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만남이 화제입니다. 손정의 회장과 마윈 회장은 불세출의 사업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트럼프를 만나 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노련한 스킬을 보여주는 한편, 국가적 차원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기업가 출신 정치인입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사업가로 살아왔으며, 기업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특기할만한 단서가 붙습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소위 러스트 벨트의 블루컬러 백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했으며 유독 일자리 문제에 목말라 있다는 점입니다.

보호 무역주의 기조를 추구하며 애플의 공장을 자국으로, 외국의 공장도 자국으로 끌어오려는 의도 기저에는 ‘미국 우선주의’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도 마찬가지였지만,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강해질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손정의 회장은 트럼프를 만나 미국 내 5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습니다. 나아가 통신업계에 뛰어든 자신의 ‘민원’을 스스럼없이, 그리고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500억 투자까지 약속하며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니 트럼프의 입은 귀에 걸렸어요. 마치 실리콘밸리와 트럼프의 미팅이 끝난 후 제프 베조스의 밝은 얼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트럼프를 만났습니다. 손정의 회장보다 통이 더 크네요. 미국에서 무려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겨울 파카를 입고 등장한 마윈이 회동을 마치고 돌아가자 감격한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1층 로비까지 따라와 따스한 이별을 연출했어요.

물론 공수표라는 지적도 있어요. 1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의 소상공인들이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 소비자에게 물건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그 지역이 미국 중서부, 즉 러스트 벨트와 농장지대에 집중되어 있고 그곳이 공화당의 텃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일단 감격’입니다.

사실 마윈 회장의 경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를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트럼프를 만났다는 측면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약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말도 나왔어요. 하지만 환구시보 등을 통한 중국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최근 중국은 보호 무역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공세에 적극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마윈 회장이 비즈니스 외교를 통해 중국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짝퉁 논란에 휘말린 알리바바 타오바오 문제도 일정정도 해결의 단서가 보인다는 주장도 있어요.

자, 공수표를 남발했든 지키지 못한 약속을 던졌든, 세계의 기업가들은 중요한 시장을 가진 미국과 긴밀하게 스킨십을 시도하며 뛰고 있습니다. 이걸 사대주의로 보는 촌스러운 시각은 없겠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12일 특검에 피의자로 소환되어 기자들의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중국의 마윈, 일본의 손정의가 트럼프와 만나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의 수장은 침통한 얼굴로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중국과 일본은 뛰는데 우리는 지지부진한 논란의 덫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이를 개탄하는 것은 자유지만 내밀한 해결방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을 기자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뛰게 놔줘라”는 주장은 우리사회가 가지는 공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기업인이 곧 면죄부는 아니거든요.

결국 시스템입니다. 비선실세에 농락당하지 않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하는 시스템, 이재용 부회장이 포토라인에 설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집단적 동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외로 단순한 원칙입니다. “기업인은 기업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자” 우리는 이렇게 또 중국과 일본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덤으로 끔찍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엉망인 경제상황과, 외교적 스킬의 부재를 끌어안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