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see you-The river, 194.0×97.0㎝, Acrylic on Canvas, 2016

“갑자기 햇살이 어느 산봉우리에 닿았고, 고요하고도 나지막한 목소리가 황금빛 광채로 변했다. 민첩한 새벽의 마술사가 재빠르고도 기민하게 산맥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려갔으며, 산봉우리들은 차례로 그 마술사의 솜씨를 증언했다. 햇빛이 지나가면서 바람이 일었는데, 그것은 깨어나는 하루의 지극히 부드러운 숨결이었다.

차갑고도 가벼운 숨결이 눈 위에서 속삭이고는 사라졌다. 사소한 현상이겠지만, 비록 정적을―밤사이에 만들어지고 새벽의 아름다움 속에서 다듬어진 정적을 깨뜨리는 데 지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시작이었다.”<산의 영혼(THE SPIRIT OF THE HILLS), 프랭크 스마이드(FRANK S. SMYTHE)지음, 안정효 옮김, 수문출판사)

멈췄다 흐르고 다시 반복하며 마침내 물이 파도쳤다. 희디 흰 포말로 부서지다 구름을 잉태했다. 유연함과 부드러움으로 솟구치는 힘으로 다시 한 번 산(山)으로 거듭나며 비로써 물과 산은 하나가 되었다. 물을 껴안은 강이 춤을 춘다. 강물은 노래하고 울림은 산에 닿는다.

하여 산 안엔 물 흐르고 길이 나고 축축한 습지에 생명이 움텄다. 햇살은 눈부셨다. 적막이 흐르는 산야의 고요를 껴안은 힘 바로 산의 침묵이었다. 한 무리 새털구름이 산봉을 지나며 흘깃 바라본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강건함으로 산은 그 자리 그대로 묵직함으로 있을 뿐인데.

“신새벽 어둠속이어도 날 저물어 온통 산이 어둠속이어도 나에게는 그리운 것이 다 보였다 아주 환히 먼 데까지/그러다가 산을 떠나서 파도소리 어느 바다였던가 여기저기 떠돌다가 불현 듯 고개 들어 바라보면 거기가 산이었다/산이 말한다 그 푸른 눈매 지워 오고 싶거든 어서 오라 태어난 산이거든 그것이 돌아갈 산이므로 다시 나는 산이었다”<고은 詩, 산, 창비시선>

 

▲ 산을 보다, 72.7×60.6㎝, 2016

 

산길을 걷는다. 창조주가 있다면 혼돈 속에서 어떤 형태들의 이미지를 보면서 조합을 해나가지 않았을까. 세상은 무한한 다른 모습이 있지 않을까. 도대체 완전함은 있기나 하는가. 혹 익숙함이 본질을 가리는….

수많은 자문(自問)위에 고요히 선율이 깔린다. 핀란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Osmo Vanska)가 지휘한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의 명곡 ‘교향곡 7번 C장조 Op.105’이 심혼(心魂)을 일깨운다. 송곳같이 솟은 암벽과 원시침엽수림아래 광원하게 드리워진 설원과 호수의 오묘한 물빛에 흐른다.

묵언에 잠긴 신화의 영혼을 위무하듯 잔바람이 가느스름 지나자 종잇장 같은 치즈처럼 눈발이 사르르 공중에서 창백하게 부서졌다. 일순 밀려오는 두려움. 산에선 살아남아만 한다. 그것만이 존재이유다. 다시 스스로에 되묻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I see you-Mountain, 162.0×130.3㎝, 2016

 

◇머무름, 산과 같은 에너지

산에 가는 것은 같은 동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머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추위와 비바람과 눈보라에 훅 밀려 가버린다. 다나 박 작가는 이렇게 메모했다. “바람 불고 눈 내리는 겨울 산의 빛과 산을 타는 사람의 강인함 그리고 눈바람의 메마른 바람소리를 담고 싶다.” 그리고 우연한 듯 고난을 이겨내는 험한 산 속 자그마한 빨강형상이 아른거린다. 오오 가없는 나여, 행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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