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론 머스크는 한때 파산 직전까지 갔다. 당장 처가댁 지하실로 이사를 가야 할 판이었다. 불과 2008년 일이다. 세계가 금융위기로 흔들렸던 시점이다. 머스크라고 해서 시대의 흐름을 피해갈 순 없었다. 그가 누구인가. 테슬라 모터스를 창업한 혁신의 아이콘 아닌가.

머스크 역시도 실패를 피해갈 순 없었다. 치명적 위기는 그의 또 다른 회사 스페이스X로부터 불거졌다. 로켓 ‘팔콘 1’을 우주로 쏘아올리려던 머스크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 첫 발사 당시 팔콘 1은 날아오르자마자 화염에 휩싸여 불타버렸다. 야심차게 준비한 2~3차 발사도 실패로 끝나버렸다.

그런 도전은 돈을 축내는 일이었다. 절박했기 때문일까. 위기 속에서 한 줌의 행운이 뒤따랐다. 2008년 9월 드디어 로켓 발사 시험이 성공을 거뒀다. 머스크와 스페이스X의 위상은 뒤바뀌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스페이스X에 1조6000억원 상당 로켓 발사 계약서를 제시했다. 지금의 머스크를 있게 한 순간이다.

위험을 감수한 절박한 도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머스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머스크는 혁신적인 꿈을 꾸고 있다. 2025년에는 화성에 사람을 보낼 계획이다. 적어도 100만명을 화성에 이주시켜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허풍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실패는 하나의 옵션입니다. 만약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머스크가 그랬다. 실패와 혁신을 오가는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테다. 이런 말도 했다. “가능성이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나가는 거죠.”

▲ 출처=테슬라

벤치마킹? 검증된 방법은 이미 낡은 것

머스크가 독특한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혁신적인 글로벌 IT 기업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태도다. 구글은 어떤가.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기로 이미 유명하다. 그들은 실패가 무서워 새 프로젝트에 도전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실패로 여긴다.

실패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그걸 칭찬하기도 한다. 여기엔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정신이 반영됐다. 이미 검증된 방법은 낡은 것이라는 철학 말이다. 구글은 여전히 검증 안 된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이는 분명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실패의 기운이 감돈다. 혁신이 이런 영역에 잔존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잘 알려진 구글X는 구글 철학의 정수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비밀연구조직이다. 눈앞에 보이는 10% 이익 대신 10배의 성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물론 실패 확률이 높은 프로젝트들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구글은 무모한 도전을 지원해 혁신에 가닿으려 한다.

 

미국에만 혁신 에너지가 가득한 것은 아니다. 중국 회사들도 기존 짝퉁 이미지를 버리고 혁신 경제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DJI는 대표 사례 중 하나다. 2006년 문을 연 DJI는 현재 세계 소비자드론 시장 1위 회사다. 이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론’이라고 하면 DJI의 제품을 떠올릴 정도다.

DJI가 드론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벤치마킹 대상이 없었다. 오히려 선례가 없다는 것에서 잠재력을 봤다. 직원들은 지금껏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DJI에서 현실화되는 모습을 확인했다. 성공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은 오너십(Ownership)으로 무장하게 됐다. 선례가 없어도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DJI의 핵심 동력이다.

성공률 100%의 프로젝트? 혁신은 0%

그들이 닮은 구석이 있다. 선례를 모방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위험을 감수한 도전으로 혁신을 이뤄냈다.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을 체화한 리스크 테이커(Risk-Taker)들이다. 리스크 테이킹은 지대 추구(Rent-Seeking)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혁신을 불러들이는 기업가 정신과 맞닿아 있다.

“리스크 테이킹은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결단이다. 기업 경영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으면 발전하기 힘들다. 사업 확장을 명분으로 승산이 없는 곳에 마구 투자하는 것도 문제지만, 실패가 두려워 현상 유지에 급급한 태도는 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우화경영>의 저자 장박원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리스크 테이킹이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기업가를 불확실성의 요건 속에서 위험을 계산하고 결정을 내리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규정한 뒤 기업가와 자본가 사이에 분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피터 드러커 역시 리스크 테이커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이다. 그는 혁신의 기회가 이미 존재하고 이익이 기대되는 분야에서 기존 자원을 최적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봤다. “이론적으로 기업가 정신의 발휘는 가장 위험한 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덜 위험한 것이어야만 한다.”

 

이런 이론적 뿌리를 바탕으로 미국의 기업자들은 리스크 테이킹을 실천해 혁신을 이뤄냈다. 이는 DNA 차원으로 내려앉아 계승되고 있다. 혁신의 주역들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특히 리스크에 관한 언급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을 회피하는 순간 혁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것 말이다.

“리스크 테이킹이라는 것은 실패를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분야의 리더가 되려면 투자금을 날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하죠. 성공률이 100%인 프로젝트가 있으면 거기에서 혁신은 0%일 겁니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의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는 “시장의 과거나 현재의 상황만 보아서는 안 된다”며 “크게 이기려면 때로 큰 위험을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기억하라. 스스로가 리스크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리스크가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실리콘밸리 키드들은 이들의 정신을 계승해 위험한 도전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텐센트가 인수한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이 위험과 실패를 다루는 방식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이들은 실패를 환대한다. 샴페인을 터트려 축하한다. 실패로부터 얻은 걸 축하하기 위해서다. 만약 1년 동안 실패보다 성공이 많았다면 그들은 실망한다. 모험을 안 했다는 뜻이니까. 슈퍼셀 직원들은 실패의 경험은 혁신과 성공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