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8일 칩셋 및 특허권 시장에서 시장 지배자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퀄컴에 과징금 1조300억 원과 함께 시정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애플을 비롯해 인텔, 삼성과 LG 등 주요 플레이어들이 공정위의 판단에 큰 도움을 준 상황에서 업계의 분위기는 '퀄컴 때려잡기'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본원적 의문은 남는다.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정위의 이번 결단은 표준필수특허(SEP: Standard Essential Patents)의 영역과 특허괴물의 정의, 나아가 라이선스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합법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한편,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단위 무역전쟁의 시각에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출처=퀄컴

과징금 부과 근거는 크게 3가지다. 경쟁 모뎀칩셋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칩셋 제조판매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에 대해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한했다는 것과 칩셋 공급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연계해 칩셋 공급을 볼모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 체결이행을 강제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휴대폰 제조사에 자신의 특허 전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면서 정당한 대가 산정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라이선스 조건을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퀄컴이 기술을 핵심으로 삼아 경쟁사를 고사시키고, 한국에서만 지금까지 무려 38조원의 수익을 올려 '국부유출'의 측면에서 심각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상황판단이 깔린다.

퀄컴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위의 최초조사 자체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있는 불순한 의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루한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지난해 2월 중국과의 분쟁과 이번 공정위의 판단이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당시 중국 반독점 당국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퀄컴에 대해 중국 내 스마트폰 제조업체로부터 휴대폰 가격의 5%에 달하는 특허 수수료를 받아온 것이 '특허권 남용'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중국의 조치에는 휴대전화 가격의 로열티를 조정하는 내용이 있지만 공정위에는 없다. 다만 계약 관련된 시정조치가 있다. 이번 조치가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냉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 29일 한기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은 MBC 라디오 '세계는 우리는'에 출연해 퀄컴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및 시정명령에 대해 우려를 보여 눈길을 끈다.

한기철 초빙연구원은 공정위의 퀄컴에 대한 과징금 적용을 두고 "2G, CDMA이동통신을 할 때는 그 모든 기술과 부품이 전적으로 퀄컴에서만 나왔으나 이제 3G, 4G, LTE로 넘어오면서 표준기술 자체가 이미 공지되어 있다"며 "그 다음에 3G에는 많은 특허기술들이 추가로 다른 제조업체나 저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도 일부 특허기술을 3G에 표준으로 채택하게 함으로 해서 기술료를 별도로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했다.

나아가 "2G 당시 독점적이던 CDMA기술이 3G와 4G로 넘어오면서 퀄컴이 차지하고 있는 특허기술의 비율은 상당히 낮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특허기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공개의 형태를 가진다는 뜻이다.

또 크로스 라이선스에 대해서는 '특허기술은 많이 공개가 된 상황'이라는 전제로 "제조업체들이 퀄컴하고 나름대로의 크로스 라이선스를 통해 해당 기술료를 많이 줄이고 있는 걸로 안다"며 "각 제조업체들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지고 해야 될 사안"이라고 정리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크로스 라이선스에 대한 퀄컴의 갑질을 각 제조업체들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리하자면 독점기술의 폐혜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될 수 있으며, 또 해결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는 특허 라이선스에 대한 부분도 나름의 방향성을 찾으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방법론도 깔려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퀄컴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이, 국내 제조사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기철 초빙연구원은 가정이라는 전제로 "퀄컴이 1조원이라는 과징금을 낸다면 이후 나름대로 보상 받으려고 할 것"이라며 "만약 퀄컴이 최신형 칩이 나온 걸 삼성에는 6개월 후에 팔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반문했다. 퀄컴과의 연결고리가 여전한 상태에서 과징금에 대한 부담을 제품가격에 반영한다면 휴대폰이나 스마트폰 가격이 그만큼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오히려 반사이익을 애플에 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애플을 비롯해 칩셋 일반의 기업들이 공정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애플의 경우 최근 마진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 아이폰 위기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부분을 일부 떨치기 위해 퀄컴 물어뜯기에 유난히 열을 올렸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아이폰 배터리 이슈 당시 국내 홈페이지에 영어 설명서만 올렸다가 빈축을 사 부랴부랴 교체했던 애플은 비슷한 논란이 중국에서 벌어질 당시 본사 임원을 급파해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배터리 문제가 불거져도 신경을 거의 쓰지 않다가 공정위 제재에는 본사 임원을 보내기도 했다. 애플의 관심사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한기철 초빙연구원은 "서로 원만한 타협을 해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일각에서 공정위의 판단을 두고 기술 생태계 창출을 위해 투입하는 퀄컴의 노력을 무시하고, 특허권 자체에 대해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당장 외국계 기업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면 '속은 시원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악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퀄컴 과징금이 통상마찰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 역시 '우리의 생각'일 뿐, 차기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남중국해 분쟁을 기점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현재 정부는 '퀄컴 과징금은 통상마찰의 대상이 아니다'는 원리적이고 낙관적인 주장을 펴고 있으나 그렇게 따지면 정치 및 군사적 현안인 남중국해 이슈는 더욱 통상마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퀄컴은 외국계 기업으로는 드물게 국내 사회공헌에 전사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기기에 문제가 생겨 논란이 불거질 경우 홈페이지에 대충 영문 안내문을 걸어도 감내해야 하며, 독도를 자꾸 일본 땅이라고 우겨도 ‘그러지 마세요’라고 징징거릴 수밖에 없는 다른 외국계 기업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뜻이다. 이공계 인재를 위한 장학 프로그램, 퀄컴 IT Tour, 퀄컴 이노베이션 어워드, 위테크(WeTech) 글로벌 스콜러(Scholar) 프로그램, 코리아 로봇 챔피언십(Korea Robot Championship) 장학금, 어윈 제이콥스상(Dr. Irwin Jacobs Award), 사랑의 안심폰 프로젝트, 큐케어(Q-Care) 및 셀프 퀄리티 케어(Self-Quality Care) 프로젝트 등 글로벌과 국내 모두에서 막대한 사회공헌도 펼치고 있다.  모두 CDMA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배경에서 시작된 일들이다.

퀄컴에 대한 제재가 합당하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감정적이고 실속없는 헛발질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특허 라이선스에 대한 나름의 변화는 필요하다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다는 논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