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격변의 시대라고 말한다. 구시대의 패러다임과 신시대의 파괴력이 충돌하며 예측할 수 없는 불꽃을 튀기는 시대. 이 지점에서 많은 기업이 화려하게 부상하고 쓰러져 간다. 이는 역으로 당장 반짝이는 기업이라고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생명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스타트업 거품론이 성급하게 제기되며 대기업의 스타트업 사냥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쿠팡이 흥미로운 사례다. 지난해 2조원 매출이 예상되지만 영업손실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추정된다. 소프트뱅크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은 상태고 손정의 회장의 극찬을 받는다고 하지만 시장의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구매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물류창고를 건설하는 한편, 로켓배송은 물론 아이템 마켓 도입 등으로 오픈마켓 시장에 진출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꾸준히 나온다. 심지어 네이버와 결별한 후 방문자 수가 급감, 소셜커머스 업체 중 3위로 밀려나기도 했고 말 많은 로켓배송은 인력채용과 배송 기준 금액 인상 등으로 혼란스럽다. 반짝이는 스타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아직 안전하지 못하다.

▲ 출처=러에코

러에코의 위기, 망할까?
중국에는 쿠팡같은 기업이 많다. 분명 반짝이는 스타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의 인정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한 사례가 다수 보인다. 물론 기업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말이며, 이러한 중국의 복잡다변한 분위기는 곧 경제의 활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견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냉엄한 게임의 법칙으로 살피면 분명한 불안요소다.

러에코가 대표적이다. 중국판 넷플릭스 시절을 넘어 그 이상의 ICT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러에코가 대주주로 있는 패러데이 퓨처스는 3일(현지시각) CES 미디어 이벤트에서 SUV 타입의 FF91 순수 전기차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LG화학이 만든 원통병 배터리가 들어간 FF91은 한번 충전에 최대 378마일(약 608km)까지 달릴 수 있는 괴물이다. 막강한 가속능력과 자율주행을 위한 장치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 출처=패러데이 퓨처스

하지만 러에코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눈에 FF91의 매력도 아직 불안하다. 러에코는 물론 패러데이 퓨처스가 현재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에코의 자금난은 현지에서 심각한 리스크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러에코의 쟈웨팅 CEO는 사내 편지를 통해 "자금난과 너무 빠른 사업 확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콘텐츠, 대형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자동차, 스포츠, 클라우드, 핀테크 등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을 연이어 벌이는 상황에서 윈드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러에코는 증자, 채권발행, 은행 대출 등의 방식으로 145억4400만위안(약 2조4436억8288만원)의 자금을 조달했으나 대부분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에코에 투자했던 유명인사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외신보도가 다수 쏟아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유명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였다. 심지어 자금난에 휘청이는 러에코의 패러데이 퓨처스가 미국 네바다주에 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자 현지 고위관리는 “폰지사기(Ponzi scheme)"라는 극단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보도에 따르면 러에코가 최근 익명의 투자자로부터 100억위안(1조7351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패러데이 퓨처스의 FF91의 비전이 '아련한' 이유다.

러에코의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최초의 지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2004년 11월, 자웨팅은 기자였던 류훙을 만나 중국 베이징 중관춘 과학기술단지에 러스왕을 세웠다. 러스왕은 플랫폼을 통해 가입자에게 비디오 콘텐츠와 게임 등을 제공하는 중국 최초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다. 러스왕은 지난 2010년 8월 온라인 콘텐츠 산업 최초로 중국 창업판(중국판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후 러에코는 2015년 4분기 자체제작 웹 드라마 같은 양질의 인기프로그램 영향으로 순 방문자, 월 방송량, 방송 시간 등 4개 항목에서 10개의 인터넷 사이트 중 전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를 발판으로 유통업체 씨피에스 글로벌과 합작사 러클라우드 코리아(LeCloud Korea)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미국의 TV 제조업체 비지오를 20억 달러(2조2710억 원)에 인수하는 한편 지난해 6월 중국 스마트폰 기업 쿨패드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패러데이 퓨처스까지 더하면 콘텐츠, 스마트폰, TV, 자동차의 영역을 모두 가져가는 셈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의 자금난은 이러한 동시다발적 영역 확장이 일종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러에코의 종말을 예정하는 전조일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위기에 위기를 만나다가 쓰러질 수 있으며, 혹은 반대의 경우 생태계 창출의 정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통한 내적 생태계 확장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며 콘텐츠와 플랫폼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는 뜻이다. 하이엔드 단말까지 손을 뻗치는 메이드 바이 구글 방법론과 비슷하다. 다만 러에코의 경우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소한 러에코는 생태계 전략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러에코가 구글,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마트 왕국을 세울 지 아니면 한 때 모바일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가 권좌에서 물러나 통신 장비 제작에 주력하고 있는 노키아처럼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는 러에코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앞으로 쟈회장과 러에코가 어떤 기업으로 성장해 갈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출처=샤오미

