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여성 환자가 아들, 딸과 함께 외래로 찾아 왔다. 주 호소는 ‘기억장애’였다. 최근 들어 사물의 이름이 금방 생각나지 않고, 며칠 전에 했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혼자 생활하고 있었으며, 혼자서 밥 해먹고 외출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시장 가서 간단한 장보기 등은 가능한 상태였다. 고혈압약, 고지혈증약을 복용 중이었고 혈관성 위험인자가 있어서 뇌자기공명영상검사(MRI), 정밀인지기능검사(SNSB), 혈액검사 등을 시행했다. 신경학적 진찰, 면담 및 모든 검사 결과를 토대로 보았을 때 환자의 최종 진단은 ‘경도 인지 장애’였고, 약물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환자뿐 아니라 같이 온 보호자들은 필자의 설명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였다. 두루뭉술하게 설명해야 이해가 쉬운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젊은 보호자가 구체적인 설명을 원할 때는 침착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경도인지장애는 동일 연령대에 비해 인지기능, 특히 기억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며,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능력은 보존되어 있어 아직은 치매가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즉, 정상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역학연구 결과 경도인지장애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이행할 수 있는 고위험군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이 상태는 알츠하이머병을 가장 이른 시기에 발견할 수 있는 단계이며 치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하다. 정상 대조군이 매년 1~2%의 비율로 치매로 전환되는 데 비해, 경도인지장애에 속하는 환자는 매년 10~15%의 비율로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으로 이행된다.

이쯤 설명하다 보니, 환자 및 보호자는 설명 중간에 ‘치매’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주 소스라치게 놀라는 눈치였다. 환자 및 보호자는 치매인지가 궁금한 것이었다. ‘현재는 치매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경과는 관찰해보자고, 너무 앞서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앞선 걱정과 불안은 도리어 정신 건강에 해롭고 병의 경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환자 주위의 정서적 지지와 본인의 긍정적 태도만 유지한다면, 이 환자는 경과가 좋을 것으로 필자 개인적으로 예상한다.

시골에 사는 80대 초반의 할머니와 며느리가 외래로 왔다. 원래 시골에서 부부가 함께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었는데, 6개월 전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들이 같이 세상을 떠난 이후 뚜렷한 기억장애와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고 했다. 면담 및 검사 결과, 우울증 및 노인성 퇴행성 치매(알츠하이머 치매)가 복합되어 있다고 진단했고 약물 치료 및 경과를 관찰하자고 얘기했다. 같이 온 며느리는 “치매가 맞죠?”라고 3번 정도 되물었다. 그리고 “집에서 생활은 안 되고 요양원 가셔야겠죠?”라고 물었다. 필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앞선 환자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인지기능저하로 내원한 환자에 대한 짤막한 설명 정도만 환자 본인에게 하고, 치매 진단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젊은 보호자를 불러 따로 한다. 환자 본인은 ‘치매’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치 절벽 끝에 서 있는 좌절감을 느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좌절감은 병의 경과나 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필자는 치매 진단 환자는 보호자를 따로 불러 설명한다.

처음 케이스와는 달리 이번 환자는 보호자가 요양원에 모시고 싶어 한다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다. 이론적으로는 평생 시골에서만 생활한 80 넘은 할머니가 생활 환경이 바뀌고 통제된 생활을 하면 증상 조절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방문요양보호서비스 등을 이용해볼 것을 일차적으로 권유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이 환자는 왠지 오래지 않아 요양원 생활로 증상 조절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특정 가족관계(며느리)를 밝히긴 했으나, 꼭 며느리라서 그런 건 아니다. 아들도 딸도 그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각종 TV 채널에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치매’에 대해 다루는 내용을 자주 본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눈이 반짝거린다. 백세시대에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100% 자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치매 환자의 삶은 인간이 존엄하게 늙을 철학적 권리와도 맞닿아 있어서 아주 민감하다. 실제로 노인정에서는 치매약 먹는 사람을 무슨 전염병 옮기는 사람 취급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 정도로 치매라고 진단받는 환자 본인은 주홍글씨처럼 낙인을 찍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의 진단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나중에 식은땀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행복한 인간관계 및 정서적 지지, 혈관성 위험인자(고혈압, 당뇨, 고지질혈증, 심장병)에 대한 관리, 절주, 스트레스 관리 등을 철저히 한다면 치매는 비교적 예방 가능하다. 또한 치료 가능한 치매(뇌종양, 수두증, 전해질 이상, 갑상선 기능 이상 등)가 생각보다 많다. 일반적으로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퇴행성 치매(알츠하이머병)의 경우도 약물 치료를 통해 병의 호전 또는 경과 지연을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이 된다면 즉시 진료 및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