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승현은 아시아인 최초로 대영박물관에서 시계 복원가로 활동했다. 출처=본인제공

그를 보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떠오른다. 수백 년 전 시계를 만지던 그가 지금은 시계 업계의 최첨단에 서있다. 현재 스위스 최대 시계 그룹 CS 매니지먼트 팀에서 근무 중인 오승현 씨는 영국 거주 시절,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시계들을 깨우는 시계 복원가였다.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이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시계 복원가로 활동한 그를 만나 시계에 관한 일문일답을 나눴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

 

▲ 슬레이브 클락의 녹슨 부품(좌), 복원을 마치고 연결에 성공한 마스터 클락과 슬레이브 클락. 출처=본인제공

인스타그램 소개 글이 눈에 띈다. ‘was a Clockmaker’. 왜 시계 제작자가 되었나?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계를 좋아해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좋은 시계를 차게 되었다. 스포티한 느낌의 태그호이어 시계였는데, 그 이후로 시계와 사랑에 빠져 다양한 시계를 사 모았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도 차고, 스물다섯 살엔 당시 꿈의 시계였던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손에 넣었다. 심지어 군대 휴가 나와서도 IWC 아쿠아타이머를 살 정도로 시계를 좋아했다. 군 복무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 중 전공보단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계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국에서 시계 복원 일을 했다고 들었다. 스위스가 아닌 영국으로 향한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처음엔 스위스를 생각했다. 그런데 스위스 유명 시계 학교인 워스텝(WOSTEP)은 주로 전문적인 시계 제조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에 가깝더라. 개인적으로 아카데미보단 대학교에서 보다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어 영국으로 향했다. 현대 시계(watch) 관련 학과가 아닌 시계(clock) 복원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복원 자체가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으니 훨씬 진지해 보였다. 영국 웨스트 딘 칼리지가 시계(clock) 복원 부문에선 세계 최고이기도 했고.

 

복원했던 시계 중 가장 인상 깊은 시계는?
대영박물관에서 시계 복원을 시작하자마자 맡았던 시계. 지금처럼 시계가 흔치 않던 시절엔 정부가 시간을 컨트롤했다. 기차역이든지, 우체국이든지 각종 관공서에는 마스터 클락(Master Clock)이 있고, 여기에 여러 개의 슬레이브 클락(Slave Clock)이 연결되어 있어 마스터 클락이 움직이면 슬레이브 클락이 따라서 움직이는 형탠데, 내가 대영박물관에 취직한 당시엔 마스터 클락만 복원되어 전시돼 있었고, 수장고에 슬레이브 클락 두 개가 잠들어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이 둘을 살려 마스터 클락과 연결하는 미션(?)을 받았고, 복원에 성공해 마스터 클락과 연결했을 때 느낀 그 전율은 정말 잊을 수 없다.

 

▲ 경매에서 낙찰 받아 직접 복원한 1800년대 프랑스산 테이블 클락. 출처=본인제공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빈티지 시계가 있는가?
있다. 이 시계도 복원했던 시계 중 가장 인상 깊은 시계인데, 영국 유학 시절 경매에서 직접 산 클락이 하나 있다. 18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프랑스산 테이블 클락인데, 외관은 샹르베 에나멜 기법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고 다이얼 부분은 도자기와 금으로 제작되어 있다. 기능도 남다른데, 알람 기능, 30분마다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차임 기능 그리고 미닛 리피터까지 갖춘 데다가 클락에선 흔치 않은 중앙 초침까지 있다. 심지어 시계 위쪽에 밸런스 휠이 탑재돼있어 보자마자 ‘아, 이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이 붙어 예상했던 금액의 거의 두 배가 넘는 가격에 시계를 낙찰받았지만 시계 복원가로서 내 시계 하나는 사서 복원해야겠단 생각에 끝내 손에 넣었다.