샤오미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러에코는 초기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회사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까지 감내하며 미래의 비전을 노리고 있다. 그 정점에는 OTT에서 시작된 콘텐츠 본능이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대단위 플랫폼을 흐르는 구조다. 이러한 실험이 완벽한 수직계열화에 성공할 경우 러에코의 비전은 완성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곳이 더 있다는 대목이다. 바로 샤오미다.

2013년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가 18.5%로 부동의 1위, 화웨이가 12%로 2위, 레노버가 11.7%로 3위, 쿨패드와 ZTE가 각각 10.4%, 9.5%로 4위와 5위를 달리고 있었다. 중국 시장 1위에 빛나는 삼성전자의 영광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14년 2분기 샤오미의 기습이 시작됐다. 샤오미가 단숨에 1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꿰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2.3%의 점유율로 2위로 내려갔으며 레노버, 쿨패트, 화웨이가 나란히 3, 4,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러한 흐름도 오래가지 못했다. 화웨이가 단숨에 1위를 차지하나 싶더니 갑자기 비보와 오포가 왕좌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톱5에서 완전히 밀려났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비보와 오포가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여주며 승승장구할 무렵, 샤오미의 하락도 시작됐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샤오미 스마트폰 신화는 2세대 다크호스의 등장으로 최소한 중국에서는 명맥이 끊겼다고 보는 편이 맞다.

하지만 샤오미는 자신들을 "스마트폰 회사가 아니다"고 말한다. 정신승리일까? 샤오미는 스마트폰에 여전한 집중을 유지한 체 만물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기청정기부터 다양한 스마트홈 생태계를 꾸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결국 스마트폰은 샤오미의 ‘미유아이’라는 소프트웨어, 즉 무형의 사용자 경험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미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리다매 형식의 온라인 중심 판로, 가성비와 중저가라는 키워드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미유아이로 넘어오게 만드는 것이 샤오미의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휴고 바라 샤오미 글로벌 부문 부사장이“중국에서 스마트폰 매출이 줄어들고 있으나 이로 말미암아 회사의 장기적인 수익모델이 위협받는 일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샤오미도 생태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러에코와 샤오미는 현재 위기론에 휘말린 상태며, 흥미롭게도 각각 테슬라 카피캣, 애플 카피캣으로 지적받았던 과거도 공유하고 있다. 다만 러에코가 콘텐츠를 중심으로 일종의 하드웨어-플랫폼 중심의 생태계를 꾸리는 반면 샤오미는 철저하게 미유아이라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판을 짠다는 점에서 차라리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하드웨어까지 진격하는 구글의 방법론과 닮았다.

재미있는 지점은 양사의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다는 점이다. 쟈웨팅 회장과 레이 쥔 회장은 모두 중국에서 가장 신비로운 기업인 사교 클럽으로 여겨지는 시나닷컴의 클럽 가입 동기지만 종종 설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레이 쥔 회장이 러에코의 자금난과 관련된 루머를 퍼트리고 있다며 러에코가 해당 대화록을 공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조작으로 좁혀지는 분위기지만 비슷한 구석이 많은 양사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분위기는 연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생태계 기업이라는 굳건한 나무의 뿌리
국내 ICT 업계는, 최근 많이 사라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중국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스마트폰이 덜 팔린다고 샤오미를 폄하하며, 자금난에 시달린다고 러에코를 당장 망할 회사로 규정한다. 물론 타당한 분석일 수 있지만 상당히 위험하고 얕은 분석이다. 양사의 목적은 결국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플랫폼 관심과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 누가 더 잘하는가? 플랫폼이 겹치는 생태계가 되는 법이다. 러에코와 샤오미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