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품격 더치페이 문화를 권하는 카카오페이의 밥톡 캠페인. 출처=카카오 블로그

당구장이 다시 뜨고 있다. 하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은퇴하고 시간 여유도 많아지는데, 그들이 놀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5060들에게 가장 익숙한 데다 돈도 많이 들지 않는 당구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지역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당구장에서는 두당 1만원이면 한두 시간 충분히 놀 수 있다. PC방보다 익숙하고 스크린 골프장보다 싸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씨가 마를 위기였던 당구장이 하나둘씩 부활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내기 당구를 치는 게 아니라 ‘더치페이’를 한다는 점이다. 왕년에는 대개 진 사람이 당구 비용은 물론이고 짜장면 값까지 뒤집어썼는데, 이제는 더치페이를 한다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내기 당구의 스릴도 얇은 주머니 사정 앞에서는 사치인 셈이랄까? 전에는 거의 없던 더치페이가 늘어나면서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트렌드 읽어주는 남자로 유명한 김용섭이 2017년 라이프 트렌드를 주도할 그룹 중 하나로 ‘더치페이어(Dutch Payer)’를 꼽았다. 그러면서 더치페이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 있는 가장 뛰어난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혼밥과 혼술이 보편화되는 시대, 더치페이가 대수겠는가. 그나마 더치페이는 무언가 함께 하기라도 하는 거다. 더치페이마저 불편하다면, 결국 혼밥과 혼술밖에 남지 않는다. ‘함께 하되 따로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대 2030들이 가진 보편적 코드다. 데이트 비용마저도 더치페이하는 시대인데, 직장 동료나 선후배 사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 더치페이는 어려운 시기에 함께 하는 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실제로 더치페이는 그 세를 빠르게 불리고 있다. 얼마 전 알바천국이 20대 대학생 8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데이트 비용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바람직한 데이트 비용 분담률을 5:5로 꼽은 응답자가 58.4%였다. 10명 중 6명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건 놀라운 변화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미혼 남자는 79%, 미혼 여자는 72.3%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남자가 집을 해결하고 여자가 혼수를 준비하는 건 오랜 관행이자 관성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미혼 남녀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결혼 비용 총액을 반씩 부담하는 걸 선호한다. 물론 이는 절대적인 수치보다는 각자 형편을 고려한 심리적 분담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요즘 결혼하려는 남녀가 경제적 부담에서 양성평등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적 평등이자 관계의 평등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더치페이의 효과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썩은내가 진동하는 이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2015년 기준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59만1694개 법인이 한 해 동안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9조9685억원이다. 다시 말해 매일 어디에선가 이해관계에 얽혀 270억원어치 술, 밥,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에서 쓴 접대비만 1조1418억원이다. 유흥업소 접대비는 2008년부터 8년 연속 1조원 돌파다. 게다가 이 금액은 가장 작게 잡은 것이다. 비자금으로 만들어진 현금을 쓰거나 다른 항목으로 쓴 것은 애초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실질적인 기업 접대비는 수십조에 이를 거란 설도 있다. 김영란법이 있어도 여전히 편법으로 피해 갈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은 진지하게 묻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접대비를 많이 써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걸까? 부정부패를 막으면 한국 기업이 죽고 경제도 위축되는 걸까? 물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접대를 잘하는 것이 비즈니스를 잘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두 눈으로 생생히 보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듯이, 이해관계를 사이에 두고 접대하고 접대 받는 구시대적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위기,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더치페이란 말에서 냉기가 느껴져 이를 유독 금기시했던 필자도 이제 대세를 따르기로 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더치페이는 모범생의 논리처럼 흠 잡을 데가 없다. 그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더치페이가 부정부패가 만연한 환경을 바꿀 가장 기본적인 문화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무릎을 칠 만하다. 얻어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더치페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부정부패가 끼어들 틈은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도 해석이 분분한 김영란법의 핵심도 결국은 더치페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