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제국주의 시절을 거치며 세계의 경제는 완벽하게 하나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물론 '완벽'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비롯해 지금도 굳건히 작동하고 있는 지역별 경제 블록의 존재감은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생경스럽고 꿈같은 단어인지 생생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세계 경제를 더욱 정확한 패러다임으로 규정한다면 '기본적인 연결을 기본에 두고 서로 영향을 받는 상태'로 정리할 수 있다.

연결은 기본이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의미의 지구 공화국은 탄생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외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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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보호 무역주의...미국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최근 경제정책은 자구 보호주의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자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조가 빠르게 부상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선명하게 읽힌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등장이라는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그 이면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까지 미국에 거주하던 한 스타트업 업계 인사는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가 생겨난 것으로 알지만,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9.11 테러 당시의 부시 행정부의 폐쇄적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막대한 방위비 증강과 테러에 대한 공포가 일상생활에 번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은 세계경찰의 지위를 서서히 포기하고 미국 우선주의에 천착했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을 겪으며 반전시위와 함께 미국 우선주의를 최전선에 둔 기조가 살아났던 1970년대 당시가 재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대학 입학에 있어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으며 다른 나라에 자유무역협정(FTA) 승인 거부 및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상황이 어려워지며 미국도 2차 세계대전의 단꿈에서 깨어난 것"이라며 "트럼프의 등장은 이러한 열망이 더욱 구체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부연했다. 2차 세계대전의 영광이 미국을 현재의 초강대국으로 만들어 준 찬란한 꿈이라면, 이제 그 꿈은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경제적 관점을 포함한 전 영역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로 모아진다. 트럼프 당선인 자체가 소위 '러스트 벨트'의 화이트컬러 백인의 지지를 발판으로 삼았으며, 일자리를 원하는 그들의 바램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미국 경제를 지배하다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세계경찰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결정적 장면으로 여겨진다.

트럼프 당선인은 종횡무진이다. 대선 기간 "미국 기업의 해외 공장을 자국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의 자국 공장 이전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애플의 경우는 빠르게 일이 추진되는 분위기다. 애플의 자국 공장 이전에 대해 현재 공은 아이폰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에게 넘어간 상태며 일단 전향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폭스콘의 모회사 홍하이가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며 나아가 투자계획을 미국 관련 기관과 상호 이익 원칙에 따라 가다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자국 자동차 기업에 대한 압박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포드는 멕시코 공장 건립 계획을 철회했고 GM은 멕시코 생산 물량에 관세폭탄을 맞을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타깃은 타국 기업으로 옮겨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트위터를 통해 도요타가 멕시코 신 공장에서 코롤라를 생산해 미국에 팔려면 큰 관세를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한 지점이 단적인 사례다. 도요타가 멕시코 과나후아토주(州)에 연산 20만대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겠다고 선언하자 트럼프 당선인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비상이다. 각각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소위 트럼프 불똥을 피하려는 형세다. 실제로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6일(현지시각) CES 2017 간담회에서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현재 상황으로 보면 수입해 판매하는 사람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80%는 진척이 되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분위기로 보인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국 수출 비중은 13.6%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 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공'은 국내 기업 입장에서 일종의 재앙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 퀄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및 시정명령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공정위는 반독점 규제는 모든 주요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글로벌 규범이며 "반독점법 위반 행위 제재가 통상 마찰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밝혔으나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다. 소위 프렌드 원칙 등에 대한 논란도 여전한 가운데 퀄컴에 칼을 뺀 한국을 겨냥한 미국의 보복 조치는 여전히 고려가능한 변수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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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에 한한령으로...중국은 역시 중국이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상황은 더 암울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이름이 톱5에서 오래전 사라진 가운데, 다양한 영역에서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리다매를 중심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던 중국 업체들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다소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사정은 심각한 편이다. 최근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까지 강하게 휘어잡으며 장기호황의 꿈에 젖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뒷덜미를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최악의 상황은 역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후폭풍이다.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이 사실상 기정사실이 된 상태에서 매력적인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발 공포영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

먼저 배터리 시장이다.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초강수가 이어지며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기차는 아직 완전한 시장이 등장하지 않은 상태며, 정부의 보조금에 따라 저변의 깊이가 출렁이는 영역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은 곧 국산 배터리 업계의 퇴출을 의미한다.

