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이 시대의 화두로 부상했다. 알파고 쇼크를 기점으로 그 논의의 파괴력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잊을만 하면 나오는 기사 아이템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상관관계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국내 인공지능 및 로봇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2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전체 직업종사자의 업무수행능력 70.6%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고 밝혔다. 1600만명 정도의 직업인이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뜻이다. 직종별로는 단순노무직이 90.1%, 농림어업숙련종사자가 86.1%를 기록해 고위험 직업군으로 선정됐다.

100%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지금까지 국내 정부는 인공지능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쏟아낸 경향이 있다. 알파고 쇼크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을 대거 발표하며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선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관치’에 뿌리를 둔 ICT 지원정책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런 기초적인 문제를 차치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우리는 인공지능의 자체발광에 눈이 멀어 그 위대한 아젠다가 제시하는 찬란한 미래에만 매몰된 경향이 뚜렷하다.

여기에서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살필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의 논쟁이 무조건적인 비전, 혹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 정부도 인공지능의 비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냉정한 상황판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관련 백악관 연례 보고서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기능적 이상향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노동시장에 대한 우려가 눈길을 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인공지능의 대두로 인해 위협을 받는 직업군은 최대 49%에 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노동시장 외적인 문제도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류사회 전체에 새로운 로봇 파시즘이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이 단적인 사례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리는 미래는 이러한 인류의 딜레마를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소위 강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넘어 초 인공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 시대를 경계하고 있다.

무엇이 현실이 될까?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찬양하는 쪽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를 통해 통계학적 관점에 따라 인공지능의 발전이 빨라질 것이며,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인류의 행복이라는 근원적 가치와 절묘하게 융합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도 분명 있으며, 이들은 인공지능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끌어낼 수 있는 공포의 앙골라 마왕이라 규정한다.

이 문제는 노동시장 및 인공지능과 인류의 대결, 혹은 화합을 전제로 논의될 문제들이다.

기술이 직업을 바꾸다

인공지능은 어떤 방향성을 가질까?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IBM의 왓슨을 과연 인공지능이라고 불러야 할까? 다양한 담론이 넘실거리지만 이 문제는 역시 노동시장적 측면에서도 깊이 다뤄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전이 직업을 바꾸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경제 아젠다와 각 생태계의 충돌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태초 인류경제는 노동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의 태생적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간격을 크게 좁혔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인류에 불을 선물했으며, 불은 곧 인류의 모든 것이 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당시까지 존재하던 대부분의 기술이 인류경제의 본원적 노동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에서, 증기의 발견은 곧 노동력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 혁명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대체의 개념으로 보기 어렵지만 이러한 공식은 기술의 발전으로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의 시대 초입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자연스럽게 직업의 개념도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 체제의 대체재, 혹은 연장선상에서 온디맨드의 등장이 벌어져 수요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직업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으며, 사라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역사시대 전반에 거쳐 꾸준히 보여지던 변화지만 그 속도와 간극이 더욱 극단적으로 변한 분위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초연결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며 무조건적인 기술의 발전을 탐해야 할까? 노동시장의 위기를 고려하면 그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술의 발전이 현실의 문제를 증폭시킬 경우 대승적 차원에서 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비롯한 기술의 성장은 곧 인류의 비전이며, 당연히 이행되어야 한다는 반론을 펼치기도 한다.

▲ 출처=위키미디어

기술과 시장의 상관관계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적으로 체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급진적이지만 매력적이다. 이들은 지금도 SNS나 온라인 공간에서 ‘미래 ICT 사업을 위해 기술의 발전을 독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자신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순간을 꿈꾼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바로 출판시장이다. 최근 송인서적이 부도처리 되며 국내 출판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가 일정정도의 지원에 나선다고 하지만 사기업에 불과한 송인서적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출판사들이 송인서적에 책을 납품하고 받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될 전망이다.

송인서적은 왜 무너지고 있을까? 다양한 원인이 제기된다. 도서정가제 실시로 인한 중소업체의 몰락, 대형서점 쏠림 현상 등이다. 대형서점의 경우 출판사와의 직거래를 통해 책을 확보하지만 소규모 출판사는 송인서적 등의 도매점을 통해 책을 납품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이 과정에서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는 등의 변곡점이 덧대어지는 한편 몸집을 불린 대형서점이 오프라인 영역을 확장하자 ‘출판사-도매점-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고착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출판시장의 위축이다. 실제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해 출판시장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업계 전체 매출이 4조278억 원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이는 2015년과 비교해 무려 4.8%나 내려간 수치다. 당연히 출판업 종사자도 줄어들어 2015년과 비교해 3.7% 줄어든 2만8483명으로 알려졌다.

출판업 불황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기술의 발전을 거론한다. 책을 오프라인에서 구입하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등 나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침투하면서 오프라인의 사용자 경험을 기민하게 잡아낸 대형서점은 한 숨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도매점을 끼고 근근히 운영되던 중소 출판사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논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명확한 단면이 있다. 출판시장이 기술의 발전으로 쇠퇴하고 있을까? 쇠퇴라는 전제를 세운 상황에서 전자책 시장이 전체 시장에 상승동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하나의 아이템을 두고 벌어진 구시대의 방식과 신시대의 방식은 무조건적인 대결논리가 아니라 일종의 보완, 융합의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전자책 시장은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 업계 강자인 리디북스는 2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이 구시장을 줄어들게만 하는 것일까? 서로의 강점을 살려 시장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변화의 적응체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 사람이 있었다

시장의 발전과 크기, 질적인 성장을 고려하면 기술의 발전은 무조건적인 ‘선(善)’이다. 오히려 구시대의 비경제적인 불합리함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송인서적의 몰락을 출판업계의 불황에서 기인한 비극으로 이해하는 목소리가 중론이지만, 일각에서 어음을 남발하는 유통구조도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 이유다.

전자책 시장은 커지고 있으며 기술은 대립의 요소가 아니다. 자율주행차가 운전기사의 직업을 빼앗아도 ‘이동’과 관련된 사업은 O2O적 관점에서 LBS의 무기를 타고 또 다른 킬러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법이다. 기술 그 자체는 죄가 없다.

그러나 전체 시장의 크기가 커지고 이용자 입장에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마지막 남은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뒷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모든 기술적 발전에 대해 찬란한 부분만 강조해도 노동시장의 문제만큼은 기술의 원래취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술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며, 노동은 그 안락함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맞다. 시장의 발전이 기술적 진보와 연결되어 풍부한 스펙트럼을 자랑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이 행복해하는 바로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