면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언론 콘텐츠가 흐르는 상황에서 언론사와 협력해 언론 플랫폼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뜻입니다.

 

복스를 비롯한 몇몇 언론과 이미 제휴를 맺고 프로젝트 실행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언론사 개발팀과의 해커톤을 비롯해 기자들을 위한 페이스북 자습서(!), 페이크 뉴스 방지 대책, 유료 독자를 위한 무료 평가판 출시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페이스북이 이러한 우디르급 태세전환에 나선 배경을 살피려면 인스턴트 아티클의 역사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초 페이스북 아티클을 런칭하며 언론사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품으려 했어요. 페이스북 내부에서 뉴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개념입니다. 언론사 입장에서 바로 유입되는 트래픽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이를 광고수익 등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 초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두 가지 측면의 효과가 기대되었습니다. 일단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의 강력한 규제 정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언론사는 페이스북을 또 하나의 뉴스 유통 경로로 활용했는데, 이 지점에서 페이스북이 세련된 사용자 경험으로 '돕겠다고 나선'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마디로 윈윈효과. 언론사가 페이스북 생태계에 스스로를 가둘 것이라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환영의 뜻을 밝힌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인스터클 아티클의 공공적 지위입니다. 포털에 뉴스 등록이 되면 언론사의 지위가 상승하는 '희한한 모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인스턴트 아티클은 포털의 뉴스 걸러내기 가이드 라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낮은 진입장벽을 가졌습니다. 저변 확대적 측면에서 눈여겨 볼 포인트에요.

▲ 출처=페이스북

하지만 페이스북 아티클은 호불호가 갈립니다. 외국에서는 나름의 존재감을 발휘하지만 국내에서는 큰 인기가 없습니다. 일부 언론사의 경우 나름의 이득이 주어지지만 트래픽 자체가 미비한 언론사는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있던 트래픽이 페이스북으로 빠져 버리니 매력도는 더 반감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디지털 전략의 부재라는 언론사의 원죄도 있고요.

이러한 실험을 거듭하던 페이스북이 돌연 페이스북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추진한 개념은, 사실 구글 AMP의 방향성과 닮았다고 보여집니다. 로딩 시간 감축(아티클도 마찬가지지만) 등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플랫폼 지원을 매개로 시작된 구글 AMP처럼, 페이스북의 저널리즘 프로젝트는 언론 그 자체에 집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페이크 뉴스 등으로 촉발된 '책임론'이 영향을 미쳤어요. 페이스북이 "우리는 플랫폼이자 기술기업이지 언론사가 아니야"라고 주장했지만 콘텐츠 유통의 질적인 측면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자 결국 언론사의 자정작업에 나선 배경입니다.

페이스북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언론이 된다는 것은 곧 콘텐츠에 대한 질적인 측면을 책임진다는 뜻이고, 이는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페이스북이 게시물 수정 흔적을 숨기는 방안을 슬쩍 실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아프리카TV의 "플랫폼이냐, 미디어냐" 논쟁과 비슷합니다. 몸집이 커지고 책임질 것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공공적 지위에 올려야 한다는 법칙이 적용된 셈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페이스북은 플랫폼으로 작동하며 만인의 만인을 위한 장터로 남고 싶겠지만 이제 한계입니다. 시장이 한계라는 뜻이 아니라 대외적인 압력에 버티는 것이 한계에요. 여기에 어차피 진출해야 하는 중국 시장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제 페이스북은 언론사 콘텐츠부터 질적 자정규제를 강화하며 이를 '협력'의 이름으로 포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축하합니다. 전 세계의 페이크 뉴스 관계자들. 당신들이 해냈어요.

▲ 출처=픽사베이

페이스북 입장에서 다소 긍정적인 전망을 해보자면, 페이스북은 이대로 제2의 네이버가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제2의 구글이 아니라 제2의 네이버에요. 만인의 만인을 위한 장터가 아닌 내적인 플랫폼 생태계에 '잘 정제된 콘텐츠'의 비중을 크게 늘릴 수 있을 전망입니다. 그러니까 드넓은 홈페이지 정보의 바다에 달랑 검색창 하나만 두고 정교한 항해법을 제공하는 구글이 아니라, "항해는 위험하니까 우리가 만든 워터파크에서 놀아"라고 말하는 네이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물론 언론사 외 콘텐츠 카테고리 비율이 더 높아져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페이스북이 인스턴트 아티클에서 시작한 실험을 저널리즘 프로젝트 등의 변곡점을 거치며 콘텐츠 고도화에 직접 개입하고, 추후 다른 정제 콘텐츠를 서서히 품어 나간다면 그것이 곧 네이버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페이스북의 전자상거래 시장 타진, 채팅봇, 인공지능 등등의 방식들이 이러한 행보와 연결되면...정정합니다. 제2의 네이버가 아니라 '새로운 네이버'가 될 수 있겠네요. 일부러 방치한 악명높은 검색품질만 강화한다면 게임은 끝.

여담입니다만 12일 업계를 취재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해 무려 (추정치)2조9500억원의 광고매출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4분기에만 8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어요. 모바일과 쇼핑을 통해 광고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콘텐즈적 측면에서 정제된 콘텐츠에 집중하면 역시 언론사 콘텐츠가 있을 겁니다. 전재료 논란을 의식한 네이버는 "언론사 콘텐츠의 트래픽이 낮다"며 이를 가볍게 보는 눈치지만 정말 그럴까요? 네이버는 모든 카테고리에 다양한 정보를 붙이면서 언론사의 정제된 콘텐츠를 백분활용해 자사 생태계 전체를 탄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네이버 페이 등의 혁신을 더하면서 영리하게 광고 매출을 끌어온다는 뜻입니다.

페이스북이 이런 길을 걷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역사는 언론사들이 포털 외 탈출구로 페이스북을 선택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동탁이 가니 이각과 곽사가 왔다' 오늘도 평화로운 미디어 콘텐츠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