결국 국내 업체들은 중국 엑소더스를 택하는 분위기다. 난징에 연 1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LG화학은 중국 생산량을 유럽에서 판매하기 위해 폴란드 공장 건설 카드를 뽑아고 시안에 공장을 가진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 건설을 타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한국내 생산시설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한한령(限韓令)은 실제하는 공포다. 지난 4일 방중한 야당 의원단과 접견한 중국 외교의 콘트롤 타워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를 인정했다. “중국 국민들이 사드 문제를 심각하는 인지하는 상황에서 TV에 버젓이 한국 드라마와 한국 아이돌이 나오면 곤란하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한령이 문서로 존재하는 명확한 지침은 아니지만 중국 내 한국 연예인 출연 및 방송 등에 일정정도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대를 모았던 '신사임당'의 중국 내 방영이 불허된 것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다. 콘텐츠적 관점에서 중국 정부의 한한령은 심각한 타격이 될 조짐이다.

그 외 패션 및 유통, 특히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하는 롯데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방위적 조사 등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조만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예정되어 있으나 사드 배치로 시작된 양국의 파열음이 극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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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글로벌 보호 무역주의...외교가 답?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이 한국산 제품에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새롭게 조사에 착수한 품목은 40건에 이른다. 2011년부터 직접적인 무역규제조치가 시작되며 한국을 상대로 한 세계 각국의 반덤핑 관세 조사도 지난해 기준 30건에 달한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각자 보여주는 자국 보호주의를 신경쓰는 한편, G2의 틈에 끼어 어려운 눈치보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모호한 행보와 더불어 남중국해 분쟁으로 촉발된 힘의 역학관계는 결국 G2의 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알리바바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로 부터 짝퉁 판매 악덕 시장으로 지정되고, 중국 정부가 미국 GM 합작법인인 SAIC GM에 2억100만 위안, 우리돈으로 약 348억원의 과징금을 매긴 지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사실상 중화주의에 입각한 단일 경제패권을 노리고 있으며, 이에 맞서는 미국은 순수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밀고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나아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미국과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냉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사드 배치에 화가 난 중국을 달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근본적이고 균형적인 외교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제품의 경쟁력을 차치하고 각국의 보호 무역주의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한편, 그 위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영리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 지점에서 통상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양대주축인 미국과 중국은 사실상 전쟁상태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변수 중 하나인 일본과도 소녀상 설치에 따른 불협화음이 불거지며 통화 스와프 논의 중단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터졌다.

결국 외교다. ICT 및 전자제품 중심의 관점에서 기능적 충실함과 생태계 정책의 노련함이 두각을 보인다고 해도, 결국 판로를 열고 성과를 거두는 것은 외교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외교문제를 두고 현재 정부에서 나름 심도있는 스탠스를 보여 눈길을 끈다. 9일 청와대에 따르면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날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현재의 외교 상황은 엄중하고 매우 힘든 상황"이라며 "관련 수석들은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을 잘 보좌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촛불집회 사안보다 더 크게 다뤄졌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서 외교 라인이 제대로 힘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심지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제체의 동력을 의심하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정부 차원의 핫라인을 사실상 봉쇄한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과 만나는 장면과 일본의 소녀상 사태에 따른 한일 양국의 감정싸움 등은 현재의 외교 라인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일각에서 칠레 외교관의 부적절한 처신 등을 엮어 '외교 참사'라는 말을 하는 이유다.

문제는 탄핵 정국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외교 라인이 살아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가 급변하는 정세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브렉시트, 트럼프 시대, 보호 무역주의 기승 등 외교적 방법론으로 넘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경제인들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고려하면 외교'라는 말이 있다. 거란족 침공 당시 서희는 거란이 실제 고려를 침략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기 보다는 중원정벌에 앞서 고려의 기세를 죽이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이를 십분활용해 살 떨리는 협상을 거듭하며 오히려 강동6주를 챙기는 실리외교를 보여준 바 있다. 2017년 경제도 결국 외교전이다. 상대의 의도를 읽어 신의 한 수를 던진 서희식 외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