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이 초유의 위기와 직면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8일 칩셋 및 특허권 시장에서 시장 지배자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퀄컴에 과징금 1조300억 원과 함께 시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애플을 비롯해 인텔, 삼성과 LG 등 주요 플레이어들은 공정위의 결단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이번 공정위 결단은 함의가 넓고 크다. 당장 표준필수특허(SEP: Standard Essential Patents)의 영역과 특허괴물의 정의, 나아가 라이선스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합법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한편,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단위 무역전쟁의 시각에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출처=퀄컴

퀄컴, 공포에 질리다
퀄컴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설립된 무선 전화통신 연구 및 개발기업이며, 주로 특허관련 로열티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모바일 및 초연결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현재 퀄컴은 다양한 연구개발 인프라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은 깊다. TDMA 기술이 표준으로 자리 잡던 당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CDMA를 회의적으로 바라봤지만 한국은 그 가치를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단말기를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는 전무했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판세를 바꾸기 위해 ETRI와 삼성, LG 등의 제조사들은 퀄컴과 손을 잡고 CDMA 상용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 결과 비교적 빠른 시기에 단말기 제조업에 뛰어든 삼성과 LG가 무선 통신 기술의 패권이 TDMA에서 CDMA로 급물살을 타자, 한국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으로 활로를 넓히게 된다.

물론 이 대목에서 퀄컴이 CDMA를 선택한 한국의 결정에 합류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도, 나름의 수익만 챙겼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 지점은 CDMA에 집중한 퀄컴의 승부수가 글로벌 시장에서 정확하게 작동했으며 여기에 집중한 한국의 경쟁력이 빛을 발했다는 해석이 적절하다. 실제 1세대 단말기를 이끌던 노키아, 에릭슨, 모토로라 등 세계 유수의 제조업자들이 TDMA에 집중하고 있었던 반면, 2세대 통신으로 진화하면서 CDMA 기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 데이터 전송이 중요해진 3G 시대에서는 CDMA에 먼저 뛰어든 한국 사업자의 지위가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동거는 시대가 변하면서 불편한 관계로 변질됐고, 라이선스를 무기로 삼은 퀄컴의 행보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공정위 결단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번 공정위 과징금에 대한 기원은 2014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정위가 퀄컴에 대해 이동통신 표준 필수특허권과 모뎀칩셋 시장의 지배력을 남용한다는 의혹을 바탕으로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퀄컴의 답변이 공식적으로 제출되었으며 7월에는 본격적인 심의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로 몇 차례의 변곡점을 돌아 총 7차례의 유례없는 전원회의가 열렸고, 결국 공정위는 1조300억 원의 과징금과 함께 시정명령을 선택했다.

과징금 부과 근거는 크게 3가지다. 경쟁 모뎀칩셋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칩셋 제조판매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에 대해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한했다는 것과 칩셋 공급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연계해 칩셋 공급을 볼모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 체결이행을 강제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휴대폰 제조사에 자신의 특허 전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면서 정당한 대가 산정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라이선스 조건을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그 배경에는 퀄컴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입에 대한 '고려'도 깔려있다. 지난해 전세계 퀄컴의 특허 로열티와 모뎀칩셋 매출액이 250억 달러에 달하는 가운데 무려 20%가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퀄컴이 공정한 경쟁모델을 무시했다는 논리다.

표면적으로 퀄컴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난망해보인다. 한 기업의 특허가 표준필수특허로 채택되면 막대한 시장 장악력을 가져갈 수 있지만 특허권자는 다른 기업과 특허 협상을 할 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또 비차별적으로 소위 프랜드(FRAND) 원칙에 입각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 다른 업체에게도 적정한 사용료를 받고 특허를 라이선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퀄컴은 이 대목에서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칩셋 제조사인 미디어텍과 인텔 등과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상태에서 제조사와 포괄적 라이선스를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퀄컴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위의 최초조사 자체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있는 불순한 의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루한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나섰다. 퀄컴은 28일 즉각 입장자료를 발표하고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그리고 퀄컴에 대한 과거 공정위 조사에서 검토되었으나 문제되지 않았던 라이선스 관행들에 대한 것으로서, 전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유지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경쟁법 위반 판단의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고 경쟁을 제한하였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칩사들 간의 경쟁 및 휴대폰사들 간의 경쟁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 독과점 이슈에 대해 공정위와 180도 다른 상황인식을 보여주는 셈이다. 또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기업들에게 보장되어 있는 절차상의 보호조치들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으며 확고한 라이선싱 관행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시장의 규모에 비추어 근거도 없고 합리적 관련성도 없는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부연했다.

퀄컴의 돈 로젠버그 총괄부사장 및 법무총괄은 “퀄컴은 공정위의 이번 판단결과가 사실과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시장의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것이며, 나아가 경쟁법의 근본적인 원칙들을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하면서, “이번 결정이 퀄컴이 보유한 특허 포트폴리오의 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내려졌다는 점에 대해 특히 주목해야 한다.  퀄컴은 모바일 원천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고 휴대폰사들을 포함한 다수의 사업자들에게 광범위한 라이선스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이동통신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기여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편익이 대폭 증진되었으며, 모바일 생태계의 모든 단계에서 경쟁이 촉진되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끝으로 그는 "서울고등법원에 불복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퀄컴

앞으로는 '복마전'
사실 1조300억원이라는 과징금의 규모도 상당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정명령이다. 시정명령은 그동안 퀄컴에게 끌려다녔던 기업들이 다시 재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칩셋 사업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모두 해당된다. 이는 퀄컴의 중요한 수익모델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퀄컴 입장에서 이번 공정위 결정은 지난해 2월 중국에서 있었던 불공정 파열음과 차원이 다른 재앙이 될 전망이다. 당시 중국 반독점 당국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퀄컴에 대해 중국 내 스마트폰 제조업체로부터 휴대폰 가격의 5%에 달하는 특허 수수료를 받아온 것이 '특허권 남용'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중국의 조치에는 휴대전화 가격의 로열티를 조정하는 내용이 있지만 공정위에는 없다. 다만 계약 관련된 시정조치가 있다. 이번 조치가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퀄컴이 법적인 분쟁을 예고한 이상 단기간의 변화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프랜드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퀄컴이 주장하는 관행적 라이센싱 모델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애플 및 기타 ICT 기업들이 흔들리는 퀄컴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은 좁다.

일단 공정위는 퀄컴을 시작으로 구글의 독과점 문제를 정조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큰 틀에서 살피면 이번 공정위의 조치는 글로벌 ICT 기업 전반에 대한 수술로 비화될 개연성도 감지된다. 지난 4월 오라클과의 패배 후 체면을 구긴 공정위가 퀄컴을 효과적으로 저격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영향은 다른 글로벌 기업을 향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라이선스 모델에 대한 퀄컴의 반론이 일정정도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경우, 혹은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보호 무역주의 기조가 통상압력 등의 형태로 부각될 경우 공정위의 '전선'은 넓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공정위 조치는 퀄컴을 사실상 특허괴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국내 삼성전자 및 LG전자에게 반사이익을 줄 것이 확실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번 공정위 조치를 돈 문제가 아닌 시장의 주도권 쟁탈전의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키아와 애플의 분쟁과는 결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노키아는 시장에서 철수해 특허료로 먹고 사는 기업이기에 라이선스에 대한 나름의 타협이 가능하지만 퀄컴 입장에서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위협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다. 필사적인 총공세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