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대 앞 거리는 새롭게 만들어진 골목길이 아니다. 1990년대 패션·뷰티에 특화된 강북 지역 주요 상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이대 상권은 인근 신촌 상권과 더불어 대부분의 기능을 새롭게 인기를 얻었던 홍대 상권에 넘겨 버리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비어 버린 점포들이 최근 새 주인을 찾고 있다. 

▲ '52번가'라고 불리는 이대 앞 골목 전경. 출처=이코노믹리뷰 김서온 기자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돼요” 서대문구 주민 센터 담당 공무원을 따라 기차역 신촌역에서 부터 골목 사이를 5분정도 누비다 보니 이대 정문 앞 대도로 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아담한 골목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 골목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개성 넘치는 패션과 문화의 상징이자 유행의 발화점이었다. 지금의 ‘이랜드그룹’도 6.6㎡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지금 연 매출 10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서울 강북지역을 대표하는 패션 상권으로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였다. 이대 상권은 인접해 있는 신촌과 함께 명동, 종로와 어깨를 나란히 해 ‘강북지역 3대상권’으로 손에 꼽혔다.

2008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박모씨는 “당시 이대 앞 골목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개성넘치는 옷가게와 소품가게가 즐비했다”며 “스타벅스 1호점과 미샤 1호점이 이대 앞에 있을 정도로 유행에 민감한 이대 상권에서 성공하면 어딜 가도 통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당시 화려했던 이대 상권을 회상했다.

패션메카였던 ‘이대 앞 골목’이 200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쇄락기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온라인 쇼핑몰의 영향과 2006년 들어선 오프라인 쇼핑몰 ‘예스apm’이 흥행에 실패하며 패션 상권으로서의 입지가 좁아졌다.

또 이화여대의 ‘이화(梨花)’ 중국어 발음이 ‘리화’와 비슷한데 이는 ‘돈이 불어나다’라는 뜻의 중국어 ‘리파(利發)’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과 동시에 젊은이들은 좀 더 새롭고 특색 있는 다른 상권으로 흘러갔고 이대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타겟으로 삼은 상권으로 탈바꿈했다. 유커를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지만 골목 안까지 소비가 이뤄지지 않고 이대 상권 특유의 분위기를 잃었다.

압구정에 본점을 둔 한 대형 헤어·메이크업 샵은 2015년 4월 오픈해 올해 6월 이대분점을 폐업했다. 지상파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들이 주 고객으로 공채가 없는 날에도 예약전화는 필수다. 샵 관계자는 “이대상권 프리미엄을 믿고 들어왔으나 기존 단골을 외에 새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수는 극히 드물었다”며 “전체적으로 상권 분위기가 좋지 않아 짧은 시간에 분점을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 1999년부터 이대 앞 골목을 지킨 터줏대감 가게가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김서온 기자

정문 앞 골목에서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킨 구둣가게 사장은 “예전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며 “찾아오는 발길도 뜸하고 임대료가 낮아지고는 있지만 낮아지는 임대료마저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이대 앞 골목에서 1999년부터 옷가게를 한 김모씨는 점포정리를 하며 “상권이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연초에 이전을 계획했다”며 “18년간 정든 곳을 떠나는 게 쉽지 않지만 더 좋은 상권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 이대 상권의 월임대료는 3.3㎡(평)당 5만3900원이었으나 2016년 이대 상권의 임대료는 3.3㎡당 2만7700원으로 1만 6200원으로 꾸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대 앞 골목에는 '골목 살리기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텅 빈 상가들이 많다. 출처=이코노믹리뷰 김서온 기자

신촌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상권의 무게중심이 이대에서 홍대로 넘어가면서 활기를 잃었다”며 “관할부서에서 두 팔 걷고 나서 골목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잘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렇듯 꺼져가는 이대 앞 골목 상권 되살리기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대문구청과 이화여대를 필두로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년들이 기업가 정신을 학습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예술과 문화, 기술이 결합된 청년창업문화 거리를 조성하는 것. 문화 중심지였던 이대 앞 골목 빈 점포들을 활용해 스타트업 모델을 발굴하고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52번가'로 불리는 이대 앞 골목 전경. 출처=이코노믹리뷰 김서온 기자

이미 대학생으로 구성된 6개 팀이 4곳의 스타트업 상점에 입주해 골목을 지키고 있다. 이화여대와 서대문구는 창업문화 조성과 더불어 개성 있는 골목 상권을 조성해 국·내외 관광객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 서대문구 지역활성화부 관계자는 “낙후된 골목을 재정비해 문화적 감성을 지닌 스마트 스트리트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이대 앞은 활동성이 크고 트렌드에 민감한 여대생 인구 밀집지로 ‘안테나 상권’으로 분류된다”며 “새롭게 런칭하는 브랜드들의 직영점으로 매출보다는 트렌드 파악이나 시장 확대 전 테스트 목적인 ‘안테나 샵’들이 입점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99년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도 이대 앞에 국내 1호점을 열었다.  

이대 앞 골목에서 20여 년간 중개업을 해온 공인중개사는 “이대 상권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되고 있는 것 같으나 아직 상권이 완전히 되살아났다고는 할 수 없다”며 “예전과 비교해 임대료가 대폭 낮아졌지만 여전히 떠나는 임차인들이 많아 그 귀추가 주목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