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을 무료방송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케이블 및 IPTV, 위성방송은 유료방송의 개념으로 정의된다. 이런 상황에서 OTT 사업자의 전방위적 공세가 아직 국내에서는 미풍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최근 유료방송 발전방안의 기본적인 틀이 확정되어 눈길을 끈다. 정확히 말해 케이블 사업자 발전방안으로 규정되는 본 계획에는 의미있는 실험이 다수 실시되지만, 진영논리의 등장으로 잡음도 들리는 분위기다.

▲ 출처=픽사베이

몸집 불려라..다시 확인된 동일 서비스 동일규제 원칙
미래창조과학부는 27일 8차 정보통신 전략위원회를 열어 유료방송 발전방안 대책을 심의 및 의결했다. 사실상 유료방송의 패권을 IPTV에 빼앗기고 있는 케이블 사업자를 위한 방안으로 봐도 무방하다.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의 인수합병이 최종 불발된 상태에서 케이블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유료방송 시장 전체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업자 간 소유 및 겸영 규제를 풀어 자발적인 구조개편의 길을 연 대목이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케이블과 위성방송, 지상파는 서로 지분을 33% 초과해 소유할 수 없는 구조다. IPTV는 별도의 IPTV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연결고리에서 벗어나 있지만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통합 방송법이 탄력을 받을 경우 동일한 규제를 받게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 방안은 서로의 지분율 상한선을 걷어내어 자유로운 인수합병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다.

몸집을 불려 글로벌 미디어 강자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라는 뜻이다.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가정이지만 KT가 IPTV와 더불어 위성방송을 보유한 상태에서 케이블 SO를 전격적으로 인수하면 그 자체로 '유료방송 플랫폼 끝판왕'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 때 '인수합병만이 살 길'이라고 믿던 케이블 입장에서는 의미심장한 결과다.

동일 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을 내세워 각 유료방송의 달랐던 사업허가를 모두 일원화로 돌리기도 했다. 케이블 SO만 부담하던 시설변경허가 및 준공검사가 폐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며 MSO의 경우 재허가 원칙은 일괄심사로 변했다.

인수합병을 촉진하고 규제 일원화를 추구한 대목은 통합 방송법의 골격과 유사하다. 특히 IPTV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던 기존 법 체계가 모든 유료방송의 가이드 라인으로 환치되는 부분은 업계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논란이 보인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벌이는 블랙아웃 치킨게임이 사라질 수 있을까? 최초 업계에서는 콘텐츠 대가 산정 이슈가 본 방안에 포함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CPS 280원의 저주'는 해마다 거듭되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신경전으로 더욱 날카로운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콘텐츠 대가 산정 이슈는 지적 재산권 및 플랫폼 비용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무슨 뜻일까? 지상파가 제작한 콘텐츠는 각 유료방송 플랫폼이 받아 방송한다. 이 과정에서 유료방송은 지상파에 가입가구 당 280원의 비용을 내고 있으며, 해마다 280원의 인상 및 인하를 두고 지상파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그런 이유로 접시없는 위성방송인 DCS 논란이 불거질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던 IPTV와 케이블이 지상파와의 콘텐츠 대가 산정 이슈를 두고는 대동단결의 마법을 보여준 적도 있다.

미묘한 대목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IPTV가 CPS 논쟁에서 한 발 물러서고, 케이블이 결사적으로 지상파와 맞서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부분이다. 이런 과정에서 CPS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료방송 가입가구의 지상파 송출이 중단되는 최악의 블랙아웃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지상파는 콘텐츠의 합당한 대가를 인정하라는 주장이며, 케이블(유료방송)은 지상파의 무료 보편적 시청 패러다임의 보조와 광고비 수익 등을 이유로 맞서고 있다. 케이블 초기에는 양쪽이 윈윈하며 문제를 덮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지상파 광고 수익도 매해 떨어지고 있으며 케이블은 말 그대로 벼랑끝에 선 상태다. 양쪽 모두 쉽게 물러설 기미는 없다.

하지만 이번 방안에 콘텐츠 대가 산정 이슈는 빠졌다. 각 지역 유료방송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로컬초이스, 지상파에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지 가입가구가 확인할 수 있는 요금표시제 등의 방안이 나왔으나 모두 빠졌다. 논쟁 자체가 첨예한데다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긴 호흡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나왔다.

78개 케이블TV 사업권역의 지리적 구분을 없애는 권역제한(지역사업권) 폐지가 2020년 이후로 논의를 미룬 대목도 뇌관이다. 정부의 강한 의지가 있었으나 케이블 업계의 반발이 너무 강했다.

사실 이 방안은 케이블 특유의 역사에서 기인한 '역설'을 해결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케이블, 특히 케이블 SO는 원래 지역 미디어 플랫폼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지만 각 지역 케이블 SO들이 자체적인 PD 및 기자 인력을 소수 보유한 이유다. 정리하자면 정부는 케이블 육성을 시작하며 전국을 78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성을 보장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을 촉진하는 한편, 초기 안정적인 성장을 유도했다.

초기 이러한 의도는 적절하게 맞아 들어갔다. 케이블 SO는 각 지역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케이블 사업 자체가 포화상태에 이르며 '외부의 공격을 막아주던 방패'가 '성장을 가로막는 난관'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점유율 제한이 여전한 상태에서 별도의 IPTV법에 의거한 IPTV가 점유율 제한이 없다는 강점을 살려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정부는 본 방안을 통해 권역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인수합병을 촉진시켜 시장을 정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얼핏보면 케이블 사업자에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케이블 SO들은 본 방안의 권역폐지가 SO의 헐값매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봤다. '성장을 가로막는 난관'이 사라지면 외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존립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이유로 본 방안은 해당 논의를 2020년 이후로 넘겼다. 2020년이라는 시기는 케이블 디지털 전환의 완료시점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일단 케이블은 2018년 2월까지 전국 367만여 가구에 달하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를 디지털로 전환하도록 독려하며 일종의 원케이블 제도까지 고려하는 등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권역제한은 언젠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업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돌파구 마련할까?
케이블의 위기는 오래된 것이 아니다. 통신사의 막대한 자금은 물론, 이동통신시장의 막강한 시장 장악력이 오롯이 유료방송 시장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업계를 대표한다던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 전략도 규제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동일 서비스, 동일규제의 원칙에 따라 케이블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한편, 시장의 정리를 위해 인수합병을 유도하고 각 사업자의 '피를 섞는' 방법론도 내놨다. 나아가 케이블 사업자의 비원이던 이동통신상품의 도입도 SK텔레콤과 함께 본궤도에 오르면 나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최근 CJ헬로비전이 SK텔레콤과의 인수합병에 실패한 후 지역 케이블 SO를 추가적으로 인수하는 등, 중단됐던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다만 대승적 방법론에는 케이블 S0와 PP, 나아가 MSO와 MPP 모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며 IPTV와의 협력 및 경쟁, 또 유료방송 전체의 협상대상인 지상파와의 관계설정을 통해서도 기민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일각에서 이번 미래부의 방안에 아쉬운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