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역성장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포스트 스마트폰 경쟁이 빨라질 것이라는 익숙한 레퍼토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살피면 꼭 그렇지도 않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분기 보고서인 마켓 모니터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나름의 회복세를 보인 셈이다.

▲ 출처=펙셀

시장의 판도를 보자
물론 본 결과는 단기적 관점에서 시장의 흐름을 살폈기 때문에 큰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다만 포스트 스마트폰에 대한 니즈가 여전한 상태에서 시장이 아직 확실한 대체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다림만 벌써 2, 3년이 되어간다. 결국 시장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으나 포스트 플랫폼이 확실한 존재감을 살리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스마트폰의 생명력이 단기적 관점에서 출렁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결정적 배경은 없을까? 시장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권력이동이 주효한 이유다. 바로 중저가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사실 중저가 스마트폰은 점유율적 측면에서 꽤 장기간 위력을 발휘했다. 샤오미로 대표되는 중국 스마트폰 다크호스 1세대가 가성비라는 무기를 탑재하고 점유율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2013년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가 18.5%로 부동의 1위, 화웨이가 12%로 2위, 레노버가 11.7%로 3위, 쿨패드와 ZTE가 각각 10.4%, 9.5%로 4위와 5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2분기 샤오미의 기습이 시작됐다. 샤오미가 단숨에 1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꿰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2.3%의 점유율로 2위로 내려갔으며 레노버, 쿨패트, 화웨이가 나란히 3, 4,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출처=샤오미

다만 이러한 흐름도 오래가지 못했다. 화웨이가 단숨에 1위를 차지하나 싶더니 갑자기 비보와 오포가 왕좌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톱5에서 완전히 밀려났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비보와 오포가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여주며 승승장구할 무렵, 샤오미의 하락도 시작됐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샤오미 스마트폰 신화는 2세대 다크호스의 등장으로 최소한 중국에서는 명맥이 끊겼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 대목에서 샤오미는 인도 시장에 박차를 가해 나름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권 협력 등 다방면에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소위 ‘만물상의 샤오미 시대’가 열린 셈이다.

즉 중저가 스마트폰에 대한 니즈는 꽤 장기간 우리의 옆에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대목은, 이러한 존재의 가치가 당장의 시장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점이다. 실제로 중저가 스마트폰의 등장은 기술상향표준화의 기조를 타고 당장 스마트폰 시장의 격변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프리미엄의 가치도 만만치 않았다. 즉, 중저가 스마트폰은 프리미엄의 가치와는 완전히 동 떨어진 시장으로 분류됐다는 점이다.

이는 프리미엄과 중저가의 시장이 일종의 쌍두마차 개념으로 시장의 외연적 성장을 끌어냈고, 각자의 시장 구성원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수익성의 핵심은 프리미엄이기에, 여전히 시장은 프리미엄의 가치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근 2, 3년을 지나며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이 아닌, 스마트홈의 시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제야 중저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중저가 시장에 대한 니즈는 있었으나 일종의 투 트랙의 하나에 불과했다. 판을 바꿀 게임 체인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갤럭시노트7 발화 및 아이폰7에 대한 혹평 등을 타도 나름의 존재감을 품어내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삼성전자는 J시리즈와 S7/엣지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북미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유지했다. 유럽과 남미, 중동 지역에서는 2위와 큰 간격을 두고 여유로운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북미 시장에서는 애플과, 아시아 시장에서는 오포 등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순위 다툼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LG는 북미와 중남미 시장에서만 각각 3위와 2위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5위 밖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 2분기에 유럽 등 기타 지역에서 순위권 내에 자리했으나, 3분기에는 중국 업체, 특히 화웨이에 밀려 순위가 하락했고 글로벌 순위 톱5에는 아예 들어가지 못했다.

애플은 북미 시장에서 점유율 33.7%를 기록하며 2분기에 삼성전자에 내주었던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아이폰 7 1차 출시국에 중국을 포함한 것이 3분기 매출에 호재가 됐다는 분석이다. 아이폰 7 플러스에 대한 시장의 호응도 높았다는 후문이다.

▲ 출처=앱텔리전트

무엇을 의미할까? 갤럭시노트7이라는 프리미엄의 가치가 없어도, 이제 중저가 스마트폰 점유율로 전체 시장의 점유율을 나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뜻이다. 이 역시 프리미엄 제조사의 틀에서 중저가의 새로운 발견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정리하자면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으로의 완벽한 권력쏠림은 예단할 수 없으나, 가성비에 집중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저가에 대한 니즈는 프리미엄 제조사에서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 자체는 프리미엄의 가치가 더욱 빛나며, 이제야 중저가의 가치가 빛나는 배경에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존재감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도 갤럭시S8, 아이폰8 등의 등장으로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시작된 중저가 브랜드의 가치는 제조사 입장에서 당장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나름의 연속성을 타고 넘어와 중저가 브랜드만 취급하는 기업들을 누를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게 만든다. 비보 및 오포가 오프라인 마케팅을 타고 넘어와 가성비에 중심을 두는 상황에서 타깃별 마케팅 및 나름의 특화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시장을 장악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출처=화웨이

중저가가 아닌, 실속
새해 스마트폰 시장은 여전히 중저가 바람이 강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러한 중저가의 강점이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의 점유율 방어적 측면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다른 제조사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나아가 인도시장을 중심으로 신진시장에 대한 열망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각 제조사들의 전략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메이드 바이 구글로 대표되는 구글의 하드웨어 일원화 전략은 나름의 초연결 인프라를 지향하는 부품으로 사용될 것이며, 인공지능이 플랫폼으로 스마트폰에 이입되는 방향성도 예상된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외산 스마트폰의 국내 공세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외산폰의 무덤이다. 일단 원인부터 짚어보면, 당연히 국내 제조사의 존재감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 합이 90%에 달하는 상태에서 외산 스마트폰에 대한 '니즈'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브랜드 충성도다. 외산 스마트폰의 경우 라디오, 흑백TV에 뿌리를 둔 국내 제조사의 벽을 넘어서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최정상급의 제조사들이 포진한 상태에서 외산 브랜드 대부분이 중저가에 방점을 찍었던 것도 양날의 칼이라는 평가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프리미엄 경쟁을 넘어 중저가, 즉 가성비 경쟁으로 분위기가 바뀌자 외산 스마트폰의 대응도 빠르게 벌어졌으나 이 역시 국내에서는 양날의 칼이 되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가성비에 대한 니즈가 생겼으나 프리미엄의 수요는 여전하다는 것이 갤럭시S와 아이폰 매출로 잘 증명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중저가로 방향을 잡았던 외산 스마트폰 업체들이 다시 프리미엄으로 방향을 틀어 국내에 진출한다고 해도, 각인된 브랜드 가치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가격적인 문제도 있다. 삼성전자 및 LG전자의 스마트폰은 통신사와의 협력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책정하고 있으나 외산폰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격 자체가 합리적인 수준이지만 아예 프리미엄의 가치를 추구하며 가격을 올렸다가 보조금으로 내리는 경우와, 처음부터 중저가를 표방하는 경우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 상황에서는 중저가 경쟁이 어떤 방식으로든 시작되고, 하드웨어 경쟁이 프리미엄을 중심으로 중저가 스마트폰까지 나름 적절하게 확대된다면 외산 스마트폰에게도 한 방이 있어 보인다. 여기에서 출시 간격을 조정하고 중저가에 더욱 힘이 실린다면, 외산폰의 반격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