 

반짝반짝한 새 시계 vs 손때 묻은 빈티지 시계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가?
그때그때 다르다. 그 당시에 반짝반짝한 시계를 차고 싶으면 새 시계를, 오래된 감성의 시계를 사고 싶으면 빈티지 시계를 찾을 듯하다. 마치 이런 것 같다. 선물 받을 때 모바일 상품권이 좋은지, 손편지가 좋은지 골라야 하는 느낌? 둘 다 좋은데, 그때 내가 어떤 감성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VS는 언제나 재밌다. 백 번은 들어봤겠지만 또 묻겠다. 롤렉스 vs 오메가, 당신의 선택은?
안정성과 인지도를 따지면 롤렉스가 맞고, 혁신성과 다양성을 생각하면 오메가가 맞다. 오메가는 새로운 시도를 굉장히 많이 하는 브랜드다. 반면, 롤렉스는 워낙 훌륭한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수정 보완할 뿐 오메가만큼 버라이어티한 시계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시계로 꼽은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 출처=브레게

시계 전문가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 몇 개 있다. 주변에서 시계 추천해달라는 말 많이 듣지 않나? 예물 시계나 부모님 선물, 애인 선물 등등… 나만의 시계 추천 기준이 있다면?
사람들은 보통 디자인을 가장 많이 본다. 그런데 사실 시계 속 무브먼트나 방수 기능과 같은 기술력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시계 소비 시장이나 일반 소비자들에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시계 품질에 관련한 뒷이야기까지 고려해 주위 사람들에게 시계를 추천해주는 편이다. 디자인은 오래 차도 질리지 않는 무난한 쪽으로 권하고 싶다.

 

결혼할 때 예물 시계 할 생각인가? 한다면 어떤 시계?
사실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하게 되면 하겠지만(하하) 그리고 예물 자체를 안 할 생각이다. 이런 허례허식은 근절되야 한다!

 

이쯤 되니 시계에 대한 당신의 철학이 궁금해졌다. 차보다 (때론 집보다) 비싼 시계 가격에 의문을 품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묻겠다. 명품 시계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싸다고 생각하는지?
일단, 첫째로 시계는 사치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격 자체가 이미 높게 형성되어 있고, 시계를 만들고 파는 입장에서 이미 높아져 있는 가격을 굳이 내릴 이유는 없다. 둘째로, 시계를 조립하고 A/S를 할 때도 모두 사람의 손이 가니 이에 따른 인건비와 시계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기술력에 대한 연구 비용 그리고 시계에 사용되는 소재 값을 고려하면 시계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비싼 시계를 사서 금고에 모셔 두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말 그대로 ‘수집’이 목적이라면 오케이.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시계를 신선한 음식 재료에 비유하고 싶다. 싱싱한 야채를 샀으면 바로 조리를 해서 먹어야지 냉장고에 넣어 놓고, 냉동실에 얼려 두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계도 샀으면 가격이 얼마가 됐든 손목에 차는 게 맞다. 금고에 넣어두고 싶으면 차라리 금괴를 사라.

 

▲ 편리한 기능 덕에 거의 매일 착용하는 애플워치. 출처=본인제공

손목 위 애플워치가 눈에 띈다. 시계 업계의 뜨거운 감자, 스마트워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스마트워치를 ‘워치’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스마트 기어(Gear)나 포터블 디바이스(Portable device) 정도로 부르고 싶다. 단지 손목 위에 있다고 해서 워치라고 할 순 없다. 시계의 존재 이유는 시간을 알려주는 게 첫째다. 그런데 애플워치를 비롯한 스마트워치의 최우선 기능이 시간 확인이 아니지 않나. 오히려 핸드폰을 더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어나 디바이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애플워치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편리하니까. 그리고 시계는 어떤 브랜드, 어떤 모델을 찾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취향, 성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반면, 애플워치나 갤럭시 기어는 사용자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해주지 않는다. 핸드폰이랑 똑같다. IT 기기, 전자기기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해줄 순 없는 법이다.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되나? 얼마 전 장롱 속에서 부모님의 예물 시계를 발견했다. 감정 및 수리에 관한 팁을 주자면?
무조건 공식 A/S 센터로 달려가라. 심지어 시계 배터리 하나를 갈더라도 동네 시계방 가는 건 반대한다. 왜냐하면, 시계 백 케이스를 여는 순간 안에 있는 부속품이 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그리고 시계를 잘못 열면 케이스에 손상이 가 방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식 A/S 센터는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수리 후 방수 테스트까지 마친 완벽한 상태로 고객에게 시계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혹자는 예지동이나 남대문의 사설 중고 시계 수리점에 가면 A/S 센터의 1/10 가격에 시계를 고칠 수 있다고 권하던데...
1~2년 차고 버릴 시계라면 수리 비용이 저렴한 중고 시계 수리점에 맡겨도 상관없지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시계라면 공식 A/S 센터를 가는 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