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는 지구를 지키는 어벤져스 영웅들의 분열을 다룬 영화다. 정부가 어벤져스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명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발표하자 이를 지지하는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하는 내용이 골자다. 흥미로운 점은 찬성파의 핵심이 바로 토니 스타크, 즉 아이언맨이라는 점이다.

천재 과학자이자 자유분방하고 유머감각 넘치는, 히피적 감성이 충만한 아이언맨이 규제의 대명사인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언맨의 탄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원래 자유롭고 파격적인 사람이었으나 무기상으로 활동하던 시기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를 체제 신봉자로 만들었으며, 완벽한 규범 주의자로 만드는 동기가 된다. 자유롭고 자유로웠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끔찍하고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고, 결국 철저한 시스템 신봉자가 된다는 설정이다.

▲ 출처=공식 홈페이지

비슷한 사례는 현실에도 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들을 '해적'이라고 표현한다. 부정적 의미의 해적이 아니라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루피 일행을 상상하면 편하다. 그들은 모험가이며 몽상가이자, 혁신가이며 꿈꾸는 자들이다. 규범과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과 연결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최근 보여지는 페이스북의 행보는 느낌이 다르다. 강력한 자기검열의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최소한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인상을 풍긴다. 언론은 물론 표현의 자유까지 대거 개입하며 연결의 플랫폼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미국 미네소타 세인트폴 인근에서 경찰이 쏜 총에 흑인 남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극적이다. 당시 경찰의 총격에 흑인 남성이 사망했고 이를 남성의 약혼녀가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하며 논란이 커진적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당시 페이스북이 해당 동영상을 선택적으로 열어둔 장면이다.

▲ 출처=페이스북

이에 마크 저커버그는 “우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본 것은 시각적이며 가슴 찢어지는 장면이다. 한편으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중 수백만 명이 매일 마주하는 두려움의 일부를 본 것이기도 하다”며 “나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디오를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비디오는 우리가 왜 힘을 모아야 하고, 더 소통해야하며 또 연결돼야 하는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려 준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저커버그의 메시지는 페이스북이 앞으로도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내용을 고발하는 종류의 영상 검열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충격적이라도 뉴스가 될 만한 내용이면 그대로 둔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 인륜적 범죄에 대한 라이브 중계에 다양한 비난이 쏟아졌다. 덩달아 연결을 매개로 삼는 플랫폼 사업자의 공적인 처신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선 정국 당시 소위 가짜뉴스 사태가 벌어져 논란은 더욱 커졌다. 대선 이후 트럼프와 관련된 허위 뉴스를 거르지 않고 내보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 존재하는 허위 뉴스는 1%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며 강하게 부인했으나 논란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서 페이스북은 서서히 변한다. 검열을 매개로 연결의 플랫폼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마크 저커버그가 검열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는 폭로가 나오는가 싶더니, 기어이 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정밀한 팩트채킹을 통해 허위 뉴스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자들이 허위 뉴스로 의심되는 기사를 신고하면 이를 검증하는 외부기관의 팩트채킹을 거쳐 뉴스 유통을 제한하는 시스템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조각상인 넵투누스 동상도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검열하기도 했다. 히피스러운 해적이 시빌워의 아이언맨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보면 페이스북의 아이언맨 변신은 꽤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월 퓰리처상을 받은 네이팜탄 소녀의 사진을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삭제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만 흑인 남성 총격사건 등을 보면 당시만해도 페이스북의 검열 의지는 이견의 여지가 있었으며, 최근에야 이러한 기조가 더욱 강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지난해 11월 중국 진출을 위해 맞춤형 검열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대목이 시기적으로도 의미심장한 이유다.

▲ 출처=페이스북

종합하자면 페이스북은 검열에 있어 최근까지 이중적 모습을 보이며 나름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거두기도 하면서 상황을 살폈다. 당시에는 검열에 대한 잣대가 명확하지 못했던 분위기도 역력했다. 국내에서 '블루일베'라는 비판을 받았던 당시 페이스북 코리아는 "외국에서 키워드 중심으로 검열을 하기 때문"이라고 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분명 기계적인 검열이었으며 검열 그 자체에 대한 의지는 낮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검열 일변도로 나가는 분위기다. 이는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동성을 체험한 결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중국 맞춤형 검열 시스템은 '시장 장악'을 위한 일종의 투트랙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페이스북이 플랫폼에서 일종의 생태계 조정을 담보하는 미디어로 변신하는 장면은, 국내의 아프리카TV의 변신과도 닮았다. 다양한 규제 및 제한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검열에 나선 아프리카TV의 방식은 페이스북의 변신과 궤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연결을 매개로 삼은 플랫폼 사업자의 비애일까.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대가는 누가 치뤄야 할까? 우리는 아직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다. 무조건 페이스북과 아프리카TV를 비판하기에는 뒷 맛이 개운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