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라지고 있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지는 등 사실 따라가기에도 바쁜 시대에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와 맞물려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역시 너무나도 다양해진 모습이다. 구매의 수단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채널 확장이 일어나면서, 소비자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손에 쥐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소비의 중심에 서 있다.

기업들의 경우 이미 몇 년 전부터 ‘싱글’ 소비자를 주목해왔다. 실제로 싱글족이 소비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혼술’, ‘혼밥’ 등 혼자 하는 소비를 지칭하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지갑을 여는 싱글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들과 서비스가 넘쳐나고 있다. 이후 소비자들의 특징에 따라 마치 별명을 부르듯 업계에서는 다양한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소비자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신조어를 통해 이들이 소비를 하는 분야와 추구하는 가치 등을 살펴봤다.  

*탕진잼

# "주문한 수면 양말만 14개다. 각기 다른 캐릭터와 다른 색깔이기 때문에 2주 동안 매일 다른 양말을 신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다. 페이스북에 양말 사진을 인증했더니 ‘좋아요’가 순식간에 100개를 넘어섰다." – 대학생 허민정(23세) 씨   

탕진잼은 재물 따위를 다 써서 없앤다는 뜻의 ‘탕진’과 재미의 줄임말인 ‘잼’의 합성어로, 탕진하듯이 있는 돈을 다 쓰고 다니는 소비의 재미를 말한다. 그러나 과소비와 다른 점은 명품 등 비싼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소하게 낭비를 하는 것으로, 보통 1만원 이내의 생활용품 등을 구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티끌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다소 풍자적인 말이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지만 소비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나름의 방식인 것이다.

이에 명품으로 알려진 가방, 옷, 보석과 같은 사치품이 아니라 립밥, 핸드로션, 휴대폰 액세서리에서 커피나 젤리, 초콜릿까지 생활용품이나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돈에 구애받지 않고 다량으로 구입한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다이소 등의 매장들이 탕진잼을 추구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대표적인 핫플레스로 통한다.

*페이크슈머

# "해외 브랜드 화장품의 경우 섀도우 하나에 3만원이 넘는 경우가 많다. 이 제품과 색감이나 발림성 등이 거의 비슷한 국내 로드숍 브랜드 ‘저렴이’는 3500원이다. 테스트를 해보니 큰 차이가 없어 바로 결제했고 만족한다." –직장인 손민아(29세) 씨 

진짜 대신 가치 있는 가짜를 추구하는 소비도 주목된다. ‘속이다(Fake)’와 ‘소비자(Consumer)’가 합쳐진 신조어 ‘페이크슈머(Fakesumer)’는 실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최대한 비슷한 물건을 구입해 만족감을 얻는 소비자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장품 브랜드 미샤, 이니스프리,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더페이스샵에서 선보이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제품들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명품 브랜드 저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기다.

여러 캠핑 장비와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해야 하는 캠핑 대신 3~4만원대 인디언 텐트로 집안에서 캠핑 분위기를 내는 것도 주목된다. 또 100만원대 이상을 호가하는 한정판 피규어는 못 사지만 지하철에서 파는 5000원짜리 블록을 조립하면서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다.

아울러 가상현실(VR)을 통해 골프, 승마 등 다양한 스포츠를 실제로 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체험하고, 비싼 레스토랑 대신에 비슷한 메뉴를 살 수 있는 편의점 음식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애플의 10분의 1 가격인 샤오미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비슷한 기능의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대표적인 페이큐슈머의 소비패턴이다.  

*스테이케이션족

# "지난 여름 회사에는 해외로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 쾌적한 호텔방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놓고 하루종일 영화를 보니 이만큼 만족스러운 휴가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 김민호(36세) 씨  

지난 연휴에는 멀리 떠나지 않고 집에서 혹은 집과 가까운 호텔 등에서 머무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족이 눈에 띄었다. 집에 ‘머물며(Stay)’ 보내는 ‘휴가(Vacation)’를 뜻하는 신조어 ‘스테이케이션’은 같은 의미로 ‘집(Home)’과 ‘휴가(Vacance)’를 합쳐 ‘홈캉스(Homecan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상품이 나왔는데, 쾌적한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홈퍼니싱(인테리어)’과 레저 관련 상품들이 인기였다. 홈퍼니싱은 집을 단장하는 가구나 조명은 물론 벽지나 침구, 카펫, 인테리어 소품 등을 말한다.

아울러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는 스테이케이션족이 늘어남에 따라 호텔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패키지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편하게 예약이 가능한 호텔과 숙박 애플리케이션 역시 인기였다.

*얼리 힐링족

# "월세비, 차 기름값, 각종 공과금, 휴대폰 사용료, 보험비 등을 월급에서 내고 나면 생활하기에도 빠듯하다. 사실 40대 이후부터는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 캠핑 장비를 사고, 골프를 치면서 현재의 여유를 만끽하고 힐링을 하면서 사는 게 좋다." -대기업 5년 차 대리 김준석(33세) 씨

중년이 되기도 전에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는 30대를 지칭하는 ‘얼리 힐링(Early Healing)족’이 소비의 주체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여행, 운동, 취미 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몸과 마음을 가꾸고 힐링할 수 있는 분야에 돈을 쓴다.

자기계발이 가능한 분야에 지갑을 열기 때문에 주말은 물론 연휴에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에 익숙하고, 헬스클럽에 등록해 몸을 만들고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등의 소비 형태를 보인다.

실제로 강남이나 광화문 등 오피스가 밀집한 지역의 경우 1달에 약 30만원대로 비교적 고가인 크로스핏 운동이나 퍼스널 트레이닝을 등록한 30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또 이들 중에는 키즈(Kids)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족’도 많아, 고가의 완구 제품을 사서 조립하고 수집하면서 만족감을 얻는다.

*핫딜 노마드족

# "스마트폰에 오픈마켓, 소셜커머스에서 할인쿠폰까지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다양한 상품에 대한 정보는 물론 가격비교까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할 수 있도록 해놨다. 이에 가장 저렴하고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직장인 1년 차 김보민(25세) 씨

핫딜 노마드(Hotdeal Nomad)족은 가격비교를 통해 더 저렴한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말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라 이들은 좀 더 저렴한 상품을 찾기 위해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등 다양한 쇼핑 채널의 앱을 깔아 놓고 수시로 검색을 한다.

이런 소비 형태에 맞게 온라인, 모바일 쇼핑업계가 특정 시간대에만 싸게 파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게 유행이다. 여행상품의 경우에도 날짜와 시간 등을 지정해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다고 미리 공지하면, 해당 시간에 핫딜 노마드족이 몰리면서 온라인 이용이 잠시 중단되는 사례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핫딜 노마드족은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러한 소비자를 잡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과 함께 매력적인 상품을 큐레이션하고 트렌드와 소비심리를 반영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살펴보면 결국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에 가치를 두고 소비하는 형태가 가장 두드러진다”면서 “이에 기업들은 다양한 소비자들의 주문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속되는 경기 불황 등의 이유로 개인은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그 안에서 소소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새로운 소비 패턴의 모습이 주목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