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평지로 불어오면 부드럽게 낮아진다. 고봉을 타고 오르는 바람은 제 힘이 겨워서일까. 눈과 비와 구름을 몰고 다닌다. 한적한 고궁의 길 위 차라리 홀로 남은 듯 서 있어나 볼까.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안평대군이 지나던 길, 겸재 정선의 비에 젖은 인왕산바위나 찾아갈까나. 정유년(丁酉年) 새해 경복궁에서 다나 박 작가.

 

“우연에서 필연의 존재가 되는 그것이 섭리인가. 화폭의 물감흔적들이 마치 풍상에 바위무늬가 새겨지듯 선들과 형태엔 세상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미지의 산과 강이었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스며드는 시간을 가슴으로 바라본다. 바로 나의 그림이다.”

서울 삼청동 인근 카페서 만난 작가는 조용하게 작업흐름을 전했다. 화면은 무수히 많은 물감덩어리와 선과 점과 면들을 캔버스에 채우고 지운다. 세상의 가장 크고 멋진 조각품, 생명이 숨 쉬는 거대한 침묵, 환희와 통곡의 가락을 품은 채….

작가는 “산을 묵묵히 걷다 보면 까마득했던 저곳이 이곳이 되고 이곳은 저곳이 된다. 산에 오르면서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선 그 강인하고 의연한 힘에 나를 맡긴다. 지나온 산들은 어느 순간 그림이 될 그곳이고 그렸던 산들은 어느 순간 그 곳에 있다. 오르고 내려가고 오르고 다시 처음의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만 하는 산. 우리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산이 있다”라고 했다.

다나 박 작가는 2005년도 서울 인사동 관훈미술관서 첫 개인전을 열기 전, 언젠가 그림 100점이 되면 전시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강이나 꽃을 주제로 진짜로 그렸고 첫 전시를 흡족하게 치러 큰 호응을 받았다. 2006~2007년 즈음엔 그림소재가 아니라 그냥 산이 좋아서 많이 다녔다.

“그 때 등산의 맛을 알게 되어 되었다. 나랑 너무 잘 맞았다. 산 초입에 들어가는 순간 굉장히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신선해 지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넓어진다. 산 입구에서부터 뭔가 자석처럼 막 끌린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아찔하면서도 또 다른 시야가 열려서 좋다”라고 했다. 이후 2008년 가나인사아트센터 ‘觀-산을 보다’전시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최근작 ‘I SEE YOU-산’은 산 자체가 내뿜는 기운을 화폭에 펼치고 있다.

몇 해 전, 안나푸르나 산행에서 많은 영감을 가슴에 담아왔고 지난해 중국의 태항산을 비롯하여 국내 산행에도 열심이다. 본명이 박희숙인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개인전을 12회 가졌다. 현재는 다나 박(Dana Park)이라는 화명(畵名)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와 삶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작업 자체가 행복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러니 사람을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때 그림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초조함과 두려움이 엄습했었다. 그러나 끈을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작업을 하게 된다고 확신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작가는 모름지기 작품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나는 그림 한 점 그릴 때마다 세상을 하나 만드는 것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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