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신차 판매 시 배출가스 규제를 엄격하게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자동차 제작사들은 이에 발 맞춰 더 좋은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 기준 누적 전기차 보급대수가 1만대를 넘어섰습니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직접적으로 나선지 5년만에 이룬 성과죠.

앞으로 전망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간 최대 약점으로 지적 받았던 충전 후 주행가능거리가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전기차들은 열심히 충전을 해도 100~200km를 달리면 또 다시 플러그를 꽂아야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쉐보레 볼트(Bolt) 등 ‘2세대 전기차’들이 국내 소비자들을 찾아올 예정입니다. 테슬라 역시 모델 S 등 주요 차량을 국내에서 판매할 준비를 하고 있고요.

여기까지 좋습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사실 전기차를 이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행가능거리가 아닙니다. 이는 전기차를 안 타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고민일 뿐이죠. 차를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충전 할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내연기관차와의 경쟁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완충 후 500km를 달리면 뭐합니까. 충전 하는 데 12시간이 걸린다면? 서울-부산을 왕복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답이 안 나옵니다.

급속충전기? 많지가 않습니다. 현재 가장 진보한 기술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테슬라 차량들도 40분 이상 슈퍼차저를 이용해야 완충을 할 수 있습니다. 가솔린차가 주유소를 찾았을 때 소요되는 시간과 비교해 보세요.

아직까지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장거리 여행을 제외하면 일상생활에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집에서 차를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전제 하에서요.

당장 급한 불을 끄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환경부는 올해 6월까지 급속충전기 1915기, 완속충전기 1만9579기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급속 750기, 완속 9258기) 대비 두 배 이상 많아진 수치입니다.

▲ 자료사진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서론이 길었네요. 아무튼 이 과정에서 아주 작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전기차 주행 가능 거리는 길어졌지만 충전 시간을 줄이지는 못한 이 시기. 정부와 민간 단체들이 주도해서 공용 충전기를 늘려가고 있지만 넉넉하지는 않은 상황.

충전기를 꽂아둔 채 몇 시간 동안 잠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뒷사람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거죠. 심지어 일부 차종의 경우 운전자가 없으면 충전 커넥터 제거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만일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라 충전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앞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그들도 사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충전이 완료된 차를 세워뒀을 수도 있고요. 급한 일이 생겼거나, 볼일 보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자신이 주차했다는 사실을 잊었거나. 어찌됐건 기다리는 사람은 피해를 입기 마련입니다. 실제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제주도에서는 이 같은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여기서 또 한 번 테슬라가 등장합니다. 엘론 머스크가 최근 나름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거든요. 요지는 충전 완료 후 차를 옮기지 않으면 추가 요금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앞사람의 횡포에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전기차 이용자들은 환호했죠. 국내에도 이 같은 제도를 들여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완벽한 대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부 사람들이 떳떳하게 차를 세워둘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거든요. 추가 요금을 주차비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만일 추가 요금을 폭탄 수준으로 많이 책정한다면? 이것 또한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 같네요. 어디 마음 놓고 볼일을 보겠습니까? 충전기를 꽂은 채 차에 머물러야 하다니. 전기차 이용자들에게 더 큰 불편을 초래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충전된 전기를 다시 뺏는 기능을 도입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충전 완료 후 잠적해버리는 ‘얌체 이용자’ 근절 대책.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든 전기차 이용자들이 서로를 조금씩만 배려한다면 완벽하게 해결될 문제이긴 하지만, 쉽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